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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뚝성과 찔뚝, 그 어딘가

경상도 집안 남매의 말다툼

by 홍월

나는 고모가 다섯이다. 다섯인 고모의 성격은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정작 본인들은 극구 부인하시지만. 고모들은 다들 가까운 곳에 살았다. 옛날에는 가까운 이웃에 딸들을 시집보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 셋째 고모와 넷째 고모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셋째 고모: 오빠, 청도 큰집 잔치 갈건교?

아버지: 가야지. 와?

셋째 고모: 우리 부조 좀 부칠라꼬요. 이 돈 좀 같이 부조해 주소.

아버지: 니는 직접 안 가고 맨날천날 내한테 부치나? 얌새이 맨키로.

셋째 고모: 우리는 딸 아이고 오빠는 이 집 식구 아인교? 돈이라도 부치는 기 어덴데? 엥가이 생색내쌌네.

아버지: 뭐라꼬 씨부릿쌌노, 어이!

셋째 고모: 아따 마, 돈이나 같이 부치주소! 이리저리 캐샀지 말고.

아버지: 못됐구로!

셋째 고모: 아이고, 별 일도 아이구마는. 사람 잡아 묵으라 카네.

넷째 고모: 오빠, 내는 무릎이 아파가 몬 감더. 내 거도 좀 가는 길에 부치주소.

아버지: 이것들은 맨날 부칠라 카는 구나, 어이!

고모들: 아따, 그거 좀 해주믄 어떻노. 오빠가 돼서.

아버지: 이노무 가씨나들이 마 콱 마.


옆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있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엄마: 아따 마 고마하소. 오래비나 동생이나 똑같구마는. 오빠가 돼서 부조 대신 부치줄 수도 있고, 또 고모들은 맨날 부치 달라 카지 말고 한 번은 가믄 좋다 아이가. 서로 의논 좋게 하는 되겠구마는, 말도 이리 정 떨어지게 하는공.

아버지: 내가 망구에 뭐라 캤나? 나는 고마 가만있었지.

셋째 고모: 아이가나? 가만있었단다. 오데 오빠가 가만 있었능교? 생난리를 치더마는.

엄마: 내가 뭔 말만 하믄 너거 오빠는 맨날 '내가 망구에 뭐라 카나' 이칸다. 아이고 답댑이. 내 속을 누가 알겠노. 세상천지 느 오빠 같은 남자가 또 있겠나. 내나 되니 같이 살고 있지. 내가 바보 축구 쪼단기라~


엄마는 여기까지만 하면 될 것을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마: 누가 김가 아니랄까바. 당신이나 우리 시누부들이나 전신에 다 불뚝성을 갖고 있으가, 내 한 모디 하믄 열모디를 보태는 기라. 어무이 아부님은 시상 점잖드마는 오래비 동상들 불뚝성은 누굴 닮아서 글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말에 아버지랑 고모들은 갑자기 한편이 되었다.

고모들: 불뚝성은 누가 불뚝성이란 말고! 불뚝성 가진 사람 어데서 보도 못했나. 우리가 무슨! 씰데없는 소리 마라!"


고모들이 모두 다 돌아간 후에 엄마는 진정으로 어이가 없어하며 말했다.

엄마: 이 집 식구들은 우째 그리 전부 다 찔뚝이 없노? 말 한마디 사근사근하게 하는 적이 없고. 전부 앞뒤 잘라 묵고 저거 할 말만. 덜컥 성질부터 내쌌코. 내사 이 집 시집와가 신랑이나 시누부한테나 다정한 말 한마디 들은 적이 없다. 우찌 이리 한 사람도 잔정이라꼬는 없노? 아이고 몸서리야~


고모들이 왔다 가면 언제나처럼 엄마는 화풀이, 넋두리를 아버지에게 쏟아내었고 아버지는 '시끄럽다 고마'를 남발하며 엄마를 외면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버지가 잔정 없고 질뚝없는 무심한 사람이라며,

"울 엄마는 만다꼬 내를 이 집에 시집보냈을꼬? 나는 도망 안 가고 와 여 이리 안즉꺼정 살고 있을꼬?"

라며 한풀이를 해댔다.

엄마의 한풀이 끝에는 항상 이런 말도 뒤따랐다.

"꼭지에서 부은 물이 발치로 갈거라서 우리 아~들도 당신처럼 찔뚝없게 크는 거 아인가 모르겠다."


세월이 몇 십 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버지도 세상에 없다.

그래도 가끔 엄마에게 전화하여 안부를 물을 때면 엄마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가시나야, 내는 니 죽은 줄 알았다. 하도 연락이 없어가. 니도 너거 아부지 질뚝없는 거를 우찌 이리 똑 닮았노? 니도 김 씨라 이기가?"


잔정 없고 찔뚝없는 것이 유전인지, 아버지에게서 배운 환경 탓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 아들 딸들이 나와 똑같이 툴툴대는 것을 보아도, 그것이 유전 탓인지 환경 탓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얌새이: 염소. 의 경상도 사투리

-망구에: 공연히, 언제. 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내가 망구에 뭐가 캤나'는 '내가 언제 뭐라고 하더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전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축구: 바보, 쪼다, 병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을 낮게 취급하며 부르는 말로 경상도 지역에서만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흔히 친구들과 싸울 때 '바보 축구 쪼다야!' 혹은 '바보 축구 빙신아'라고 한다.

-불뚝성: 갑자기 발끈하고 내는 화.를 일컫는 말

-찔뚝없다: 퉁명스럽거나 심하게 무뚝뚝한 상태를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 포털 사전에는 '주책없다'는 뜻의 경북 방언으로 나오는데, 경남 사는 나로서는 포털 사전을 전혀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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