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청소가 하기 싫어집니다. 수동 진공청소기를 십 년 넘게 쓰고 있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청소기를 하나 더 샀습니다. 무선 청소기로 장만했어요. 청소기 줄을 꼽았다 뺐다 하기가 너무 귀찮았던 거지요. 사람의 몸은 자꾸만 편해지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서 좋은 것을 알면 더 좋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진공청소기를 장만했음에도 청소는 하기 싫어졌습니다. 생각보다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를 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청소의 간격도 점점 늘어집니다.
로봇청소기를 사고 싶어 졌습니다. 몸은 게으르게 만들면서도 집안의 먼지는 쓸어버리고 싶었거든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로봇청소기를 사자고.
남편은 집안이 별로 더럽지도 않은데 굳이 청소기를 하나 더 살 필요가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집이 별로 더럽지도 않구먼. 별스럽다."
그렇습니다. 우리 집 남자는 청결에 대한 눈높이가 워낙 낮아서 지금의 집안 환경에 너무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청소가 하기 싫어서 만족한 척하는 걸까요? 그러면 연기가 아주 능숙한 거라고 하겠네요.
우리 집은 물건을 살 때 부부가 합의하에 구입하는 경향이 있어 청소기 하나 사는 것도 저 혼자 지를 순 없어요. 쌍방 설득과 협의를 통해 동의를 구하고 물건 구매를 해야 합니다. 가격이 비싼 것일수록 더욱 그렇죠. 이런 관습이 이번에는 너무 걸리적거립니다. 그냥 확 지르고 싶었어요. 그래도 내가 규칙을 깨면 다음에 남편이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지속된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 이젠 만만하지 않네요.
보름 전 집안 일로 시댁에 갔습니다.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차를 미셨습니다.
시아버지가 계신 자리에서 제가 남편 흉을 보았습니다.
"아버님, 00 씨가 로봇청소기 하나도 못 사게 합니다. 요즘은 싼 것도 많은데. 집안 청소 좀 편하게 할라 했는데, 아버님 아들이 와이리 땐땐모찌(구두쇠)일까예?"
제 말을 듣던 시어머니는 되려 아들 칭찬으로 되받습니다.
"00 이가 짭찔타 아이가! 울 아들같이 짭찔코 야물은 머스마가 어데 흔나?"
즉, 어머니 아들같이 돈 아끼고 알뜰한 남자가 흔하지 않다는 말이지요. 저는 남편 흉을 보려 했는데, 어머니는 아들 칭찬으로 맞받아치시네요. 제가 "아니, 그게 아니고요~"라고 말을 더 이으려는데 시아버님이 말을 잇습니다.
"00아, 니는 와 로봇청소기도 하나 안 사주노? XX이 집에 있는 거 보이 억수로 좋던데. 너거도 청소 이제 좀 편케 해라마. 당장 집에 하나 장만해라!"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가 아직 더 힘이 있는가 봅니다. 어머니도 아버님 말에 별 대꾸를 못하십니다. 남편도 "예"하고 대답을 하며 씩 웃습니다. 남편의 웃는 모습이 더 얄밉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로봇청소기를 주문하였습니다. 야물고 짭찔한 남편은 온갖 쇼핑사이트를 찾아가서 비교하고 검토해서 가장 가성비 좋다고 하는 제품이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산책 나가기 전에 로봇청소기를 가동해 놓고 나갔습니다. 서너 시간 후 집에 돌아오니 집안 먼지가 말끔히 청소되었네요. 진공청소기보다 더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말 타니 견마 잡히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또 슬슬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이젠 로봇물청소기를 장만하고 싶은 거 있죠? 먼지제거로는 성에 안 차네요. 한국 사람은 물걸레로 바닥을 빡빡 문때야 되는데 저는 이제 무릎도 시원찮고 손목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밀대도 뱅글이도 물칠만 하는 것 같고요.
친구한테 아주 성능 좋은 로봇물청소기를 추천받았습니다. 조만간 로봇물청소기도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자~!
-야물다: 구두쇠는 아니지만 돈을 아껴 쓴다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짭찔타(하다): 알뜰살뜰하게 돈을 규모있게 살림을 잘 사는 사람에게 쓰는 긍정적 의미를 가진 경상도 사투리. 포털 사전에서는 검색이 안되는 현실 경상도 사람이 쓰는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