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이 버버리장갑이 된 사연
순경음 비읍과 경상도 말의 관계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이가 드니 일품 메뉴보다 백반이 가장 끌린다. 모두들 백반을 먹으러 가는데 동의했다. 백반과 같이 나온 국은 미역국이었다. 밥을 먹기 전에 국을 한 술 떠먹어서 숟가락과 위장을 코팅을 한다.
"엇, 짜바라!"
내가 미역국을 한 입 먹자마자 괴성을 질렀다. 같이 갔던 지인들도 국을 먹자마자 한 마디씩 보탠다.
"어우, 짜"
우리는 물을 두 컵 정도 더 부어서 미역국을 먹었다.
"어우, 짜"
이런 말을 들을때 마다 나는 목 뒤가 간질간질거린다. '어우, 짜'가 내게 주는 느낌은, 조금 짜긴 하는데 짜다고 표현을 해야겠고 그래서 애교스럽게 짜다고 간단히 말하는 정도이다.
음식이 짜서 불평을 하려면,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해야 하는데 '어우, 짜'는 5단계의 강도라면 강도가 1이나 2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강도 4나 5로 표시를 하고 싶다면 "앗 짜바라. 이 와이리 짭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짜다'와 '짭다'의 차이는 'ㅂ'의 차이다. 중간에 'ㅂ'이 있냐 없냐인데 말하는 느낌과 듣는 느낌은 말의 농도와 강도가 두 세 단계는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ㅂ'의 차이는 '짜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말을 할 때도 나는 'ㅂ'의 차이로 인해 농도와 강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경우가 허다하다.
곧 여름이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다. 날씨가 더우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더버라. 와 이리 덥노?"
겨울에는 이렇게 말한다.
"추버라. 날씨가 와 이리 춥노?"
'더버라'와 '추버라'를 표준말로 하면, "더워" "추워"가 된다. 나의 서울 친구들은 더울 때면 "더워요", 추울 때면 "날씨가 추워"라고 하였다. 그런데 확실히 나에게 "더워"와 "추워"는 조금 덜 덥고 조금 덜 추운 기분이다. 더워 죽겠는데 혹은 추워 죽겠으면 "더버라" "추버라"가 더 적확한 표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고향에서 친구들과 있을 때 "아, 더워" "으 추워"라고 말한다면, "가쓰나 이거 안 되겠네. 니 말 들으면 하나도 안 덥고 하나도 안 추븐것 같것다야"라고 놀릴 것이 뻔하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선생님한테서 순경음 비읍에 대하여 배운 적이 있다. 사라진 글자 순경음 비읍을 말씀하시면서 선생님은,
"우리 갱상도에서는 순경음 비읍이 고대로 살아 있으가 너거가 맨날천날 쓰고 있다이. 추워를 추버라, 더워를 더버라, 라고 이응대신 비읍으로 발음하는 거, 이기 바로 순경음 비읍이 살아 있으가 우리가 아직까지 쓴다는 증거다."
라고 예를 들면서, 고대 국어의 영향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럽다는 투로 설명하였다.
정작 고향에서 살 때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의 자랑스러운 말투의 모습이 기억 창고에 갇혀있었는데, 경기도에 이사를 오고 여기에서 살면서 창고에 묻어 두었던 고등학교 선생님의 그 말이 자꾸 소환된다.
4월 벚꽃이 한창일 때, 남편과 밤에 밤마실을 나갔다. 분홍빛 벚꽃이 조명을 받아 더 환하게 빛나는 거리를 남편의 손을 잡고 걷다가 무슨 말 때문인지 내가 까르르르 웃었다. 남편이 말했다.
"뭐가 그리 우습노?"
나는 말했다.
"당신 말하는 기 그냥 우스버서"
고등학교 선생님과 순경음 비읍을 생각하다가 4월 남편과의 밤마실 기억이 떠오른 거다. 그때도 나는 '우스워서'라고 하지 않고 '우스버서'라고 말했다. 이응대신 순경음 비읍이 들어간 경상도식 발음이다.
순경음 비읍(ㅸ)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비읍이 떨어져 나가 '우스워'가 됐는데, 어쩌다 경상도만 이응이 떨어져 나가 '우스버'가 되었을까? 궁금해서 급히 검색을 해보았더니, 조선시대와 구한말 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음가가 없는 발음의 글자를 효율화 차원에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없어진 훈민정음 글자들은 순경음 비읍(ㅸ), 순경읍 피읖(ㆄ),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ㆆ) 등이 있다.
'우스버서'말고도 흔히 쓰이는 말은 더 찾아볼 수 있다.
-고마워는 고마버 ---> "아이고 마, 고마버서 우짜꼬?"
-어려워는 어려버 ---> "이번 시험 억수로 어려버서 내는 마 포기했다"
-어울려는 어불려 ---> "친구들캉 어불리서 놀아라. 와 혼자 있노?"
-깨워서는 깨배서 ---> "동생 퍼뜩 깨배가 학교 델꼬 가라. 저러다 지각할라."
만약 위의 말을 경상도 사람이
"아이고 마 고마워서 우짜꼬?"
"이번 시험 어려워서 포기했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아라"
"동생 깨워서 학교 데리고 가라"
라고 말을 한다면, 모두들 소름이 오소소 돋아서 신기한 동물 보듯 쳐다볼 것이다. 비읍과 이응의 차이는 매운맛과 순한 맛으로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서울 사는 지인들에게 "고마워요" "어울려요" "깨우세요" "어려워요"라는 말을 하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다. 지인들이 친구가 되면 내 속의 말을 고대로 꺼내 쓰게 될 텐데, 늦은 나이에 만난 사람과 친한 친구가 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어쩌면 내가 선을 긋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 순경음 비읍을 생각하다보니 우리 할머니생각이 난다.
우리 할머니는 막내 손녀인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다. 겨울이 되면 자주 동상에 걸렸던 내 손이 또 얼까 봐 챙겨놓았던 장갑을 꺼내 주시곤 했다.
"막내야, 여 털 있는 버버리 장갑 있다. 이거 억수로 따시다. 이거 끼고 댕기래이."
어느 해인가 할머니는 용돈을 모아서 앙고라 털이 보슬보슬하니 덮인 벚꽃 분홍색 벙어리장갑을 사서 내게 주었다. 겨울에 꼭 끼고 다니라고 하면서. 분홍 벙어리장갑은 내가 여태 꼈던 그 어느 장갑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리고 예뻤다.
할머니는 벙어리장갑이라고 하지 않고 '버버리 장갑'이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다 알아 들었다.
지금 경상도에 사는 사람들도 '버버리 장갑'을 알아들을까? 궁금해졌다.
세월이 자꾸 가고 미디어와 빠른 소통의 영향으로 토속 사투리는 사라져 가고 현지인들도 아는 사투리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고향을 떠나있으니 고향말이 더 그립다.
※매거진 선택않고 발행했다가 수정 후 재발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