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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20. 2024

기숙의 외출

초단편 소설

  지팡이를 집고 마당을 나서며 살포시 닫으려는 대문은 기숙의 생각과는 달리 끼익 소리를 냈다. 40년이나 된 철제대문은 페인트칠을 여러 번 덧칠하여 이제 문짝끼리 이도 제대로 맞지 않아 닫을 때나 열 때나 온몸에 힘을 주어야 한다. 대충 아무렇게나 닫았다가 혹 바람이라도 세게 불어버리면 대문은 허공에 걸린 깃발처럼 나부끼며 제 멋대로 열렸다가 벽에 부딪혀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가 다시 격분의 함성을 내지르며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대문이 내는 광란의 소리를 듣기 싫은 기숙은 대문을 오갈 때마다 대문 문짝을 대문 틀에 꽉 끼우려고 노력했다.

  약국까지는 약 500미터. 혼자서 잘 갈 수 있을까. 기숙은 첫 발을 떼기도 전에 시멘트로 발라진 골목길을 쳐다보았다. 최근 3년 동안 나들이를 할 때 혼자 가본 적이 없다. 넘어질까 봐, 다칠까 봐, 가족들은 기숙을 금이야 옥이야 했다. 영수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최근엔 그 정도가 심하다고 기숙은 생각했다.

  "내가 두세 살 먹은 애도 아닌데 말이야."

  영수는 혼자선 집 밖에도 못 나가게 하고 기숙의 팔을 꼭 붙잡고 같이 나란히 걸었다. 외출을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했다. 슬슬 이런 영수의 지나친 관심이 구속처럼 느껴졌다. 기숙은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나 홀로 외출을 감행키로 한 것이다.


  "오늘은 꼭 약국에 가서 그것을 살 거야."

  기숙은 이렇게 다짐하며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골목길은 기숙이 혼자 걸어도 여유가 있었다. 길에는 하수구를 덮은 콘크리트 덮개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와있는 경우가 많아서 기숙은 앞을 보다가, 땅을 보다가 하며 걸었다. 자칫하면 울퉁불퉁한 덮개에 걸려 넘어진다.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게 어렵다는 걸 기숙은 잘 알고 있었다.

  좁고 한적한 골목길을 100미터쯤 걸으면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 그 길이 약국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첫 번째 골목길보다 세 배쯤 넓은 이 길에서는 오피스텔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자꾸만 이사를 가는 낡은 주택가에 무슨 오피스텔을 그렇게나 지어대는지, 기숙은 의문이 들었다.

  "누가 여기에 이사를 오기나 할까? 이 사람들은 입주가 된다고 생각하고 집을 짓기나 하는 건지 원, 쯧"

  약국 가는 방향으로 커다란 공사 차량이 나오고 있었다. 공사장을 통제하는 60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노란 봉을 들고 이리저리 흔들며 기숙을 제지했다. 아픈 다리를 지팡이에 기대어 잠시 서 있었다. 겨우 500미터 거리의 약국에 가는 데 뭐 이리 장애가 많은지, 기숙은 벌써 지친다. 이제 겨우 200미터쯤 왔는데 시간은 한참 지난 것 같았다.

  공사차량이 지나가고 60살 남자가 자리를 내주었다. 기숙은 다시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준다.

  "바닥에 흙이 많이 쌓였어요. 조심해서 걸어가세요."

  공사장 통제원은 기숙의 걸어가는 모양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기숙이 넘어질까 봐 걱정되는 기색이다. 통제원은 속으로

  "빨리 좀 지나가라. 여기서 넘어져서 문제 생기면 안 되는데. 어서어서 좀"

  라고 생각하며 기숙이가 길모퉁이를 돌아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오피스텔 공사를 하는 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었다. 이제 반쯤 지나왔다. 약국까지는 대로를 쭉 가면 된다. 그런데 이 대로는 약간 내리막이다. 건물들 옆에 차들도 빼곡히 주차가 되어 있다. 비록 대로이긴해도 원도심 주택가에는 인도와 차도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숙은 길 한가운데를 선택했다.

  빵!

  "아이코 깜짝이야"

  기숙은 자동차 경적이 울리는 순간 놀래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몸이 기우뚱거렸다.

   "넘어지면 안 돼. 여기서 멈춰 선 안돼"

  기숙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정신을 차리고 손과 다리에 힘을 주었다. 온몸의 근육이 신경이 바짝 섰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길 한가운데로 걷던 기숙은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 옆으로 비켜섰다.

  "지랄하네. 왜 내가 비켜야 되지? 저 차가 천천히 내 뒤를 따라와야 되는 것 아닌가?"

  마음은 조급한데 길 옆으로 비켜서느라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숙은 신경질이 났다. 앞서가는 차를 향해 지팡이로 삿대질을 해보는 하릴없는 분풀이를 하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나 봐요? 혼자 어디 가시는 거 오랜만에 보네요. 이제 괜찮으세요?"

  한적한 골목길 낡은 집에 사는 여자가 알은체를 했다. 이 여자는 장날도 아닌데 어쩌다 여기서 만나게 되었을까, 기숙은 좀 곤란해졌지만 기죽은 표시 안 내려고 당당히 대답했다.

  "아, 뭐 살 게 있어서. 어디 다녀옵니까? 조심히 가세요."

  기숙은 여자가 계속 말을 시킬까 봐 서둘러 입막음을 시도했고 여자는 "아, 예. 그럼 다음에"라는 말을 함으로써 기숙의 시도는 성공을 하였다.


  이웃집 여자의 공격까지 물리친 기숙은 마침내 약국 앞에 도착을 하였다. 명문약국. 이 동네에 명문약국이 들어선 지 30년쯤 되었다. 기숙은 명문약국의 단골이었다. 요즘 들어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이 생긴 기숙은 어쩔 수 없이 약국을 많이 가게 되었고, 약이 필요할때는 친근하고 친절한 명문약국만 찾게되었다.

  약국 문 앞에서 기숙은 약국 안으로 들여다보며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들어갈까 말까. 어쩌지."

  고민하는 기숙.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이왕 온 거 결심한 그것을 사야지. 그래 들어가자"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세 번쯤 반복한 기숙은 약국의 문을 힘차게 밀었다.

  "어서 오세요"

  다행히 약국 데스크에는 얼굴이 익은 약국 주인 양반이 자리에 없다. 절호의 기회다. 기숙은 생각했다. 한 발 한 발 약국 문에서 데스크까지 천천히 발을 끌며 갔다.

  "뭘 드릴까요?"

  "저..."

   기숙은 메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네, 뭐 필요하세요?"

  "저... 그 저..."

   기숙은 팔꿈치를 약국 데스크에 기대며 몸을 약간 약사 쪽으로 숙였다. 기숙은 약사만 들리게끔 속삭이고 싶었다. 기숙은 조용히 속삭였다.

   "쥐약 하나 주세요."

   "네?"

   똘똘해 보이는 젊은 약사는 멍청한 눈길로 다시 물었다.

   "네? 뭐요?"

   "쥐약. 쥐약, 약국에서도 팔지요? 쥐약 한 병 주세요."

   "아, 그 저 쥐약...."

   젊은 약사가 멍청한 눈으로 당황한 말을 얼버무리는 사이, 약을 조제하던 주인 약사가 커튼을 제치며 앞으로 나왔다.

   "기숙이 할머니, 여기까지 혼자 어떻게 오셨어요? 아드님 알면 큰일 나는데. 또 넘어져서 갈비뼈 부러지면 어쩔라고 혼자 다닙니까? 그리고 뭐? 쥐약? 할머니, 우리 집에는 쥐약 같은 거 안 팔아요. 쥐약은 사서 뭐 하시게요? 여기 박카스나 한병 드시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들 영수가 자리를 비운 좋은 기회에 쥐약을 한 병 사두려고 고생 끝에 약국에 왔건만, 약국에는 쥐약이 없다고 했다. 기숙은 쥐약이 있는데 없다고 속이는 건 아닐까 잠깐 의심했지만 형사도 아닌데 약사를 취조할 순 없었다.

  약국 의자에 앉아 약사가 주는 박카스를 한 병 다 마시고 기숙은 약국 밖을 내다보았다. 쥐약 사는 것도 실패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러면, 쥐약은 어데서 사야 되지, 하"


  우리 기숙씨는 왜 쥐약이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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