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에 소주 한 병씩

임신, 출산, 육아와 줄어드는 주량에 대하여

by 홍월

토요일 저녁 애청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맥주 생각이 났다. 전국 각지의 시장 중 한 곳을 골라 맛있고 유명한 음식을 놓고 가요의 가사를 맞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음식의 9할은 거의 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야식을 먹거나 뒤늦은 음주를 하곤 했다. 오늘 소개된 음식은 술이 당기는 음식이다. 남편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하나는 자기가 마실 흑맥주, 하나는 내가 마실 무알콜 맥주.

"캬아~!"

무알콜 맥주를 마시고 술을 음미하는 나를 보고 신랑은 진짜 많이 약해졌다. 우리 마눌님도 세월에 어쩔 수 없는 건가. 고하며 애꿎은 세월 탓을 했다.



나는 술이 셌다. 대학을 다닐 때와 직장 초년 시절인 20대에는 술자리에서 거의 늘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것도 술에 취해 시쳇말로 '꽐라'된 상태가 아닌 내 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1990년대는 술 잘 마시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여겨지던 시대라 나는 선배, 상사, 동료들로부터 '사회생활 잘한다' '화끈하다' '성격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전혀 자랑할 일도 아니고 지금 돌이켜 보면 부끄럽기만 한 과거이지만, 내가 술을 제일 오래 많이 마셨던 때는 대학교 2~3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 선배들과 '향토색 공간'이라는 소주집부터 갔다. 저녁 식사를 겸한 술자리는 서너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마쳤다. 나는 집에 가는 막차를 놓친 뒤였다. 막차를 놓친 김에 '한 잔 더'라는 소리를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솔방울'이라는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솔방울'에서도 서너 시간 동안을 우리는 시국의 발전과 조국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에 대해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처음에 열명이 넘던 사람이 하나둘씩 빠지고 자정이 훌쩍 넘긴 시각 예닐 곱이 남았다. 남은 예닐 곱에서 대여섯은 고스톱에서 팔월 새를 따먹고 사월 새를 패에 쥐고 이월 새를 판에 깔아놓은 타짜처럼 "고!"를 외쳤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던 둘셋은 택시를 잡고 홀연히 떠나갔고 자취생이었던 친구와 그 집에 빌붙어 자야 할 나, 집이 코앞이었던 친구, 그리고 후배를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이 있던 선배 둘이 남아서 다시 술집으로 이동했다. 술집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다섯은 거기서 두어 시간가량 맥주를 한 차례 더 마셨다. 위장이 더 이상 술을 거부할 때가 되었을 때 다 같이 가까운 해장국집으로 갔다. 해장국 한 그릇과 해장술 한 병. 다섯은 또 그렇게 국과 술을 한 입하고 홀짝댔다. 해장국 집을 나섰을 때는 해가 산을 따라 그려진 지평선 밖으로 나오려고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듯 산 언저리 하늘이 붉그스레했다.


그날 내가 마셨던 술은 대략 소주 2병, 맥주 대여섯 병, 막걸리 반 병 정도는 아니었을까 한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으면 도대체 몸에 어떠한 변화가 오는 것일까? 아직 입덧이 왜 생기는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는 정도이니 내가 지닌 의문에 대한 100% 명확한 정답도 없는 것으로 안다.


첫째를 낳고 내 주량이 50%나 줄었다. 소주 2병은 거뜬히 마셨던 나는 첫째를 낳고 회식자리에서 이제는 출산 전과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임신 기간 10달, 출산 휴가 2달, 아이가 돌이 될때까지 10달. 2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 못했다. 이후에 가게 된 회식과 모임에서 나는 소주 1병 이상을 마실 수 없었다. 마시고 취해서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내 위장과 식도가 소주 8잔째를 들이키려고 하면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주는 술을 거부하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술을 마신 다음 날은 어김없이 고통스러운 숙취가 찾아왔다. 술 때문에 다음 날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거다. 아침에 아이를 친정엄마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도 힘들 정도였고 출근해서 업무에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회식 자리를 마다할 수 없었다.

"김 대리가 회식에 빠지면 안되지" "이제 애 보러 가야 된다, 그거지?" "이래서 여직원들하고는 단합이 어렵단 말이야"

이런 진심 같은 우스개뿐 때문은 아니더라도 회사의 정작 중요한 정보는 회식 자리에서 오고 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회식을 빠지면 업무적으로 업무외적으로 소외를 당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3번에 한 번꼴로 회식에 참석하는 회식이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알코올 섭취로 몸이 조금씩 축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회식에서 소주 한 병으로 살아남는 스킬을 개발하기도 했었다.


3년 뒤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 때에도 큰아이 때와 비슷한 기간 동안 음주를 멀리하였다. 그리고 참석한 회식. 나는 깜짝 놀랐다. 맑고 투명한 소주의 유혹에 넘어가 소주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덧하는 임산부처럼 코를 찌르는 소주의 알코올 향이 내 비위를 거슬리는 것이었다. 억지로 투명한 액체를 목으로 넘겨보았지만 식도를 타고 흐르는 느낌은 예전의 그 알싸함이 아닌 독한 화학약품이 넘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위장도 마치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백신이 활동하는 컴퓨터처럼 순순히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여대기 시작했다.


소주에 대한 내 주량은 다시 50% 감소했다. 나는 소주를 한 잔도 들이키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처녀 적에 못 마시던 술을 출산을 다하고 나이가 들어서 마시기 시작하고 즐긴다는 얘기도 많이 들어봤는데 나는 정확히 반대의 경우였다. 회사 회식에서 소주 말고 맥주! 를 외치고 시원하게 넘기지 못하고 깨작거리고 있으니 상사, 동료, 후배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람 변했네" "몸 사리네" "과장님, 섭섭합니다."


후배의 흰소리야 "닥쳐" 한 마디면 평정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상사의 주문과 고객과의 화합을 위해서는 줄어든 주량이라도 그렇지 않은 척, 꿋꿋한 척을 해내며 사무실 밖에서의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직급이 올라가다 보니 회사의 주요 정보-각종 썰, 진행되는 인사 계획, 뒷담화, 업무와 인사에 대한 사적인 요청-이 오가는 자리는 사무실 안 공식 회의 석상이 아니라 사무실 밖 회식 자리라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사원, 대리에게 노출되는 주요 정보와 과장, 차장에게 노출되는 정보의 수위가 달랐다. 사원, 대리라고 해도 상사의 예쁨을 받으며 자주 회식 자리를 함께하는 이들은 회식 자리에 참석을 잘하지 않는 차장, 부장보다 소식이 빠른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을 알게 되니 마냥 술자리를 회피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혹은 남편과 야근이나 회식이 겹친 경우 친정엄마에게 밤에 두 아이를 데리고 자 달라고 매번 부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남편은 이해를 해주었는데 오히려 엄마는 "애 있는 엄마가 회식은 무슨! 마치면 바로 와야지."라며 퇴근 후 회식을 하는 것에 대하여 전혀 이해를 못하여서 회식 때 부탁하기가 여간 눈치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대여섯 번 중 한번 정도만 회식에 참여하곤 했다. 아예 참석을 안 할 수는 없었던 것이, 회식은 회사 안팎의 돌아가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어려운 처지를 이야기하고 상사들이 이해해주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술을 빌어서 하는지 용납은 힘들었지만 나는 현실을 살아야 했다. 사실 나는 술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회사의 회식 자리란, 회식을 하는 동안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술을 버티고 시간을 견디다는 것에 가까웠다. 이렇게 술을 버티고 시간을 견디는 회식을 하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내 주량은 더 줄어들고 있었다.




소주를 제외한 맥주, 막걸리, 와인으로 회사를 다니고 친구들과 모임을 즐기면서 시나브로 술들이 내 곁을 떠나갔다. 와인은 입에 못 대게 되었다. 막걸리는 그래도 반 병 정도는 가능한 것 같다. 맥주는? 지금은 무알콜 맥주만 마신다. 요새는 무알콜 맥주도 아주 다양하게 많이 출시되고 있다. 나 같은 술과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에 약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끔씩 옛날처럼 알딸딸한 기분을 내고 싶으면 다음날 다른 일정이 없을 때 반드시 집에서 4~5도짜리 맥주나 막걸리 두어 잔을 즐길 뿐이다. 과거의 나를 아는 친구들은 "찐한 거 한잔 하고 싶지?" "어때, 오늘 한번 달려 볼까?"라고 농을 걸기도 한다.


친구들아, 나는 무알콜 맥주도 충분히 찐~하단다. 무알콜로도 얼마든지 달릴 수도 있고. 꼭 술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술자리면 무알콜로도 사이다로도 "GO~!" O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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