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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Nov 12. 2021

모든 잘못은 이 놈의 '욱'하는 성질 탓이다.

어제는 일곱 번째 아버지 제사였다. 멀리 이사오고서도 늘 참석하던 집안 행사였다. 코로나로 접촉이 금기시되었을 때도 명절에는 고향에 가지 않았지만 아버지 기제사에는 내려갔었다. 그런데 올해도 참석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몸이 멀어지면서 조금씩 마음도 멀어지는가 보다.


제사에 가면 제삿밥 잡수러 오신 아버지 가시는 길 노자 하시라고 제사상에 절을 할 때 봉투에 돈을 넣어 제사상에 올려두는 관습이 있다. 형식은 돌아가신 아버지 노잣돈이지만 실질은 산사람에 대한 예의의 돈임을 모두 다 안다. 제사에 수고를 한 사람에게 참석자들이 크든 작든 그 마음을 내놓는 것이다.


비록 제사에 가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오빠와 올케는 나름의 수고를 했을 터. 나는 오빠의 수고에 대한 격려와 고마움의 말을 카톡으로 전했다. 진심을 말로만 전하면 제대로 전달이 안될까 봐 카카오페이로 소정의 금액을 '내마음'봉투에 담아 같이 보냈다. 얼마 안 되는 소액이라 계좌번호를 묻는 절차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냥 깜짝 선물처럼 작은 '내마음'을 주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하듯 카카오페이를 이용했다.


오빠는 은퇴를 하고 환갑을 넘긴 60대 초반의 남자다. 카톡 정도는 아주 잘 쓰기에 카톡에 있는 다른 기능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단정 지었다.

여기서부터 사달이 생겨버렸다.


 '내마음'을 보내자마자 돌아온 카톡 메신저 답변은 이랬다. "이기  뭐고? 뭐 주소 입력해야 되나?"

나는 오빠의 답을 보고 '아, 뭐야  이것도 뭔지 모르나?'라는 막돼먹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휴대폰과 카카오 메신저의 기능도 모르는 60대 어른의 모바일 문맹에 대하여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글을 모르는 사람 무시하는 듯한 마음이 그 순간 내 머리를 채웠다.


-카카오페이 없어?

-몰라. 그런 거 모른다. 계좌번호 주께

-카카오페이부터 확인해봐

-농협계좌에 입금된 거 없는데? 어디로 보냈어?

-카카오페이라니깐! 카카오 대화창에서 페이 찾아봐. 있을 수도 있어.

-모르겠다. 대화창이 뭔데?


나는 카톡 대화창을  캡처했고 다음 화면도 캡처해서 동그라미도 그려 여기를 클릭하라고 표시한 후 그것을 오빠에게 보냈다.


-동생아, 나는 이거를 어디서 찾는지도 모르겠다.  뭐 이리 어려운 것으로 보냈나? 그냥 은행계좌나 폰 이체를 하지 그랬어? 쯧쯧. 네가 아무리 설명해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오빠의 '쯧쯧'이라고 한 저 말에 나는 공연히 성질이 나서 폭발을 하고 말았다.


-아니, 카톡 대화창에서 흰점  클릭해봐

-대화창이 뭔데?

-카톡 켜면 이름이랑 단톡방  쭉 있는 데 말이야


나도 모르는 새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덩달아 오빠의 언성도 높아졌다.

-거기가 대화방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네가 뭔 소리하는지도 모르겠고, 너는 왜 그리 어려운 거를 하냐? 엉!


순간 내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오빠는 왜 그리 성질을 내? 나는 좋은 뜻으로 송금했는데 좋은 목소리로 '나는 잘 모르니 다른 방법을 하라'라고 하면 되잖아? 왜 대뜸 짜증부터 내?

우리는 서로 침묵을 지키다가 어색한 끝인사로 통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전화를 끊은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후회를 했다. 가족 외에 외부인들이라면 절대로 나오지 않을 '욱'하는 기질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대화를 하는 무방비의 순간에 불쑥 나타나곤 해서 종종 나에게 급후회와 신속한 사과를 하게 하곤 했다.


'욱'성질을 가장 자주 드러내는 사람은 남편이다. 가장 편하고 자주 대하는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렷다.

하지만, 잦은 대면을 못했던 오빠와 대화를 하면서  '욱'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내 맘속엔 아마 '이런 것도 모르고!' '모르면 배우려고 해야지. 모르는 게 자랑인가?'라는 마음이 들어있어서 오빠를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과연 60살 넘은 오빠에게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었을까? 불과 며칠 전 거의 비슷한 상황을 딸과의 대화에서 겪었던 나였다. 모바일  신문명을 다루는데 서툰 나에게 딸아이가 말했다."어렵다고 자꾸 나한테 지키지 말고 엄마도 직접 해서 배워야지."


나는 모바일을 뭘 얼마나 잘 안다고 감히 오빠에게 큰소리를 하면서 잘난 체를 했던 걸까? 전화를  끊은 후 이내 얼굴이 붉어지고 후회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시 전화해야 하는데, 사과의 말을 해야 하는데. 고민 고민하다 장문의 사과 텍스트를 치고 있을 때 톡문자가 '띵'하고 왔다.


-동생아, 오빠가 성질내서 미안타. 모르는 사람이 배울라 하고 배워놔야 되는 건데 그지? 우리 집 식구들이 모두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둘 다 순간을 못 참았네. 앞으로 잘 견뎌보자.


사과의 문자를 쓰던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도 심장도 문자를 쓰던 손마저도 빨갛게 물들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사과의 문자 말미에 나도 슬며시 말을 얹었다. 이 모든 건 내 '욱'성질 때문이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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