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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Oct 13. 2023

결국 또 돈인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영감>을 읽고

작년 연말에 tvN에서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김영하 소설가가 패널로 나온다기에 처음부터 챙겨보았다. 그러다 재미가 없어서 중간에 시청을 끊기는 했지만. 초반에 내가 챙겨 본 회차 중에 '내가 사랑한 인간'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회차에서 김영하 소설가가 그가 사랑하는 인간으로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를 소개하였다.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던 발자크에 대하여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소설가가 소개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영감'에 대해서도 아주 흥미롭게 들었다. 그래서 참여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의 도서로 선정하여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1819년 프랑스 파리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공화정과 왕정과 다양한 여러 개의 혁명을 더 거치고 '부르주아지'라는 신흥 계급이 막 등장한 19세기 프랑스 파리에는 자본을 매개로 하여 사회적 지위가 급상승한 부르주아쥐만큼이나 '돈'이 사회의 중요한 것이 되고 있었다.

늘 빚에 쪼들려 살았던 발자크는 그의 소설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해있던 자본의 위험성과 신분 계급의 위선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소설은 보케 하숙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돈만 밝히는 가장 속물적 인간으로 4층짜리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 보케 부인이 있는데, 이 보케 하숙에는 7명의 사람이 세를 들어 살고 있다. 2층 독채에는 한 귀족 부인이 빅토린이라는 먼 친척 아가씨와 함께 연간 1천2백 프랑을 주고 살고 있고, 3층에는 보트랭이라는 유쾌한 사나이와 은퇴를 하고 노년을 살고 있는 남자 한 명과 여장 한 명이 각각 살고 있다. (은퇴 노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제일 작고 초라한 4층에는 월 45프랑 짜리 작은방이 있는데 우리의 주인공 고리오 영감이 여기에 살고 있으며, 그의 옆방에는 시골의 귀족이자 법관이 되기 위해 대학에 온 외젠 라스티냐크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외젠이 돈을 벌고 출세를 하기 위해 파리 사교계에 등장하기 위해 각종 인맥을 쌓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는 도중, '돈'이면 다 되는 파리 사교계의 추한 면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고리오 영감이 사업으로 크게 번 돈을 두 딸에게 전부 갖다주면서 어떻게 버려지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소설의 주된 맥락은 '돈'이다.


나는 지금껏 고전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품만큼 돈에 대하여 세세히 쓴 작품을 보지 못했다. 방 한 칸짜리 월세는 45프랑, 저녁 식사만 하는 한 달치 밥값은 30프랑, 대학 법학과 등록금이 연간 1천5백 프랑, 보통의 남성 양복 한 벌에 2백 프랑, 방 두 칸짜리 집은 1만 프랑...... 무얼 하든 돈이 얼마나 들고 얼마가 필요한지 몇 프랑, 몇 수우까지(우리로 치면 몇 원 몇 전) 하나하나 금액을 써 놓은 소설을 흔치 않다. 그런데 발자크는 소설의 꽤 많은 부분을 돈을 나열하는데 투자했다. 이런 이유로 발자크의 소설은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에게 아주 좋은 연구 사료를 제공한다고 하니, 문학의 소용이 이런 데서도 빛을 발한다.


고리오영감은 꽤 많은 재산을 모은 사업가였다. 일찍이 부인을 잃고 어린 두 딸을 결핍 없이, 뭐든 딸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서, 최고급의 것들로 딸들을 키웠다. 그런 딸을 은 한 명은 귀족, 한 명은 은행원에게 시집도 잘 갔다. 고리오영감은 딸들이 시집갈 때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각 80만 프랑씩)을 주고 자신은 생존에 꼭 필요한 연금만을 남겨 두었다. 고리오영감의 삶의 이유는 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는데, 딸들에게 돈을 줄 때 딸들이 가장 행복해했기 때문에, 딸들이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고리오영감은 이미 80만 프랑을 상속해 주었는데도 자신의 것을 하나씩 내다 팔아가며 딸들에게 돈을 주었다.


하지만 수입은 한정이 되어 있는데 지출이 무한정이라면 반드시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수입이 없는 고리오영감에게 딸들은 자꾸만 돈을 더 달라고 하니, 마침내 고리오영감은 철없는 딸들에게 줄 돈이 없으며 그래서 딸들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충격에 그만 쓰러지고 죽음에 이르고야 만다.

죽음 바로 직전에 어느 딸도 자신의 임종을 지키려 하지 않자 그제야 고리오영감은 "돈을 다 주지 않고 갖고 있었더라면 딸들이 나를 보러 와주었을 텐데, 아버지가 아니라 돈을 보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왔을 텐데"라며 몹쓸 딸들을 원망한다. 그러면서 고리오 영감은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은 항상 자기 가치를 생색내야 하는 법인데... 딸들의 자식이 내 복수를 해 주겠지.


고리오영감은 자신이 쓸쓸히 죽어간 것에 대한 복수를 자신의 손자, 즉 딸들의 자식들이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도 고리오영감의 믿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외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자식은 부모를 닮거나 부모에게서 배우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 배울 것이 없는 고리오의 딸들(이름은 레스토 백작 부인과 델핀이었다.)은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고리오영감이 손자에게 복수를 염원해도 괜찮을 만큼 그는 아무 죄가 없을까?

고리오영감은 돈만 벌 줄 알았지, 자식을 어떻게 훈육하는지에 대하여 고민도 하지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다. 그저 딸들이 원하는 물건을 사다 주고, 돈을 주는 것이 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실천했다. 고리오의 딸들이 다른 사회적 가치는 알지 못한 채, 편하게 돈을 구하는 방법(아빠에게 달라고 하는)만을 행했다면, 그것 역시 고리오영감의 책임이다.

부모란, 자식이 편하게 자라도록 돕는 사람이 아니라, 자식이 온전한 자립을 이루어 스스로 사회에서 온전한 삶을 꾸릴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훈육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리오영감은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고리오영감이 겪은 문제는 비단 고리오영감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정점을 찍고 있는 지금 현재에 '돈''자녀 훈육'은 더욱 큰 화두가 되어있다.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고.

결핍과 콤플렉스는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일 수도 있다. 이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때론 좌절하고, 많이 사고해서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누군가는 훌륭한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어느 위대한 위인이 결핍과 고통과 좌절이 없던 사람이 있었던가!


독서 토론의 논제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외젠은 사교계에 입성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1천2백 프랑을 달라는 편지를 쓰고 돈을 받아냅니다. 고리오 영감을 두 딸도 아버지를 찾아와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연금을 타냅니다. 만약 내 자식이 이런 요청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토론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견이 비슷했다.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 자식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 경제적 형편이 허락한다면, 자식들이 좀 더 편하게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내 재산을 줄 용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돈을 벌고 있고, 모으고 있다.


고리오영감이 살던 시절은 신흥자본 계급이 막 부상하여 '돈'이 귀족 신분을 능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지금은 '돈'의 유무와 다소(多少)가 계급이 되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돈'에 민감해지고 있고, 자녀들은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 특히 '돈'에 대하여서 그렇다.


고리오영감의 두 딸은 소설에서만 머무는 인물들이 아니라, 현대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살아있는 인물들임에 틀림이 없다. 고리오영감이 죽어가면서 하던 '돈이 있었다면 딸들이 아버지가 아니라 돈을 보러 왔을 텐데. 그러면 나는 덜 외로웠을 텐데'라는 말이 심심찮게 뉴스에서 현실로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사회인 것이다.

돈을 끝까지 안 내놓고 죽을 때까지 내가 쥐고 있을 겁니다. 그래야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찾아오고 챙겨주겠죠!


아까는 자식에게 주기 위해서 돈을 벌고 모은다는 이도, 토론의 마지막에는 이처럼 돈을 끝까지 쥐고 있겠다고 말한다.

자식에게도 보탬이 될 만큼 주기도 해야 하겠고,

자식이 가끔 찾아올 유인책으로 쥐고도 있어야 하겠고.


아,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결국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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