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남편과 산책을 나갔습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왕복 4km 정도로 걸어서 갔다 오면 두 시간이 채 못 되는 시간 안에 다녀올 수가 있지요. 주말마다 다니는 산책코스랍니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산책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늘만 꾸무리할뿐 비는 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틈을 타 산책을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반환점돌 듯하며 길을 되짚어 나갔습니다. 돌아갈 때는 산책길 말고 도로변 가로수길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트럭이 하나 서있습니다. 주말에 뭐 하는 트럭이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길을 재촉하니 어느새 트럭 가까이까지 다다랐습니다.
트럭은 튀밥과 옛날 과자를 파는 트럭이었어요.
"요새 누가 박상을 사가는가 모르겠다. 저래 종일 고생해가 밥은 먹고 사는강?"
"밥 묵고 사니까 팔러 나오겠지. 유통기한도 기니까 재고 부담도 없을 거 아이가?"
"것도 글캤네. 근데, 서울 사람들은 '박상'이라카믄 뭔 말인지 모르겠제?"
"'박상'도 사투린가? 박상이라 안 카믄 그라믄 뭐라 하면 되지?"
우리는 '박상'을 표준말로 뭐라고 하는지 걸음을 걸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아, 튀밥. 튀밥 아인가?"
"튀밥? 그런 말도 있나?"
나는 '튀밥'이라는 말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참말로, 뻥튀기를 한 곡물 과자를 '튀밥'이라고 한다네요.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박상이 튀밥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박상'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묘령의 단어라는 것도 알았지요. 저랑 남편은 '박상'이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어릴 적 저의 명절은 '박상'만드는 줄을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되곤 했습니다. 막내여서 할 줄 아는 집안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엄마는 항상 "태야, 장에 가서 박상 티기 온나. 설 되기 전에 깡장(강정) 맨들구로."라며 심부름을 시켰고 저는 뻥튀기 아저씨가 오는 대목 장날에 일찍부터 장에 가서 줄을 서서 박상이 튀겨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내 차례가 오고 박상이 튀겨질 때까지는 반나절은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때는 강정을 다 집에서 만들 때였으니까요.
'박상'이라는 말은 지금 경상도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도 아마 모를 것 같습니다. 말도 살아있고 사용을 해야 존속/유지/발전이 될 텐데, 요즘 누가 '박상'을 튀기러 가나요. 이렇게 다 튀겨서 과자를 만들어서 트럭에 쟁여놓고 파는 데 말이죠. 돈만 있다면, '박상'이든 '튀밥'이든 '강정'이든 언제든지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저녁에 집으로 오는 아이들한테 물어봅니다.
"너거들, 박상이 뭔지 아나?"
"박상? 뭐 김상, 이상, 최상. 이런 사람 부르는 일본 말 말하나?"
"아니, 쌀이나 옥수수 튀긴 거 말이다."
"옥수수는 팝콘아이가?"
"문디. 팝콘은 박상에다 양념해 가 요리한 거고. 곡물을 고대로 튀긴 것 말이야. 그걸 박상이라고 한다. 표준말로는 튀밥이라 칸다네."
"튀밥도 첨 들어보는데 내가 박상을 우예 알겠노?"
역시나. 젊은 애들은 모르는군요. 하지 않은 활동이 되니 자연스레 언어도 사라집니다.
애들과 대화를 떠올리다 보니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아들이 졸업을 앞두고 자취방을 정리하고 우리 집으로 짐을 다 옮겨왔습니다. 쓰던 이불은 다 버리고 왔네요. 침대에 요와 이불을 새로 깔아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또 떠날 아이라, 집에 있던 것을 쓰기로 했어요. 제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안방 붙박이장 열어보면 이불캉 요때기캉 마이 있다. 니 맘에 드는 거 암거나 골라 온나."
"이불은 알겠는데, 요때기는 뭔데?"
"요때기도 모르나? 바닥에 까는 거 그거. 음, 아 그래 영어로 매트라 카믄 알아 묵겠나?"
"매트? 그거 우리말로 그냥 '요'라 하는 거 아이가? 요때기는 사투리도 아니고 엄마만 쓰는 엄마 한정 특수어 같은데."
불현듯 아들놈은 엄마가 이상한 말을 막 지어내서 하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을 합니다. 괘씸한 놈!
"아이거든. 바닥에 깔고 자는 거, 이거 '요때기'라 하거든. 할매나 이모들한테 물어봐라. 엄마가 지어내는 말인가 아닌가. 인마 이거는 엄마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단 말이시."
"아니, 말을 서로 소통이 되게 해야지. 알아듣도 못하는 말을 하니까 글치."
누가 답답한데, 자기가 더 답답한 듯 되려 성질을 내고 있습니다 그려.
요때기, 과연 처음 듣는 말이십니까?
*꾸무리: 흐리다. 구름이 끼였다. 는 뜻의 사투리
*박상: 튀밥의 경상도 사투리. 적어도 우리 동네는 이렇게 썼다.
*요때기: 요. 매트의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