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Jul 17. 2024

아버지는 그놈이 안 무섭다고 하셨...

벌레와 경상도 사투리

여름이다. 너무너무 더운 여름이다. 일터에서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다. 여름 감기가 걸렸다. 

의사 선생님 말이, 중간중간 자주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된단다. 오케이, 접수. 


일터 실내 환기를 위해서 출입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환기는 되겠지만 불청객이 날아 들었다. 

벌과 파리와 날벌레가 자기네들을 환영하는 줄 알고 힘차게 날아들었다. 


"윙~~~ 윙~~~"

소리가 너무 커서 같이 일하는 우리 세 명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리 나는 쪽을 찾아본다. 

아주 커다란 똥파리가 시커먼 기운을 뿜뿜 뿜으며 힘차게 날아다닌다. 

그깟 파리, 무시할 수도 있지만 파리가 내는 '윙~~ 윙~~'소리는 너무 커서 집중력을 흩트리고 엄지 손가락만 한 크기의 시커먼 공중비행체는 혐오감을 준다. 모두들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 


"저거를 잡아 죽이든지, 훗차 보내든지 해야겠네요."

내가 말했다. 책상 위에서 플라스틱 서류철을 꺼냈다. 노란 플라스틱 서류철을 대고 허공에 무당이 굿을 하듯 손을 휘젓었다. 똥파리를 밖으로 훗차 보내려는 몸짓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파리가 더 똑똑한 것같았다. 파리는 절대 내 손이 닿는 곳으로 내려오지 않고 더 높은 곳에서 맴을 돌았다. 영악한 놈!


에프킬러를 찾았다. 창고에 작년에 쓰던 에프킬러라 구석에 너부러져 있었다. 그놈을 가져다가 파리를 향해 힘차게 발사했니다. 운동성이 좋은 파리는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지만, 사람이 전쟁에서 융단폭격하듯 에프킬러를 허공 여기저기를 퍼붓는데야 저도 별 수 없었다. 약에 취해 바닥에 널브러지는 수밖에.


똥파리 시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리를 정리한 후에야 옆자리 동료가 물어보았다. 

"훗차 보낸다는 게 내쫓는다는 말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네. 훗차 보낸다고도 하고, 훗차뿌라,라고도 하고요."

모두들, 처음 들어본다며 "아~ 그렇구나"라고 한다. 

내 기준으론 급할 땐 '훗차뿌라'가 맞다. "밖으로 내보내라"라든지 "내쫓아"라는 것은 음... 뭔가 목에서 탁 걸려 쉽사리 밖으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급할 때 무의식적으로 편한 말을 쓰는데 그 순간에 "훗차 보내자"가 그런 말이다. 



벌레 이야기가 나오니 또 생각나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우리 마을에는 플라타너스가 많았다. 여름에는 플라타너스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생물체들도 많았는데 송충이가 그중 하나였다. 요즘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요즘 어린 학생들은 송충이를 본 적도 없을 거다.


여름에 나무 그늘 밑에서 놀고 싶어도 송충이가 떨어져 송충이한테 쏘일까 봐 조심하였다. 그래도 여름에는 물가 아니면 나무 그늘 밑 밖에 없으니 송충이가 무서워도 나무 그늘 밑에서 흙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곤 했다. 


어느 날엔가 친구들이랑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부엌으로 들어가며, 

"엄마, 밥 언제 묵노?"

라고 엄마를 부르자 엄마가 나를 돌아보았다. 

"니 머리 위에 붙은 그기 뭐꼬? 무슨 벌거지고? 송충이 아이가? 함 보자"

"뭐? 송충이? 어데 어데? 우짜노 히힝. 빨리 떼 도! 퍼뜩"


송충이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소름이 끼쳤다. 눈으로 보지도 않은 송충이가 내 몸 위를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손으로 송충이를 떼주었다. 내 머리 정수리 부근에서 하나, 내 등에서 하나, 두 개를 떼었다. 

"또 있는지 봐바. 또 있으면 우짜노. 좀 자세히 봐바."

나는 울상이 되어서 엄마한테 징징거렸다. 엄마는 나를 앞뒤로 돌려가며 꼼꼼히 살폈다. 


"인자 없다."

엄마는 송충이를 손으로 잡고 밖에 나가 흙바닥에 버렸습니다. 

"아이고, 숭축해라. 저 쪼맨한 기 보기만 해도 숭축해서 참 기분 나쁘네. 에잇"


한동안 나는 몸에 송충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몇 번이나 몸을 살펴보고 엄마한테도 뭐가 묻은 게 없는 보라고 계속 졸라서 엄마를 귀찮게 했었다. 



엄마는 뭔가 징그러운 것을 보면 '숭축하다'고 말했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엄마가 "아이고 숭축해라"라고 아주 강한 어조로 말한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엄마가 처음으로 바퀴벌레를 보았을 때였다. 


오래된 일본식 집에서 살다가 내 나이 14살에 시멘트 공구리로 지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바퀴벌레라는 것을 이사한 새 집에서 처음 보았다. 시커먼 것이 날래게 기어가는데 이것은 송충이 백 마리보다도 더 징그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나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처음 바퀴벌레가 나온던 날, 엄마는 아버지보고

"뭐하는교! 어서 잡으소"라며 아버지를 떠밀었고, 아버지는

"에헤이, 지금 잡을라 카는데 와 자꾸 사람을 밀어쌌노! 가만있어 보라카이"

라며 자신이 바퀴벌레를 못 잡고 있는 사나이답지 못함을 애먼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결국 그날은 잽싼 바퀴벌레와의 승부에 우리 가족은 지고 말았다. 

"아이고, 내 살다 살다 이리 숭축한 거는 처음 본대이. 아이고 무시라"

엄마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며칠 뒤 바퀴벌레는 욕실에서 다시 기어 나왔다. 첫 승부에서 치욕의 패배를 맛보고 설욕전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바퀴선생이 나왔다는 소식에 번개처럼 달려와 이놈이 기어들어가기 전에 전광석화같이 욕실 슬리퍼로 내려쳤습니다. 

"딱!!"


우리 모두는 슬리퍼를 뒤집는 것을 모두 두려워했다. 그놈이 보이지 않으면 살아서 도망간 것이니 또 나올까 두려웠고, 그놈이 슬리퍼에 깔려 죽었으면 죽은 시체의 몰골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혹시나 한 대 맞았는데도 죽지 않고 있다면 슬리퍼를 든 순간, 도망을 갈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두려운 한 요소였다. 슬리퍼 위로 몇 번이나 내려치고 밟고 짓이긴 뒤에야 슬리퍼를 로또 번호 개봉하듯이 슬로 모션으로 뒤집어 보았다. 짜잔~~


에그머니! 그놈은 아주 흉측한 몰골로 죽어있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답게 뒤처리를 깔끔해서 선두에 서서 했다. 가장이여, 박수받아 마땅할 지어다. 

엄마는 자리로 돌아가 TV앞에 앉으시며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무시라, 아이고 숭축하데이. 인자 안 나와야 될낀데"

엄마는 용감한 알았는데 그도 나와 같이 연약한(?) 여자였다. 



-훗차다/훗차보내다: 멀리 쫓아보내다,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사전을 찾아보니 '후치다'라고 나온다. 우리 동네에서는 훗차다라고 사용했다. 

-벌거지: 벌레,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인자: 이제,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숭축하다: 징그럽다, 괴이하다, 이상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경상도 사투리. 아쉽게도 사전에는 없다. 


이전 19화 사투리인 듯 사투리 아닌 듯 알쏭달쏭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