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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ug 09. 2022

정보라 - <저주 토끼>


여름이면 추리, 공포 소설 하나쯤은 읽어주어야 한다.

여름이 오기 전 여름을 대비하여 올해는 어떤 소설을 읽을까 검색을 했다.

주로 고전만 읽던 터라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던 중 여름. 추리. 공포.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작품이 있었다. 이름하여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


검색한 블로그에서는 칭찬 일색이었다. 2017년에 나와서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모양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 고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할까?


시내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는데 모두 대출 중, 예약 중 혹은 예약 대기 중이었다. 인기 도서와 신간은 확실히 다르구나!

수시로 도서관 앱에 들어가서 검색과 새로 고침을 하던 끝에 '마침내' 대출 예약에 성공하였다. 그때가 5월 10일이었다.

두 번째 대기자이니 한 달쯤 뒤에는 책이 내 손에 오겠지, 했다. 그런데 이놈의 책은 어찌 된 영문인지 6월이 지나고 7월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도서관에 전화를 막 하려던 8월 초 어느 날, 책을 빌려 가라는 연락이 왔다. 무려 석 달을 기다린 책, <저주 토끼>




작가는 정보라. 76년 생. 한국 나이 47세. 무려 연세대학교를 나왔고 무려 예일대학교 석사와 인디애나 대학교 박사를 졸업했다. 2013년 첫 작품 <씨앗>이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10년 차 작가인 셈이다.

요즘엔 작가도 다 고학력이다. 여성, 고학력이 요즘 문학의 트렌드인가?

고학력인 사람이 글까지 잘 쓰고 인기 작가라고 하니 괜스레 뾰족한 마음이 든다. 학력이 작품에 비해 프리미엄이 붙은 건 아닐까, 하며.

유희열이나 이적이 서울대 프리미엄을 받은 것처럼. (물론 유희열이나 이적은 프리미엄이 아니라 거품이라고들 한다.)


이제, 사설은 고만하고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저주 토끼>는 총 10개의 단편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저주 토끼: 저주가 걸린 토끼 인형과 저주를 받을 만한 술도가 집에 얽힌 이야기
머리: 변기에서 나오는 머리가 주인공의 삶을 잡아먹는 괴이한 이야기
차가운 손가락: 제대로 된 공포 스릴러물로써 자동차 사고를 당한 어느 여교사 이야기
몸하다: 동정녀 임신이 된 어느 여자의 임신 출산기
안녕, 내 사랑: 어느 인공지능 로봇의 생존기
덫: 여우누이 민담과 황금거위 동화가 뒤 섞인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흉터: 어슐러 르귄 풍의 SF 인간 괴수물
즐거운 나의 집: 이사 간 집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을 그린 공포물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판타지스러운 공상과학 같은 옛이야기
재회: 귀신을 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열 개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솔깃하고 아름답고 끌리는 이야기는 '덫'이었다. 서양의 동화와 우리나라 전래민담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 '판의 미로'같은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 아니면 오래된 전설의 고향 현대판을 보는 듯하였다. 두 가지의 색다른 소재를 신기하게 잘 배합한 작가의 탁월한 편집 능력과 스토리텔링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심야 괴담회에 나올법한 이야기로는 '차가운 손가락'이 있겠다. 마지막 반전과 결말이 상투스러운 듯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인데 새롭게 단장하는 것,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좋은 작가들의 능력이겠다.


'안녕 내 사랑'과 '즐거운 나의 집'과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어느 정도 결말이 예측이 되는 이야기여서, 이 작품들만 본다면 이 소설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고 좋은 평판을 받을 일인가, 싶다. 이 세 작품만을 든다면 이 작품의 인기 비결은 작가의 고학력 프리미엄이라고 단언컨대 나는 이야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단편들이 모든 작품이 수작일 수는 없는 법.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흉터'는 SF 소설의 대가 어슐러 K 르귄과 어법과 서술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긴 대개의 SF 작품들은 르귄이거나, 스티븐 킹이거나, 톨킨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들은 SF 문학의 처음이거나 전성기이거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담백하고 심심한 듯한 르귄의 문체에 충격을 받고 묘한 여운을 계속 가졌던 나는 웬만한 SF 소설, 그것도 여성이 쓴 소설이면 르귄의 향기를 느끼곤 한다. 이것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편견일 수도 있다. 여하튼 르귄은 너무도 큰 작가이기 때문이다.




정보라 작가는 부커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되었다. '저주 토끼'만으로 수상을 하기에는 약간은 부족해 보인다. 만약 수상했더라도 나는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정보라 작가의 다른 장편 소설을 읽어보아야겠다. 단편만으로 가타부타 하기엔 글이 너무 짧고 내가 가진 편견도 제법 크다. 그의 장편을 보고 우리나라도 아가사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이 곧 나올 거라는 믿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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