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 - '너 진짜 많이 살 빠졌네'
친정집 장조카가 드디어 결혼식을 거행한다고 연락이 왔다. 1988년생 우리 나이로 34살 여자 조카였다.
살면서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는 것을 인생의 철칙으로 여기는 84살 된 우리 엄마는 자신의 장손주가 34살이 되도록 '끈을 붙이지 못하고' 혼자인 것에 대하여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시로 34살 장조카의 아버지인 우리 오빠에게 틈만 나면 "딸내미를 와 갤혼을 안 시키노, 잉야? 내가 마 똑 애가 닳아 죽겠는데 너거는 와 이리 무심하노? 니가 애비가 맞나?"라며 재촉을 해대기 일쑤였다. 세상없는 효자인 오빠도 노모의 이런 잔소리 때문에 엄마 집에 방문하기를 꺼려할 지경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코로나로 잘 가지 못했지만 생신이나 명절에 엄마를 보러 가거나 가끔씩 안부 전화를 할 때면 어김없이 나에게도 그 잔소리가 날아왔다.
"고모들이 중신 서면 조카들이 잘 산단다. 고모가 셋이나 되는데 와 아무도 중신을 안 서노? 어? 너거 조카가 나이가 들어가 처이 귀신 될 지경인데. 아이고 무시라. 너거 참 무심타!"
엄마의 잔소리가 내 귀를 때릴 때마다 나는 "엄마, 요새 무신 중신이고? 다 저거가 알아서 연애해야지. 지 인연이 없는 거를 우짜란 말이고? 저거들이 다 알아서 한다. 걱정을 하지 마소!"라고 한마디 거들어 보지만 결혼이 인생 중대사 중 가장 큰 일이라고 믿는 우리 엄마에게는 도로아미타불이었고 되돌아오는 건 더 과격한 말들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단의 주인공인 34살 된 우리 장조카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마침 위드 코로나 시기였다. 나는 간만의 잔치에 예쁘게 차려입고 고향엘 내려갔다.
그전에 몇 번 만났던 날씬하고 예쁘장했던 우리 장조카는 그것도 나이라고 서른이 넘어가면서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참말로 즈이 할머니(우리 엄마)의 걱정을 살 만큼 외모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에 가면서도 '야~가 신부 화장하고 드레스 입는다고 살을 좀 뺐을라나?'라며 장조카의 외모에 관심을 가졌다.
부산 국민연금 빌딩 W웨딩홀 3층에 도착했다.
결혼사진이 식장 입구에 나열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본 우리 조카는 예전의 미모를 되찾아 아름다운 11월의 신부가 되어 있었다.
"00이 그새 살 많이 뺐네?" 내가 다가오는 언니에게 말했다.
"살을 뺀 정도가 아이고 애가 억수로 얘빗다! 홀쪽해지뿟다 사진을 보더니 언니가 말했다.
나와 언니는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이까지 왔는데 신부랑 사진 한장은 박아둬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고모야~"
신부 대기실로 들어가서 본 조카는 그야말로 바짝 애비갖고 날씬해져 있었다.
"00야, 니 살 억수로 많이 뺐네. 예쁘다. 사진발 잘 받겠다. 근데 너무 애빈 거 같다."
"아이다, 고모야. 이 정도는 얘벼 보여야 사진 찍으면 잘 나온다 카드라. 그래서 좀 뺏다."
"맞나?"
나와 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카의 말에 추임새를 넣으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얘볏다/애빗다/얘빗다: 살이 빠져 홀쭉하다. 아주 많이 날씬하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