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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l 24. 2024

불뚝성과 찔뚝, 그 어딘가

경상도 집안 남매의 말다툼

나는 고모가 다섯이다. 다섯인 고모의 성격은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정작 본인들은 극구 부인하시지만. 고모들은 다들 가까운 곳에 살았다. 옛날에는 가까운 이웃에 딸들을 시집보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 셋째 고모와 넷째 고모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셋째 고모: 오빠, 청도 큰집 잔치 갈건교?

아버지: 가야지. 와?

셋째 고모: 우리 부조 좀 부칠라꼬요. 이 돈 좀 같이 부조해 주소.

아버지: 니는 직접 안 가고 맨날천날 내한테 부치나? 얌새이 맨키로.

셋째 고모: 우리는 딸 아이고 오빠는 이 집 식구 아인교? 돈이라도 부치는 기 어덴데? 엥가이 생색내쌌네.

아버지: 뭐라꼬 씨부릿쌌노, 어이!

셋째 고모: 아따 마, 돈이나 같이 부치주소! 이리저리 캐샀지 말고.

아버지: 못됐구로!

셋째 고모: 아이고, 별 일도 아이구마는. 사람 잡아 묵으라 카네.

넷째 고모: 오빠, 내는 무릎이 아파가 몬 감더. 내 거도 좀 가는 길에 부치주소.

아버지: 이것들은 맨날 부칠라 카는 구나, 어이!

고모들: 아따, 그거 좀 해주믄 어떻노. 오빠가 돼서.

아버지: 이노무 가씨나들이 마 콱 마.


옆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있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엄마: 아따 마 고마하소. 오래비나 동생이나 똑같구마는. 오빠가 돼서 부조 대신 부치줄 수도 있고, 또 고모들은 맨날 부치 달라 카지 말고 한 번은 가믄 좋다 아이가. 서로 의논 좋게 하는 되겠구마는, 말도 이리 정 떨어지게 하는공.

아버지: 내가 망구에 뭐라 캤나? 나는 고마 가만있었지.

셋째 고모: 아이가나? 가만있었단다. 오데 오빠가 가만 있었능교? 생난리를 치더마는.

엄마: 내가 뭔 말만 하믄 너거 오빠는 맨날 '내가 망구에 뭐라 카나' 이칸다. 아이고 답댑이. 내 속을 누가 알겠노. 세상천지 느 오빠 같은 남자가 또 있겠나. 내나 되니 같이 살고 있지. 내가 바보 축구 쪼단기라~


엄마는 여기까지만 하면 될 것을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마: 누가 김가 아니랄까바. 당신이나 우리 시누부들이나 전신에 다 불뚝성을 갖고 있으가, 내 한 모디 하믄 열모디를 보태는 기라. 어무이 아부님은 시상 점잖드마는 오래비 동상들 불뚝성은 누굴 닮아서 글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말에 아버지랑 고모들은 갑자기 한편이 되었다.

고모들: 불뚝성은 누가 불뚝성이란 말고! 불뚝성 가진 사람 어데서 보도 못했나. 우리가 무슨! 씰데없는 소리 마라!"


고모들이 모두 다 돌아간 후에 엄마는 진정으로 어이가 없어하며 말했다.

엄마: 이 집 식구들은 우째 그리 전부 다 뚝이 없노? 말 한마디 사근사근하게 하는 적이 없고. 전부 앞뒤 잘라 묵고 저거 할 말만. 덜컥 성질부터 내쌌코. 내사 이 집 시집와가 신랑이나 시누부한테나 다정한 말 한마디 들은 적이 없다. 우찌 이리 한 사람도 잔정이라꼬는 없노? 아이고 몸서리야~


고모들이 왔다 가면 언제나처럼 엄마는 화풀이, 넋두리를 아버지에게 쏟아내었고 아버지는 '시끄럽다 고마'를 남발하며 엄마를 외면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버지가 잔정 없고 질뚝없는 무심한 사람이라며,

"울 엄마는 만다꼬 내를 이 집에 시집보냈을꼬? 나는 도망 안 가고 와 여 이리 안즉꺼정 살고 있을꼬?"

라며 한풀이를 해댔다.

엄마의 한풀이 끝에는 항상 이런 말도 뒤따랐다.

"꼭지에서 부은 물이 발치로 갈거라서 우리 아~들도 당신처럼 찔뚝없게 크는 거 아인가 모르겠다."


세월이 몇 십 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버지도 세상에 없다.

그래도 가끔 엄마에게 전화하여 안부를 물을 때면 엄마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가시나야, 내는 니 죽은 줄 알았다. 하도 연락이 없어가. 니도 너거 아부지 질뚝없는 거를 우찌 이리 똑 닮았노? 니도 김 씨라 이기가?"


잔정 없고 찔뚝없는 것이 유전인지, 아버지에게서 배운 환경 탓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 아들 딸들이 나와 똑같이 툴툴대는 것을 보아도, 그것이 유전 탓인지 환경 탓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얌새이: 염소. 의 경상도 사투리

-망구에: 공연히, 언제. 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내가 망구에 뭐가 캤나'는 '내가 언제 뭐라고 하더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전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축구: 바보, 쪼다, 병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을 낮게 취급하며 부르는 말로 경상도 지역에서만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흔히 친구들과 싸울 때 '바보 축구 쪼다야!' 혹은 '바보 축구 빙신아'라고 한다.

-불뚝성: 갑자기 발끈하고 내는 화.를 일컫는 말

-찔뚝없다: 퉁명스럽거나 심하게 무뚝뚝한 상태를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 포털 사전에는 '주책없다'는 뜻의 경북 방언으로 나오는데, 경남 사는 나로서는 포털 사전을 전혀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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