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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l 31. 2024

'끄실란' 고기가 맛있다

일하고 있는 곳에 여름이면 이런저런 벌레들이 출몰을 한다. 건물 안에는 습기를 따라온 지네가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 공간 한 귀퉁이에서 낮은 포복으로 천천히 기어가고 출입문이 열고 닫힐 때의 틈을 타 잽싸게 시원한 곳에 들어온 파리는 마치 제 집인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천정을 날아다닌다. 

건물 밖에는 거미가 자기들만 안전한 거미줄을 치고 자기네 영역 자랑을 한다. 건물 안에서 일을 하는 나는 거미를 본 적은 없다. 건물의 키를 훨씬 넘는 언덕 배기 밑에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거미는 언덕과 바로 접해 있는 건물 뒤편에 집을 지었다. 


며칠 전 환경미화를 하는 A 씨가 토치를 손에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한 바가지쯤 되는 땀을 닦으며 한숨 돌리러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토치는 뭐 할라고요?"

"거미가 건물 뒤쪽에 너무 많아서 손으로 잡지는 못하겠고 토치로 불사를까 해서요."

"거미는 해충도 아닌데... 거미를 죽이면 다른 벌레들이 설치지 않을까요?"

나는 화형 당하는 거미가 안쓰러워 A 씨를 말리고 싶었다. A 씨는 거미가 너무 많아서 볼썽사납던데, 라며 말끝을 흐렸으나 거미는 해충이 아니라는 내 말에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땀을 식히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A 씨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10분도 안 되어 A 씨가 다시 들어왔다. 

"말을 듣고 보니, 보기 흉한 거 없애려다가 다른 벌레들이 설칠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냥 놔둘라고요. 그런데, 난 토치 이런 거 다루기 무서웠는데 지금 시험 삼아 한번 불 켜보니 이거 재밌네요."

마치 토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A 씨는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요? 저는 향초 불 켤 때 가끔 써요. 집에 성냥이나 라이터가 없으니까 토치가 필요하더라고요."

"아니, 그런 거는 작은 거고, 이거는 바비큐 할 때 쓰는 큰 거잖아요. 나도 하나 사서 바비큐 할 때 토치 써봐야겠어요. 왜, 그 불에 '끄실란' 고기가 더 맛있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불에 끄실라서 먹으며 더 맛있지요. 국룰이지요."


A 씨와 내가 고기이야기에 죽이 맞아서 이야기가 척척 오고 갔다.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료가 말이 한다. 

"근데, '끄실란'이 뭐예요? 그게 무슨 고기예요?"


그 말을 들은 A 씨는 깔깔대며 웃었고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 '끄실란'은 사투린데 A 씨가 어떻게 알고 있지?'

"A님, 경상도예요? '끄시르다'는 거는 경상도 사투리예요? 난 A님 사투리 쓰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요?"


A 씨는 말했다. 

"우리 외갓집이 경북 영천이거든요. 외갓집 가면 다 경상도 사투리라. 나는 외갓집에 놀러 많이 가서 경상도 사투리 많이 썼고 많이 알아요."

동료는 다시 물었다. 

"아니, 그래서 끄실란(?), 끄시르다(?)가 뭔데요?"

"끄시르다, 라 해서 불사르다 아니면 불에 그을리다는 뜻이죠. 바비큐나 고깃집 가면 사람들이 토치에 불 붙여서 고기에다가 불을 한번 사악 끄실라가꼬 구워주잖아요? 그러면 고기가 참 맛있죠."

A 씨가 말했다. A 씨의 말에 나는 살을 덧붙였다. 


"고기를 앞뒤로 디끼가면서 불에 살살 끄실라가 묵으면 맛있지요. 참, 디끼다는 건 뒤집는다는 경상도 사투리예요. 또 뭔 말인지 모를까 봐서 사족으로 붙입니데이~"



어릴 적 우리 가족의 겨울 단골 반찬은 까맣게 잘 마른 곱창김이었다. 겨울이면 마른 김을 두세 축을 사서 찬장에 쟁여 두고선 밥상 때마다 구운 뒤 가위로 잘라 간장과 함께 밥상에 놓았다. 구운 김만 있으면 겨울 반찬은 만고 땡이었다. 밥상을 차릴 때마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김 예닐 곱 장 불에 끄실라라"

'끄실르다'는 것은 불에 아주 살짝 닿게 하거나 굽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주로 김을 구울 때 많이 썼다. 


명절이나 제사 때 전을 구울 때 한쪽이 잘 익으면 뒤집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쪽은 익었다. 인자 디끼라.(혹은 디비라)"


어릴 적 딱지치기를 할 때, 상대편의 딱지를 내가 칠 차례가 되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인자 니꺼 완전히 디끼뿔낑끼네 단디 봐라이"


지금도 "고기 타요. 어서 뒤집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곤 한다. 

"고기 탑니다. 퍼뜩 디비이소."라고 해야 성에 차서 그렇다. 


내 고향 고깃집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마 절대 잊지 못할 거다. 그 고깃집 이름은 다음과 같다. 

탄다 디비라


글자만 보고 서울/경기 사람들이 뭐 하는 곳의 이름인지 알까? 새삼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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