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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29. 2024

짜잘한 납세미 미역국

경상도 사투리 - 짜잘한 납세미(작은 가자미)

우리 어머니는 요리의 달인이다. 어머니가 만든 김치는 친정엄마가 담은 것보다 더 맛이 있었다. 특히 파김치는 조수미가 부르는 밤의 아리아급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머니는 특히 나물 종류를 잘 만들었다. 잔칫날도 아니고 행사날도 아닌 무신 날에도 온갖 나물 반찬이 끊이질 않는데 모든 나물이 다 맛이 있었다. 시부모님 두 분이 다 고혈압에 당뇨를 앓고 있어서 모든 반찬과 국이 다 슴슴한 편인데도 많은 이들의 입맛에 맞는 걸 보면 어머니는 비공식 한식 요리 명인이라고 할만하다.

그래서 나는 시댁에 가면 요리는 아예 하지 않는다.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어설프게 어머니를 도운다고 옆에서 깔짝대봐야 본전은커녕 재료와 양념만 버리기 십상이다. 나는 내 주제를 비교적 잘 파악하는 편이다.


지난주 시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시부모님의 생신이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 외식을 하였다. 시댁은 경남 마산이고 우리는 경기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 생신이면 고향에 내려갔다가 저녁을 먹고 당일 저녁에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루 먼저 내려가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생신 미역국을 직접 끓여드리고 싶었다.


내가 끓여 본 미역국은 아무것도 안 넣은 그냥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전복 미역국 세 종류나 된다. 전복미역국은 딱 한 번 끓여보았다. 그리곤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초보에게 전복미역국은 투입 대비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고기 미역국은 먹을만하다는 평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이번 시어머니 생신에 직접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대접하려 하였다.

시댁 부엌이 내 것만큼 익숙지 않기에 미역국 재료를 다 갖고 갔다. 미역, 소고기, 국물 멸치와 다시마, 양파, 마늘까지. 어머니는 이가 안 좋아서 소고기는 다진 걸로 준비했다. 시댁 부엌을 생각하며 머리로 미역국 끓이는 시뮬레이션을 3번이나 해보았다. 어설퍼보이지 않게 빠른 속도로 어머니 깨시기 전에 다 끓여놓고 싶었다.


생신 전날 저녁 시댁에 도착했다. 재료를 꺼내서 냉장고에 넣었다. 어머니가 보더니

"이게 뭐꼬?"

하고 물어본다.

"어무이, 제가 어무이 생신 미역국 끼리 드릴라꼬 미역캉 소고기캉 갖고 왔어요. 어무이 살림은 뭐가 뭔지 모르니, 물어본다꼬 어무이 귀찮게 할까 봐서요."

나는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운 듯한 표정과 몸짓을 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야야, 나는 고기는 안 묵는다. 속이 안좋드라. 납세미로 국 끼릴라고 만 원어치 사다 놨는데..."


큰일이었다. 나는 납세미 미역국을 끓일 줄 모른다. 작전이 실패했다.

"맞습니까? 나는 납세미로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이번에는 내가 끼리 드릴라 했는데, 에이 폼 베리뿟네요."

"시장에서 산 납세미라 다듬어야 되고. 젊은 너거는 생선 다듬을 줄도 모르제? 됐다. 미역국 그기 뭐 시간 많이 걸리나 어데? 내가 하꾸마."


생신날 아침이었다. 일찍 부엌에 나갔는데 어머니가 더 빨랐다. 어머니가 냉장고에서 어제 사둔 납세미를 꺼냈다. 까만 비닐봉지에는 납세미 일곱 마리가 들어있었다. 만 원어 치라고 한다. 엄청 싸다. 마산어시장이니까 가능한 가격일 거다.

세 마리를 꺼내 생선을 다듬었다. 나 말고 시어머니가. 비늘을 긁어내고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내장을 꺼냈다. 납세미를 다듬으며 어머니는 말했다.


"납세미 미역국이 먹고 싶대. 그래서 장에 갔더니 납세미 짜잘한 기, 물이 좋는기라. 납세미가 짜잘해서 그릉가 일곱 마리에 만 원삐 안하드러꼬. 근데 시장에는 생선을 안 다듬어 주는 기라. 고등어만 다듬어주고 다른 생선은 안 다듬어주데. 그래서 싸겠지. 다듬어주고 해야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 많이 갈낀데, 와 그라는가 몰라."


다듬은 납세미를 물에 씻으며 또 말씀하셨다.

"미역국에 넣는 납세미는 짜잔한 기 맛있데이. 크면 솥도 커야 되고 뿌사지기도 쉽고. 요래 짜잔한 기 다루기도 수울코 맛도 좋네라."


시어머니는 납세미를 다듬었고 며느리는 미역을 볶고 멸치 육수를 붓고 납세미를 넣고 국물 시원하라고 양파도 넣었다.

시어머니의 79번째 생일에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합세하여 끓인 납세미 미역국이 상에 올랐다.

맛을 보니 간이 싱겁다. 낭패다. 아버님은 간장을 원하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이런 말로 나를 위로하였다.

"쪼매 싱겁은 기 낫다. 짜븐거카마. 그래도 국물 시원한 기 맛있네. 나는 간장 안 넣어도 되겠다."


나는 납세미 미역국에서 납세미를 빼고 국물만 퍼서 먹었다. 나는 소고기나 조개가  낫다. 내년에 또 납세미 미역국을 끓인다면, 내 단독이 아닌 또 합작 미역국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해 본다.


-짜잘하다/짜잔하다 : 작은, 사소한, 이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납세미: 가자미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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