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의존해서 쓴 철 지난 육아일기>
아들이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고 딸이 7살이 되었을 때다.
첫째는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삼하게 활발하여서 1,2학년 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걱정스런 말씀을 많이 들었다. 공부도 썩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또 실제로 노느라 바빴다. 직장맘으로서 아들을 지켜보면서 불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내가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인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실은 딱히 엄마로서 내가 크게 하는 일은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집에 와서는 준비물 봐주고 같이 조금 놀고 재우고 그 정도. 종일 회사에서 지내다 보니 밤 시간 잠깐 사이 많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직장맘들은 늘 불안하다. 집에서 엄마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시간을 많이 같이 보내고 케어해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하는 집들보다 아무래도 같이 보내는 시간 자체가 적다보니 그에 대한 상대 심리였던 것 같다. 시간을 같이 많이 못 보내니 내가 아이에게 어떤 것을 덜 해주고 있다는 느낌, 일종의 죄책감.
아이가 딱히 특별히 나쁜 점들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무얼 해주어야 할까 생각을 하였다.
곧 딸애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었고 그러면 아이 둘이 한 번에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나는 그 전에 이 아이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고 싶었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심리 안정과 학업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해야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줄 수 있을까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미 아이를 둔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 중 한 친구가 심리검사나 적성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자기도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 검사를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던 시기였으니 바로 심리검사를 하는 분을 소개받았다. 지금 검사를 하던 기관과 선생님 이름은 잊어버렸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통화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퇴근 후 저녁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만났다.
선생님은 먼저 아이들 검지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그건 왜 하는 건가요?"라는 물음에 그는 "지문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지문을 통해서 기본적인 아이들의 성향 파악이 가능합니다. 아이 성향을 파악하는 자료로 사용하고자 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지금은 지문 검사가 널리 인지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15년 전 그 당시에는 굉장히 신기해보였다. 그리곤 설문 조사가 이어졌다. 글을 그 의미까지 읽을 수 있는 아들은 스스로 설문 작성을 하였고 한글을 읽을 줄만 알고 행간의 뜻까지는 아직 몰랐던 딸의 설문은 엄마인 내가 일고 작성하였다. 설문은 MBTI와 같은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같은 질문에 4~5개 정도의 보기에 해당하는 것을 표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딸애의 평소 모습과 말하는 습관, 태도 등을 생각해서 우리 딸은 이럴 때 이렇게 한다와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것을 떠올리면서 설문을 작성하였다. 그 후 방문하신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간단히 인터뷰가 있었다. 지문과 설문 조사에 대한 보조 자료로 사용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성향 역시 양육과 교육에 매우 중요하므로 설문 조사가 행해졌다. 아이들은 원래 인당 10만원이었으나 인당 7만원씩, 14만원의 비용을 지불하였고 나는 덤으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일주일 뒤 나왔고 선생님이 다시 집으로 방문하였다.
두 아이의 결과지를 보여주면서 이것은 애니어그램이라는 성향 검사이며 우리 아이는 각각 6번 충실가형, 2번 조력가형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애니어그램을 처음 접하였다. 이후에 나는 각종 심리 검사에 관심을 갖고 책도 읽고 아이들에게 기회가 되면 검사를 해보게 하였다. 지금이야 많이 알려지고 인터넷에도 간단히 성향을 알 수 있는 검사항목이 나와있지만 당시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었다. 나는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설문과 애니어그램 결과와 지문 검사를 종합하여 선생님은 한 시간이 넘게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전부를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런데 딱 한마디씩은 기억하고 있다.
아들: 의사 집에 태어나면 의사가 되고 카센터 집에 태어나면 자동차 정비를 할 아이이다. 부모의 지도가 아주 중요한 성향이다.
딸: 타인의 평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가 뭐라하지 않아도 스스로 평판을 생각해서 알아서 하는 성향이다.
검사와 인터뷰에 따르면 엄마인 나는 좋은 말로는 자율, 나쁘게는 방임형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들은 좀 더 방임에 가까운 육아이고 딸은 관리를 하는 편이다. 맞는 말이었다. 아들은 활동을 좋아해서 야외로 많이 다녔고 그리 하더라도 걱정이 덜 되어서 저녁먹을 시간에 집에만 온다면 이런 저런 잔소리를 덜하는 편이었다. 딸애는 역시 여자아이라 그런가 조금만 연락이 안되도 걱정이 되었고 내 눈밖엘 벗어나면 조바심이 나서 아들보다 잔소리를 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성향을 볼때 오히려 아들에게는 관심을 주고 관리를 좀 더 하라고 조언하였고 딸은 본인이 알아서 하는 성향이니 지금보다 간섭을 줄이고 잔소리를 덜하라도 지금 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하였다. 즉, 그때까지 내가 하던 양육방식이 거의 반대로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고 심리 검사가 끝난 후 생각을 많이 하였다.
내가 하는 육아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으므로 심리검사 선생님의 조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아들아이에게는 조금 더 매니저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 전에는 학원에 결석했다는 전화가 따로 없다면 아이가 밖에서 뭘 하는지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뭐하고 놀았는지, 누구랑 놀았는지, 학교에서 무얼 배웠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차근 차근 물어보게 되었다. 학교나 학원에도 종종 전화하여 아이가 생활은 잘 하는지, 수업은 잘 따라오는지 물었다. 의사 집에 태어났으면 의사가 될 것이고 카센터 집에 태어났으면 차 수리공이 될 거라는 심리 검사 선생님 말씀은 아이의 학업이나 공부 습관을 잡는 데 있어 내가 심히 걱정될 정도의 공포스러운 말이었다. 그래서 학교나 학원과 관련하여 신경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물론 그 와중에 아이가 짜증을 받기는 했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모든 아이와 학생은 놀고 싶어한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과목별로 학원을 돌리고 스케쥴을 타이트하게 짜고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보내놓고 전화도 않고 신경도 안 쓰던 것을 약간의 관심과 관찰을 더 많이 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직장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크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칼렌다에 학교 담임에게 전화하는 날, 학원에 전화하는 날을 스케쥴화해서 전화를 하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업무에 쫓겨 번번이 잊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보낼 때는 꼭 본인과 상의하여 가고자 할 때만 보냈다.
딸아이는 반대가 되었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잘 왔는지, 학원 차를 잘 탔는지, 학원에서 친구들과 잘 지냈는지 집에 무사히 잘 왔는지를 아주 자주 체크하곤 했는데 그 횟수를 많이 줄였다. 아이는 그 전까지 엄마가 감시하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후로는 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딸아이다 보니 퇴근 하기 전까지 아이가 무사히 귀가하고 생활을 잘 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곤 했는데 이를 참아내는 것은 한 번 시작한 유투브 시청을 중도에 끊어비리는 것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딸애를 옭아맺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바뀐 양육 방식에 따른 결과는 어떨까? 꼭 이것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수 많은 변수들이 준재했을 것이므로.
아들은 사춘기가 지난 후에 자기 할일을 스스로 찾아 일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어릴 때 내 방식을 조언대로 바꾸어 그렇게 됐는지 아닌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딸은 조금 많이 자유로운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 엉덩이로 버티는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 힘들어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때 그 심리 검사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들과 딸이 반대의 성향이 되었을까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심리적성검사는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양육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학교를 보내거나 보내기 전에 직장맘으로 두려운 마음에 그 조언을 절대화해버렸다. 아이를 잘 아는 건 누구보다도 부모이다. 참고로 하려고 돈을 들여 검사를 하는 것인데 그 말을 듣고는 그 순간에는 그 말만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원칙이 흔들려 부모가 이랬다 저랬다 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고 그럴 때 아이들은 더 헷갈려하고 방황을 하게 된다.
심리검사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는 좋은 기회였고 자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심리 검사 선생님 말 처럼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기회가 되면 이런 검사를 한번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적용을 할 때는 한 번의 검사를 절대화하지 말고 그 때 그 때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변형하고 유연성있게 대처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