제이 켈리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되거나 아무도 아닌 것이 훨씬 더 쉽다.”
-실비아 플라스
"이제 여기 있기 싫어, 제리. 이 파티를 떠나고 싶어. 어찌 보면 난 이미 죽었어. 나는 운이 좋아. 살아있는 동안 내 시대가 끝났으니까. 끝나기 전에 끝나는 걸 볼 수 있었지.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든 게 거짓이야."
누군가는 그가 등따수운 데 앉아서 손에 뭔갈 가득 쥐고 배부른 소리한다고 했다. 나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정말 많이 가져본 쾌감을 모르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이게 돈과 명예를 가졌다고 징징거릴 수 없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어서 무언가를 많이 갖고 누렸던 사람이야말로 그걸 내려놓고 고이 늙는 게 진짜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가졌던 걸 시간이라는 깡패에 빼앗기고 보면 그때 그는 깨달을 것이다. 자기가 무언가 세상의 어떤 가치를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남들 다 가지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는걸. 무언가 다른 걸 가졌던 게 그 사람 잘못도 아니고 가졌던 걸 잃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 맞는데 한 입장에서 재단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제이는 자신을 발탁해준 잘나가던 감독이 나이가 매우 들어 퇴물취급 받던 무렵, 내려놓지 못하는 일 욕심을 내심 노욕 취급하며 정중히 코웍을 거절하고 돌아온 기억을 더듬는다. 감독의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서 옛친구를 만남. 연기 유망주이던 그 친구를 따라갔던 오디션에서 대신 자신이 붙은 일을 함께 이야기하던 끝에, 죄책감에 기억에서 지운(혹은 무관심했던) 사건을 직면한다.
제이 켈리는 아마 스스로를 마취했을 수도 있다. 청년에서 중년에 이르는 동안 어른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견딜 수 없는 어떤 시점에서의 가장의 무게를 저버릴 수 없을 때, 혹은 명예의 향기로움을 저버릴 수 없을 때, 현재의 상황이 나쁘지 않고 나는 무디고 무던한 사람이라 이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여버리는 것.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명예로운 역할이나 가진 많은 것을 저버리며 지키는, 더 커다랗고 외면하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회피했던 것들은 언젠가 스스로 마주해야 한다.
그는 또한 실수를 한 게 맞다.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몸담고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며 살아온 삶은, 만약 유의미하게 오래될 경우 그냥 그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걸 몰랐나 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평범한 회사원도,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 회사를 욕하면서 아주 오래 다니고 나면, 그 회사에 스며들어버린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일부 자기 정체성이 된다는걸.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는 말도 사실 그래서 나온 말이다. 가치관에 안 맞는 곳에 몸담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져나와야 함. 나이를 먹을수록 그 몸담은 곳, 즐겨 쓰는 물건, 자주 다니는 동네 같은 것이 나 자체가 되기 쉽다.
이 영화는 조지 클루니와 아담 샌들러가 아니었다면 노아바움백 영화치고 상당히 맹탕 같고 흔한 영화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아직 이 영역까지는 깊이 공감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정작 인터뷰에서 조지 클루니도 '나는 늦게 떴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깨달은 후 배우가 되었다'라며 영화 속 인물과 거리를 두고 선을 그었기는 하지만, 공로상을 받기 위해 앉아서 자신의 필모를 쭉 보고 있는 조지 클루니를 보고 있자면 이게 어디까지가 영화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호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현실의 가장 빛나던 시절만을 선별한 조지 클루니 모습이 나열되는 걸 보면서 새삼 한 배우의 시간, 사랑받아온 한 인물의 역사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뭐 이런 것이 덤덤하게 현실적인 인간사 희로애락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카운터를 치는 노아 바움백의 비기이기는 하다.
"다시 해도 돼요? 다시 하고 싶어요."
영화는 "한 번 다시 갈 수 있을까요?"라는 애타는 제이의 말에 "인생 1회차인 거 몰르냐?" 라는 싸나운 팩트폭행 대신 다정한 답변을 제시한다. "방금 테이크도 좋았어요. 충분합니다."
모두 일생 동안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자기 자신만으로 살기에는 주어진 역할과 해내야 할 일이 너무 많기에 다양한 역할 내의 자신을 연기해야, 진짜 내 알맹이를 돌아볼 시간 없이 들이닥치는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메시지처럼, 인생이 영화와 다른 유일한 점은 1회차라는 것인가. 그렇기에 그 많은 역할 수행 속에서도, 원래 생겨먹은 내 안의 진짜 나와 자주 시간을 내어 대화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뻔한 위로이면서 어쩔 수 없이 분명 유일한 답변일 수밖에 없는, 실수해서 헤맸던 숲길도 충분히 좋고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
아무도 절정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없고 늘 상향곡선만 그리면서 성공할 수 없기에, 사람은 죽음까지 가는 길에 노화를 겪으며 서서히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되기에, "어떻게 '우아한 실패'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는 인스타그램 격언스러운 말들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삶과 젊음에서 우아하게 하차하는 나날들이 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