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출산율은 왜 해마다 최저를 기록할까?
친하게 지내는 동네의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저 둘째 괜히 낳았나 봐요. 요즘 후회가 들어요.”
나는 아는 동생이 코로나 때문에 두 아이들과 두 달 가까이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것이 힘드나보다 생각했다.
“종일 애들 뒤치다꺼리 하기 힘들지?”
이미 육아를 끝낸 나는 아마도 그이한테는 실감나지 않았었을 말 - 그래도 그 때가 제일 좋을 때이며 지나면 그 시절이 그리울 거라는 같잖은 위로를 건넬 뿐이었다. 그런데 아는 동생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전화를 건 동생은 한탄스러운 말투로 내 말을 이었다. “언니 내 나이가 이제 40대 중반인데 더 늦기 전에 내 인생도 찾고 싶고 직업도 다시 갖고 싶어요. 근데 우리 둘째, 이제 겨우 8살이에요. 한참 엄마 손길이 필요할 때잖아요. 직업을 찾고 싶어도 적당한 일을 찾는 게 너무 어렵네요. 이러다 다시는 직장생활을 못하게 될 것 같아 너무 불안해요.” 그러면서 지금 느끼는 불안이 자기가 늦둥이 둘째를 낳은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요즘 결혼하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안 낳는 것이 너무 이해가 된다고 덧붙였다.
동생은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사람들이 말하는 대기업을 10년 넘게 다니다가 사내에서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둔 전형적인 대한민국 고학력 주부였다. 첫째 아이는 지금 중학생인데 그 사이 어찌하다보니 늦둥이를 가지게 되었고 그 늦둥이 둘째가 지금 8살이다.
올해 초에 우리나라 2019년 출산율이 0.92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지 이미 오래되었다. 정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실효성 있어 보이지 않는다. 동생과의 통화는 나에게 오래 전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큰 아이가 18개월쯤 되었을 때이다. 회사에서 한창 일할 시간인 오후에 휴대폰이 울렸다.
“OO야, 지금 당장 여기로 와라. 너희 엄마가 지금 XX병원에 실려 갔다.”
아이를 키우시던 친정 엄마가 갑자기 코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앰뷸런스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같이 간 아버지가 별난 손주 때문에 병원에서 일도 못보고 쩔쩔매고 있으니 빨리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가 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너무 놀라고 또 너무 걱정이 되어 전화기를 내리는 손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했던 나는 팀장한테 어떻게 조퇴를 허락받을까 하는 걱정에 가슴도 심하게 쿵쾅거렸다. 혹시라도 조퇴를 허락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다행히 어머니가 쓰려졌다는 말에 바로 조퇴증을 끊고 퇴근할 수 있었다.
가슴과 손이 함께 덜덜 떨며 운전대를 심하게 꽉 쥐고 나는 조그만 티코를 130km의 속도로 몰고 비상깜빡이를 켜고 XX병원으로 직행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응급실로 달려가니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 “여기 덩치 좀 있는 코피 흘리시던 60대 할머니 어디 있어요?” “아, 그 할아버지랑 손자랑 같이 오셨던 분이요? 여기서 피가 안 멎으셔서 부산 큰 종합병원으로 가셨어요.” 간호사의 대답은 나를 더 큰 불안 속으로 던져 넣었다.
티코의 최대 속력으로 거의 날아 간 부산의 큰 병원. 응급실로 들어서자마자 들리던 아버지의 애타는 고함 소리. “찬이야, 이노무 자슥 가만히 좀 안 있을래?”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응급실을 마치 제 집 마당인 듯 ‘까르르’ 큰 소리로 소리치며 아이는 뛰어 다니려고 발버둥치고 있었고 70이 넘은 늙은 아버지는 그 탱탱볼 같은 아이가 혹여 어디로 튈까 그래서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아이의 옷 목덜미를 힘껏 움켜쥐고 허둥대고 있었다. 아버지 옆에는 코에 흰 거즈를 한 뭉텅이 박아 넣고 축 처진 팔에 링거를 맞고 있는 엄마가 실신한 듯 누워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엄마 아버지 두 분 모두 하늘에서 온 선녀를 반기는 듯하였다. 기운이 없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는 어서 애를 데리고 가라는 뜻으로 팔을 휘젓었다. “병원 수속도 밟아야 되고 약국에 뭐 사러도 가야되는데 이놈이 자꾸 온 천지를 뛰어다닐라 해서 애 잃어버릴까봐 너거 엄마는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 아이고야, 식겁했디라.” 내가 병원에 있겠다고 해도 엄마 아버지는 당신들이 병원 일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제발 애만 데리고 집에 가라고 부탁을 하셨다. 두 분이 얼마나 식겁을 하셨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얼마나 울었던지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들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왜?’하고 자꾸 물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모두가 편안해질 텐데 내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같이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고 병원에서 말썽피우던 그 아이가 스무 살을 넘어서까지 직장을 다녔다.
아이 둘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보내는 동안 이보다 더 가슴 졸이는 사건과 사고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까! 굳이 사건과 사고가 아니더라도 아이와 관련된 일로 회사에 조퇴를 하게 되거나 결근을 하는 일은 아이가 커가는 세월에 아이 두 명 몫을 곱한 것보다 서너 곱절은 더 발생했었던 것 같다. 입원이 아닌 감기 같은 작은 질병으로 병원에 가는 일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친정어머니가 알아서 했는데도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내가 회사에 월차나 반차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 때문이었다. 입학식과 졸업식, 학교 행사, 운동회, 학예회,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입원, 통원 등등 최근에는 운동회나 학교 학예회 등에 부모가 참여하는 경우가 줄었다고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울 당시에는 워킹맘이 많지 않았던 때라 나는 매번 월차는 내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아마 나도 아이를 낳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 명은 낳았더라도 둘째를 가질 것이라고는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서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직장을 가지는 것을 동시에 하기 힘든 현실은 20년 전이나 2020년 현재에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다. 그 때는 출산율이 1.3명이었고 지금 0.9명으로 출산율이 크게 줄어든 점이 달라졌다. 경력과 자아실현을 중요시 하는 현재의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녔던 선배 워킹맘의 전쟁 같은 일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후, 과거 내가 가졌던 ‘아이가 없었더라면’라거나 ‘하나만 낳을 걸’이라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그들을 응원하면서 한편으로 20년 동안 이렇게밖에 달라지지 않은 우리네 현실에 씁쓸함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