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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n 26. 2024

엄마는 자식의 '후제'를 위해 기도를 한다.

경상도 엄마가 하는 자녀를 위한 소망

대학 입학 학력고사를 치러 가기 전날이었다. 

우리 집은 약간 시골이어서 시험을 치는 대학교에 아침 일찍 도착하려면 조금 무리가 되었다. 학력고사를 보는 대학교 바로 앞에 외사촌 오빠가 살았다. 시험 전날 외사촌 오빠 집에 미리 가있기로 하였다. 


가방에 책을 넣고 수험표를 넣고 간단히 짐을 챙겨서 식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잘 다녀오겠노라고. 사실 엄청 떨렸는데 떨림을 가슴속에 감추고 의연을 가장하였다. 아마 엄마도 아버지도 그랬으리라.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 학력고사를 치는 사람도 내가 처음이었고 대학 문턱에라도 가려는 사람도 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뒤돌아서는 나를 엄마가 불렀다. 

"태야, 이게 갖고 가라"


엄마는 무언가를 싼 듯한 파란색의 손바닥만 한 헝겊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의문형의 얼굴을 하고 엄마 얼굴을 보았다. 

"배총이다."

배총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듣고 나는 더욱 의문형의 얼굴을 지었다. 

"엄마캉 아아캉 이어져있던 배총. 탯줄말이다. 너거 오빠부터 언니들 꺼 꺼정 다 잘 모아놨는데, 세월이 가이 어느 기 누구 꺼공 모리겠다. 고마 이거 말키 다 갖고 가라. 어느 기 하나라도 효험이 있겠지. 너거 오빠도 이거 갖고 가서 시험봐가 공무원 턱 하니 붙었다 아이가?"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이가 태어날 때 아이 배꼽에 붙어있던 탯줄을 자르는데 그 탯줄을 잘 말려서 간직하였다가 그 아이가 큰 시험을 칠 때 들려 보내면 좋은 운이 따라온다는 것이었다. 잘 말라비틀어진 탯줄을 배총이라고 하며, 이 배총은 특히 시험운에 기막힌 효험이 있다는 거였다. 


뭔가 징그럽게 생겼지만, 큰 시험에 좋은 운이 따라온다는 말에 나는 언니 오빠들의 기운까지 덤으로 얹어 배총 부적을 주머니에 잘 챙겼다. 

그날 저녁 떨리는 심장은 끝내 진정되지 않아 날밤을 꼬박 새웠다. 그럼에도 배총 부적 덕분인지 그동안 공부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건지, 나는 지원했던 학교에 합격을 하여 부모님과 가족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었다. 


쓰임을 다한 배총을 엄마는 다시 엄마의 보물 창고처럼 쓰던 오래된 와이셔츠 상자 안에 다시 잘 챙겨 넣으면서 말했다. 

"니도 후제 시집가서 아- 낳으면 배총 꼭 달라 캐가 잘 챙기나라. 그래가 너거 애들 시험칠 때 엄마가 하디끼 챙기주라. 그라믄 시험마다 턱턱 잘 붙을 거 구마는."

배총의 효험을 알아버린 나는 나도 엄마처럼 하리라 다짐을 하였다. 



나도 아이들 배총을 잘 챙겨두었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나도 큰 애 작은 애 배총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 곳에 같이 두고 말았다. 나도 애들 수능칠 때 꼭 챙겨 넣어줘야지, 하면서 이사를 다섯 번 여섯 번 다닐 때마다 꼭꼭 모시고 다녔다. 


큰 애 수능시험 전날이었다. 나는 고이 모셔두었던 배총을 꺼내고 큰 애를 불러 배총을 건넸다. 

"아들아, 이거 엄마가 20년 동안 이 날을 위해서 고이 모셔둔 너희들 탯줄, 즉 배총이다. 고래로, 큰 시험 때마다 이 배총을 몸에 지니면 좋은 기운이 도래하여 시험 합격운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엄마의 정성이다, 생각하고 내일 시험장 갈 때 몸에 지니도록 해라."


나는 우리 아들도 나처럼 엄마의 정성에 감동받고 시험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부적에 실어 보내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들은, 

"와, 울 엄마 신세대 엄마고 미신 같은 거 안 믿는 요새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고? 나는 이런 미신이나 행운에 안 기대고 내 스스로 부딪혀 볼 거다. 엄마 맘은 알겠는데, 나는 안 갖고 갈란다."

라고 말했다. 부모의 불안하고 얄팍한 마음은 아이에게 '그래도!'라며 갖고 가기를 청원했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부적이나 행운에 기대지 않겠다고. 한번 이렇게 해서 좋은 소식이 있으면 앞으로 인생에서 맞이하게 될 매번의 시험에서 이런 부적이나 행운을 기대하게 될 텐데 길게 보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20년을 배총을 간직하였던 내 정성이 빛바랜 것 같아 한순간 아이에게 섭섭했다. 엄마의 정성을 이런 식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었고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위안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나는 우리 아이가 대견했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했던가. 그 순간만큼은 아이는 엄마보다 성숙한 인간이었다. 

배총 없이 임한 수학능력시험에서 아이는 좋은 점수를 얻었고, 수능 점수가 발표 나기도 전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수시로 입학을 하였다. 부적 없이도 행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견뎌낸 것이다. 


나는 둘째가 수능을 볼 때까지도 배총을 갖고 있었다. 둘째에게도 배총을 건넬까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견뎠다. 둘째도 무사히 한 번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몇 년 동안 아무 쓰임새도 없는 배총을 계속 갖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작년에 아홉 번째 이사를 하면서 나는 두 아이의 배총을 마침내 버리고 왔다. 귀중한 짐을 따로 쌀 때 배총을 쥐었다 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계속 갖고 있을까, 행운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버릴까. 잠깐 생각했다. 

나는 배배 말라비틀어지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흉물처럼 보일 배총을 여러 번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 잘 싸서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나의 불안을 잘 싸서 버렸고 부질없는 기대는 성실한 노력과 그에 따른 행운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가끔씩, 괜히 버렸나 싶기도 하다. 아이를 낳을 때의 추억인데 싶어서다. 후회는 없다. 

다만 만약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우리 엄마처럼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애들 배총을 간수해 둬라. 후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식의 '후제'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에도 기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배총: 아이의 자른 탯줄로 시간이 지나 마른 상태의 탯줄. 많이 쓰는 말인데 포털 어디를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말키: 모두, 전부, 싹 다, 의 뜻을 지닌 사투리
-후제: 나중에, 언젠가, 의 의미를 지닌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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