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댁은 마산이다. 집안일이 있어 지난 주말에 마산 시댁에 내려갔다. 집안 청소와 정리를 위해 이방 저 방을 헤집고 다녔다. 그때 안방 장롱 안쪽 구석에서 사진 액자가 하나 나왔다. 아들아이 백일 사진이었다. 백일 사진을 찍고 액자를 두 개 만들어 하나는 친정에 하나는 시댁에 드렸는데 한동안 안 보이던 백일 사진이 장롱 구석에서 나온 거였다. 사진 속 백일짜리 아들내미는 올망졸망하니 그저 귀엽기만 하다.
3년 뒤 아들은 개구쟁이가 되었고 오빠가 되었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개구쟁이는 가만히 누워있는 여동생을 장난감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뻔히 보고 있는데도 눈알을 푹 찌르기도 하고 뺨을 철썩 때리기도 했다. 곰돌이나 강아지 인형을 조물딱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둘 사이를 항상 감시해야 했다. 아들이 귀엽다고 한 행동이 동생에게 해코지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기를 몇 개월, 이제는 개구쟁이도 누워서 버둥거리는 것이 인형이 아니라 사람인 것을, 동생인 것을 알게 된 때가 마침내 도래하였다. 그래서 나는 둘만 남겨두고 집안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정 엄마가 도와주러 오셨다. 우리는 오랜만에 거실 대청소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안방에서 놀라고 하고 개구쟁이 큰 놈에게 당부를 철저히 했다. 동생을 막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고.
청소에 집중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안방이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는 "아-들이 자나?"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얼라하고 까날라하고 둘이 있는데 안 떠들고 조용하니 가만있으면필시 재지리하는건데. 니 퍼뜩 안방에 가봐라."
마루를 닦던 걸레는 팽개치고 안방문을 열었다.
아들은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누워있는 딸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딸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딸애의 얼굴을 덮고 있는 건 매일분유 앱솔루트의 아이보리색 분유 가루였다! 분유 가루가 딸애의 눈과 코를 이미 다 덮었고 이마와 빰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방문을 연 순간은 막 아들이 분유를 딸애의 입에 막 한 숟갈 들이붓던 참이었다.
"아들아!!!" 나는 큰 소리를 내었다.
"이제 그만. 동생한테 그러면 안돼~"
분유 숟가락을 든 채로 개구쟁이 아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내가 동생 밥 뚜고(주고) 이떳다!(있었다)"
"맞나? 근데 동생 밥을 눈이랑 코에는 와 줬노? 밥은 입에만 주는 거고, 누워있을 때 주면 안 된다. 알겠제?"
아들은 자기는 좋은 일을 한다고 했는데 엄마의 칭찬이 성에 차지 않았다. 찌푸린 얼굴로 대답이 없었다.
나는 딸애의 얼굴에 산을 만들어 놓은 분유를 다 치우고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신기한 건 그리 난리법석을 떠는 데도 딸애는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는 거다. 오빠가 자기에게 나쁜 짓을 하려 한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엄마가 말했다.
"거봐라. 내 뭐라 카드노? 얼라들이 조용하이 가만 있으몬 재지리하고 있는 거라 했제? 얼라들은 까불고 시끄럽고 소리가 나야 되는 거라. 조용하믄 그거는 아-가 아이제!(아이가 아니지)"
시댁 식구들과 식당엘 갔다. 맞은편에 예닐 곱살 짜리 여자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자꾸 들썩인다. 옆에서 아이 엄마는 가만히 좀 있으라고 아이를 다그친다. 아이는 좀이 쑤신다. 몸을 이리저리 앞뒤로 고개를 옆으로 입을 재잘재잘 아주 활발하다.
그 모습을 보던 27살 조카가 말했다.
"우리 어릴 때는 식당에 놀이방이 있어서 밥 빨리 먹고 가서 놀이방에서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했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놀이방 있는 식당을 못 본 거 같아요. 가만있는 애들이 좀 안돼 보이네요, 숙모."
그래,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에는 웬만한 큰 외식 식당에는 커다란 놀이방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가급적 놀이방이 잘 마련되어 있는 '이바돔 감자탕'이나 '바르미샤브칼국수'에 외식을 다녔다. 너도 나도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밥을 빨리 먹고 놀이방에 가서 모르는 친구와도 같이 어울려 놀았다. 그동안 어른들은 밥에 집중하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적어지면서 식당 내 놀이방도 줄어들었다. 지금도 놀이방이 있는 곳도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지만 여전히 흔한 것인지 아니면 간혹 볼 수있는 드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아이를 데리고 외식을 하려면 식당과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행복한 외식을 망칠 순 없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노키즈존이 늘어난다.
하지만 2~30년 사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건, 아이들일까? 서로에 대한 배려일까? 인내일까? 여유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겠다. 갑자기 그 시절 아이들이 뛰어놀던 우리 동네 이바돔 감자탕 집 놀이방이 그립다.
*얼라: <아기>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까날라: <갓난아기>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재지리(저지리): <장난질> <장난> <뭔가 어지르고 사부작대면서 노는 모습>을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 근래에는 들어보거나 말해본 적이 거의 없는 조금 해묵은 사투리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