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Jul 10. 2024

사투리인 듯 사투리 아닌 듯 알쏭달쏭한,

<한 바닥>과 <알장>에 대한 소회

작년에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1쪽을 가리키는 말인 '한 바닥 두 바닥'이 경상도 사투리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내줍니다.

"요번 시험은 1과 2과 3과 9쪽에서 39쪽까지다. 알겠나?"

"예"


선생님이 나가시고 나면 우리는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손으로 세어봅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전부 15장입니다. 그리고 또 세어 봅니다.

한 바닥 두 바닥 세 바닥... 전부 30 바닥입니다.

아, 30 바닥이나 외워야 합니다. 절망입니다.


친구들은 물어보곤 합니다.

"야, 니 영어 공부 몇 바닥 남았노?"

그러면 공부 잘하는 애들은 이렇게 답하죠.

"어제 난 테레비보다가 잠들어갖고 공부 하나도 못했다. 우짜꼬!"

반면,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난 어제 너무 공부가 잘 되는 거라. 그래서 열 바닥 다 외웠데이. 이번 시험 기대해래이~"


그런데, 막상 시험 점수가 나오면 성적 안 좋은 친구는 이번에도 겨우 50점을 넘었고요, 공부 못했다고 울상이던 친구는 또 95점을 받았습니다. 연기가 탁월한 건지, 진짜 머리가 좋은 건지 알쏭달쏭합니다.


1쪽을 세는 단위인 '바닥'이 경상도 사투리라니, 정말 그런 걸까요? 너무 많이 자주 썼던 말이라,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아는 표준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상도 사람인 제가 '바닥'이 사투리라고 하니 의외의 놀라움을 가질 밖에요. 저만 놀란 건가요?



종이와 관련된 사투리가 나왔으니 하나 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회사를 그만둘 때 업무 다이어리를 다 가지고 왔습니다. 기념으로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빈 다이어리도 몇 개 챙겼습니다. 노트로 쓰려고 말이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났는데도 빈 다이어리는 아직 그대로 책장에 꽂혀있네요. 잘 사용이 안되더라고요. 요즘엔 노트와 메모지가 부족한 시대는 아니니까요.

다이어리 표지가 두껍고 무거워서 사용과 휴대가 불편한 점도 한몫을 하는 같았습니다.

그래서 표지는 버리고 안에 있는 종이만 빼고 묶어서 연습장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딸애에게 다이어리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안에 알장 다 빼갖고 엄마 줘."

딸은 '알장'이 뭔데.라고 되묻습니다.


나는 딸애가 '알장'을 모를 줄을 몰랐습니다.

"알장! 다이어리 안에 있는 종이말이다."

"아, 속지?"

"속지? 어 그러고 보니 속지라고도 한 거 같다. 근데 '알장'이 더 듣기 좋다 아이가? 순우리말이기도 하고."

"그거 사투리제? 엄마만 쓰는 거 같은데?"


'알장'이 사투리라니? 그냥 '속지'라는 말의 우리말-표준말 아닐까요?

그런데 '알장'이라고 사전을 검색해 보니,

"머릿장중에서 옷이나 귀중품을 넣어두는 제일 작은 장"

이라고만 나오네요.

아니면, '계란이나 메추리알로 담근 장조림'을 '알장'이라고도 한다고 사전이 아닌 다른 통합 문서에서 검색이 됩니다그려.


여기서 저는 더 놀랐습니다. '알장'이 표준말이 아니라니! 다른 사람들이 '알장'을 모르다니!

표지 말고 안에 있는 종이를 거의 다 '알장'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책을 사러 문방구에 갔습니다. 줄공책을 종류별로 골라 봅니다. 어떤 것은 표지가 예쁘고 어떤 거는 알장이 많고 어떤 거는 알장이 맨들맨들하였습니다. 예쁜 표지와 많은 알장 중에서 고민에 빠집니다. 어떤 공책을 고를까? 평소에도 미적 감각이 젬병이었던 저는 하던 대로 했습니다. 알장이 많은 공책을 골랐던 거지요. 실속파였던 것입니다.


'알장'

오랜만에 다시 입 밖으로 내뱉어 말하여 보니 참 예쁜 말인 것 같습니다.

속지, 내지 같은 한자어보다 '알장' 참 예쁩니다. 뭔가 알같이 생긴 구슬이 또르르르 굴러가는 느낌입니다. 말이 주는 느낌도 그렇고 '알장'을 말했을 때 입 속의 느낌도 박하사탕이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오래 묵은 단어를 하나씩 끄집어 낼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알장'이 그렇습니다. 말과 함께 옛 추억도 함께 옵니다. 그래서 언어는 살아있는 사회유기체라고 하나 봅니다.

이전 18화 너의 이름이 튀밥인 걸 이제 처음 알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