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대(隔代) 교육

"덕화 학당" - 할아버지의 손주를 위한 가정 교육장

by 홍월

맞벌이를 하는 막내딸을 대신하여 우리 아이 둘을 키운 친정집에는 별칭이 있었다. "덕화 학당"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들이 돌이 되기 전에는 그저 먹고 입고 자고 싸던 시절이어서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의 할머니가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에 업고 마실가는 것이 육아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돌이 지나서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말로 소통할 수 있게 되자 그동안 온종일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어야 했던 엄마는 오후 중 잠깐 두어 시간동안 아이를 할아버지와 함께 두고 외출을 다녀오곤 하였다. 내내 육아와 아이에게 시달렸던 당신께서도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하였으리라.


그 때쯤부터였다. 덕화 학당이 오픈을 한 것은. 외람되게도 "덕화"는 친정아버지 존함이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말투에 곰살 맞지 못한 성격을 가지셨던 아버지는 잠깐 애 좀 봐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그야말로 애를 옆에서 지켜보는 수준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니 혼자 놀던 아이도 심심해하기 시작했고 그저 지켜만 보던 아버지도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고 조금씩 무료해졌다. 그래서 아버지는 벽에 붙어있는 달력을 찢어 바닥에 펼쳤다. 그 달력은 지역 농협에서 나눠주었던 전지 크기의 달력으로 숫자는 신명조 강조, 크기는 아래아 한글 기준 약 100 포인트 정도로 아주 컸었다. 달력 한 장에 한 달씩 있던 것으로 밑에는 작은 숫자로 음력도 있었고 육십갑자로 된 날 표시도 있던 달력이었다.


친정집 것과 유사한 큰 달력. 출처:http://cafe.daum.net/anysteel/5xqI/439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그 시간 아버지는 14~15개월 된 아이에게 그렇게 숫자를 가르쳤다. 당신께서는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셨던 걸 거다. "xx야, 따라 해라. 일, 이, 삼, 사, 오."

혼자 놀기 심심했던 아이는 뭔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랑 같이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숫자를 또랑또랑하게 따라 하기도 했고 자기의 앙증맞은 손으로 짚어가며 "할부지, 이건 뭐야?" "할부지 이거는?"하며 되려 질문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곧잘 따라 읽는 아이를 보고 기특한 생각이 들었던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그 시간만 되면 숫자 공부 교재-달력-을 펴놓고 1부터 31까지 숫자 공부를 시키셨다. 처음에는 따라 읽기, 다음에는 아버지가 손을 짚어 가르키면 아이가 무슨 숫자인지 맞추는 데 까지 진도를 나갔다. 달력에는 숫자가 31까지 밖에 없으니 달력 뒷면에 칸을 그어 100까지 손으로 직접 숫자를 그린 다음 100까지 숫자 공부를 시키셨다.

숫자 공부는 꽤 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 아이는 연필을 들고 오더니 빈 종이에 숫자를 막 쓰는 게 아닌가! 차근차근 큰소리치지 않고 아버지는 놀기 삼아 재미 삼아 아이와 함께 숫자 놀이를 같이 했는데 아이는 자연스럽게 숫자를 1부터 100까지 읽고 쓸 줄 알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에 할머니가 외출하는 대신 한번은 이웃 분들이 놀러왔다가 둘이 숫자 공부하는 것을 보셨다. 무뚝뚝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말투의 우리 아버지가 세상 다정하게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치는 것을 본 엄마와 이웃 분은 "아이고 세상에, 이 할배 보소. 이렇게 조분 조분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나! 할배 애 잘 가르치네. 실력이 아깝네. 아예 학당을 하나 내소. 할배 이름 따서 덕화 학당이라 하면 되겠네" 라고 농을 걸었다.


이 날 이후로 이웃 분들은 친정집에 놀러오면 "오늘도 덕화 학당 공부하는 날인가?"라고 하셨고 할아버지와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오늘은 왜 공부 안합니까, 할배? 덕화 학당 쉬는 날인가?"라며 아예 공공연히 우리 친정집을 덕화 학당이라고 대놓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은근 싫지 않은 눈치였다.

덕화 학당의 수업은 숫자 100까지 진도를 나가자 한글까지 과목을 확대하였다. 그리고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덕화 학당에서 숫자와 기초 한글을 공부하는 쾌거(!)를 이루어내었다.


김홍도 <서당>. 출처: 다음 이미지


덕화 학당에서는 숫자와 한글만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8년의 나이차가 있었던 엄마와 아버지는 큰 아이를 키우기 시작할 당시 연세가 각각 62세, 70세였던 시골 사람이었다. 분유를 떼고 이유식을 떼고- 할머니표 이유식은 그냥 밥을 끓이거나 죽을 쑤어 잘게 썬 반찬과 주는 것-밥을 먹기 시작할 때 밥, 국, 김치, 나물의 전통 한식 식사를 배웠다. 식사할 때 흘리지 말기, 소리 내지 말기, 밥 한 톨이라도 남기지 말기 등의 식사 예절도 아주 잘 가르침을 받았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라 이웃들과 왕래가 잦았던 친정은 무시로 사람이 드나들었다. 엄마가 마실 나갈 때 애들을 데리고 갔는데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자주 접하여서 세대차이 없이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노인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겠다고 한다. 다른 또래의 친구들은 노인 냄새 난다고 하면 “난 잘 모르겠던데, 그런가?”라며 오히려 나에게 실제로 노인 냄새라는 게 있냐고 반문하곤 한다.


이웃 분들은 친정집에도 자주 놀러왔다. 다 같이 한 상에서 식사하고 음식과 과일을 나눠먹고 우리 집에 좋은 것이 있으면 이웃에 나누고 이웃집에 넉넉히 먹을 것이 있으면 받기도 하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은 보고 자랐다. 친정 집 밖을 나가면 다 아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라 사람만 보면 인사를 하는 법을 배웠다. 특히 친정 엄마는 '사람이 인사를 잘 해야 한다. 인사 잘 해서 손해나는 경우는 없다'며 늘 인사를 강조하셨는데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더 인사를 잘 한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라는 욕심에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아이에게 짜증을 자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 자식 간에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대화가 단절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는 어린 자녀의 교육은 조부모가 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격대(隔代) 교육이라고 한다.

자녀가 서당이나 공식 외부 선생을 들이기 전까지 일상생활 속에서의 교육은 부모보다 조부모의 곁에서 보고 듣고 배웠다고 한다. 조부모는 인생을 충분히 경험해 보아 여유가 있고 부모보다 자식 교육에 대한 욕심과 조바심이 덜하여 다그치는 교육보다 지켜봐주는 교육을 하는데 맞춤일 뿐더러 무한하고 더없는 손주에 대한 사랑으로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기에 더할 나위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 조부가 쓴 육아일기 <양아록> 일부. 출처:http://blog.daum.net/sanunclan/138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친정 부모에게 맡긴 나로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 친정부모 눈치도 보았고 마음에 안 드는 육아법, 내 생활에 대한 간섭 등으로 부모인 나는 친정 엄마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다. 이렇게 갈등을 참고 지내느니 아예 외부 육아 도우미를 쓸까하고 심각하게 고민도 하였다. 그때마다 "어이구 내 새끼!"하시며 친정 부모님 얼굴에서 꿀 떨어지는 모습을 보거나 엄마인 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따르는 아이를 보면서 고민을 도로 집어넣곤 했었다.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지금은 다 큰 성인이 된 아이들을 보면, 조부모 손에서 아이들이 큰 것에 대하여 나는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법륜 스님은 '엄마 수업'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씨앗이 튼튼하고 올바르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금방 원래대로 회복한다. 그러니 튼튼하고 올바른 씨앗으로 만드는 환경이 중요하다."


나는 조부모 밑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생활과 예절과 나눔을 배운 것이 바로 이 좋은 씨앗을 위한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친정부모가 양육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는 조부모와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육아 후배들에게 기회가 되면 유아기 시절에 조부모와 시간을 많이 보내기를 권유한다.

조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큰 아이는 지금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글썽인다. 그리고 엄마인 나보다 더 자주 82세가 된 외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린다. 전화한 다음 날 친정 엄마가 전화한다. "이 년아, 너보다 니 아들이 훨씬 낫다. 우리 xx가 할머니 건강하라고 전화 왔더라. 내가 손주 하나는 잘 키웠지."


그래, 나도 쿨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 엄마 아버지가 정말 손주 둘은 몸 건강 마음 건강하게 아주 잘 키워주었다. 그리고 손주 잘 키운 덕을 오래 오래 살아 안부 전화보다 더 통 크게 받아 가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keyword
이전 09화'모질 모질' - 유아기 때 아들이 보인 특이한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