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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ug 07. 2024

시골 오일장에서

경상도 할머니와 딸과 손자의 오일장 나들이

내 고향에는 오일장이 선다. 1일과 6일에 장이 선다. 제법 큰 장이어서 장날이면 평소에는 휑한 구시가지인 그곳이 장날만 되면 신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건도 싸고 구색이 많이 갖춰져 있는 오래된 시장이다. 


친정 엄마가 우리 아이를 키워주었을 때는 아이랑 엄마랑 장날이면 시장에 놀러 다니곤 했다. 사부작사부작 몸을 움직려는 아이의 소원도 풀고 오랜만에 엄마도 시장 구경을 할 때는 나는 짐꾼으로 따라나선다. 돌아다니는 중에 튀김, 떡볶이, 갓 튀겨낸 오뎅을 사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짐꾼을 할 가치가 있는 외출이었다. 


언젠가 셋이 장날이라고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왜인지는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날따라 시장이 평소와 다르게 부산스럽지가 않았다. 한산해서 여유는 있었지만 장날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오늘은 장이 억수로 지응네

-사람 없으니까 조용하니 나는 좋네. 

-우리사 길도 넓고 댕기기 좋아서 좋지마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래가 밥 묵고 살겠나. 장이 시끌시끌해야지.


엄마는 한산한 시장을, 물건을 깔고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장사치들을 걱정하였다. 

길거리에서 나물류를 파는 할머니들 서넛이 나란히 앉아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콩잎과 깻잎을 다듬어 파는 노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고, 나 많은 할매들이 이래 쪼로미 앉아 있네. 할매들이 밭에서 기른 건교?

-야. 전부 우리가 숨구고 키우고 따서 판다 아인교.

-콩잎파리 이거 얼맨교?

-요거 한 묶음에 오천 원.

-야! 머시 이리 비싼교. 오천 원이 아 이름가! 비싸서 못 사겠다. 갈람더. 


콩잎 할머니는 떠나는 엄마를 붙잡았다. 

-아지매 아지매, 사천 오백 원에 주께. 사 가소.

-사천 오백 원도 비쌉더. 삼천 원에 주믄 몰라도.

-뭐라카노? 이 아지매가 수앙 도둑놈 심보 아이가. 숨고 따서 이리 다듬고. 공이 얼매나 들었는데, 삼천 원에 팔란 말인교? 

-사는 사람 맴이지. 비싸서 안 사믄 안사는 갑다, 하믄 되지 와 손님한테 앙살인교? 

-그래도 그렇지. 이리 공을 많이 들은 거를, 삼천 원에 달라하이. 도둑놈 심보에 완전 뻔대아이가.

-이 할마시가요, 안 사는 손님 걍 보내믄 되지. 도둑놈 심보에 뭐 뻔대라꼬요? 참 기가 막히서. 할매 장에서 처음 보는 할맨 것 같은데. 손님한테 그래가 어디 한번 많이 팔아보소. 


빈정 상한 엄마는 콩잎을 사서 물김치를 담그려던 생각을 접고 그곳을 떠났다. 적당히 흥정하고 사지 그랬냐는 내 말에 엄마는 흥정 좀 하다가 사천 원 정도에서 사려고 했는데 할머니 말투에 빈정이 상했다고 했다. 나는 그 할머니나 엄마나 별 차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가시나 뭐라캐쌋노'라며 겸연쩍어했다. 


시장 중앙 튀김 골목에 들어섰다. 아이가 '엄마 떡볶이'하며 단골 튀김집 앞에 멈춰 섰다. 

-엄마 튀김이랑 떡볶이 먹고 가자.

-밥 놔두고 너거는 맨날천날 이런 거만 묵제.


말은 그리 하면서도 우리 셋은 튀김집 주인에게 튀김 일 인분 떡볶이 일 인분 순대 일 인분을 주문하였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이기 누고, 숙이 아이가. 아이고 오랜만이네. 잘 사나?

-아, 영란이 아이가. 오늘 장이라꼬 나왔는 갑네. 얼굴 좋다야. 


영란 아주머니가 우리 아들을 보고 묻는다. 

-야가 민수 아들내미인갑네. 즈그 아바이하고 똑 닮았네.

-은~지. 야는 외손지 아이가. 태야 아들내미다.

-글나? 근데 민수 영판이네. 우째 이리 즈그 외삼촌 하고 닮았을꼬.

-안 그래도 우리도 외탁을 많이 해서 신기하다 칸다. 우리 민수 영판이제? 

-민수 아들이라 캐도 다 믿겠다. 너무 닮아가. 아들은 외탁하믄 잘 산단다. 고마 잘 됐네.

-잘 살아야지. 그래 다음에 또 보재이~


영란 아주머니에게 순대 2인분을 포장해서 손에 들려준 다음 우리는 아주머니와 인사를 했다. 

튀김과 떡볶이와 순대를 배불리 먹고 나오는 길에 콩잎은 다른 할머니한테서 사천 원에 세 묶음을 샀다. 엄마는 여름 별미인 콩잎 물김치를 맛있게 담갔다. 그 여름 내내 잘 익은 콩잎에 밥을 얹고 토장을 얹어 쌈을 싸서 맛있게 먹었다. 경기도 이사 오고 여름 콩잎 물김치를 한 번도 못 먹었다. 이제 엄마표 콩잎 물김치를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여름 콩잎 물김치 파는 곳을 검색하고 있다. 



쓰고 보니, 위의 대화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까 우려스럽기도 하네요. 



-지응네/지응타: 한적하다, 한산하다,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포털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쪼로미: 나란히, 라는 뜻의 사투리. 사전에는 없는데 검색에는 많이 보이는 걸 보니 표준말인가 싶기도 하다.

-수앙: 순, 순전히, 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아주 많이 사용되고 있다. 

-뻔대: 철면피,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포털 사전에서는 '대머리'라는 함남 사투리라고 하는데...

-영판이다: 똑같다, 아주 많이 닮다, 는 뜻을 가진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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