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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22. 2024

무심코 나온 사투리가 컴플레인이 될까봐 나홀로 전전긍긍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 언어 습관

나는 역사 현장체험학습 강사이다. 요즘 같이 날이 좋은 4월과 5월, 현장체험학습 강사는 일거리가 많다. 학교 단체에서 소풍이나 현장체험학습을 많이 실시하는 때가 요맘때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경복궁이나 덕수궁, 서대문형무소나 전쟁기념관을 많이 다닌다. 반나절 코스는 이중 한 곳을 골라 현장 체험을 하고, 종일 코스는 이중 두 곳을 골라 현장 체험 학습을 한다. 이동 동선이나 역사의 시대적 구분을 고려해 볼 때 주로 이들 장소들이 많이 선택되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산 지 어언 3년이 넘었는데도 경상도 사투리가 전혀 고쳐지지 않은 나는 초등학생들과 현장 체험 수업을 할 때 아직도 긴장을 한다. 물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수업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주요 이유는 고쳐지지 않은 사투리 때문이다. 


작년 봄 코로나로 인한 기나긴 사회적 격리가 끝나고 집단 수업이 재개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린 학생들은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물론, 개구지기도 했지만. 

나는 4학년 학생 12명을 맡았다. 이번의 현장은 경복궁이었다. 자주 가던 경복궁이었지만, 거의 3년 만에 다시 체험 학습을 재개하려니 첫 수업 때처럼 긴장되었다. 


인원 확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교재를 나눠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우리는 경복궁 안으로 이동을 할 차례였다. 다른 반 다른 팀과 섞이지 않고 아이들이 나를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뒤를 돌아 확인을 하였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라 내가 얼굴을 다 기억을 못 하니 아이 한 명이라도 놓칠까 걱정이 되었다. 매표소를 지난 뒤 나는 아이들을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나는 걸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 따라 온나~. 잘 따라 온네이~"


그늘진 조용한 곳으로 갔다. 몇몇 개구진 남자아이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또 말했다. 

"거기 4학년 X반 B조, 퍼뜩 온나. 아니 빨리 온나"

말하다 보니 '퍼뜩'이라는 단어는 경상도 사투리라 아이들이 모를까 봐 얼른 정정해서 "빨리 온나"라고 말했다. 

갑자기 앞에 있던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나는 '왜?'라고 입모양을 하면서 달려오는 짓궂은 아이들을 맞았다. 


"선생님, '온나'가 뭐예요? 처음 들어요"

"뭐라고? '온나'를 처음 듣는다고?"

"네!"


빨리 오라는 단순한 한 문장을 말했을 뿐인데, 수업 초반부터 아이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나는 긴장에 당황을 더했다. 

"아, 빨리 오라는 말이야"

"그럼 빨라 와라고 하면 되지, 왜 온나라고 해요?"

"그거 '와'라는 뜻을 가진 경상도 사투리인데, 선생님이 무심코 말했나 보다. 이젠 '빨리 와'라고 할게"


일종의 고객 컴플레인이 요청되었다. 나는 말할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달려오던 개구진 아이 한 명이 말을 덧붙였다. 

"야, 너는 '온나'도 모르냐? 척 보면 와라는 말이잖아. 대충 알아듣고 이해하면 되지. 넌 선생님 당황되고 왜 캐묻고 그러냐? 난 할머니 집에서 많이 들었어. 우리 할머니 집은 거제도거든"


이런 아이는 천사 같다. 아직 어리지만 내가 미안해하고 당황할까 봐 미리 실드를 쳐준 것일 거다. 녀석, 떡잎부터 튼튼한 싹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경복궁의 건립 역사를 간략히 훑은 후 근정전을 보기 위해서 또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얘들아, 선생님 따라와. 이리 와--"


"이리 와"라고 말하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이리 와--"라고 말하면 과연 나를 따라 이쪽으로 잘 따라와라. 는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될까? 너무 부드러운 말투라 아이들이 내 말에 담긴 약간의 강제성을 못 느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이리 와--"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내 뜻이 잘 전달되었나 확인하기 위해 나는 자꾸 뒤를 돌아 아이들이 잘 따라오는지, 아이들이 내 말을 이해했는지 기색을 살폈다. 


근정전과 조정마당에서 한바탕 게임으로 역사 퀴즈를 맞히고 경회루로 이동하였다. 근정전 조정마당에서의 역사 게임이 재미있어서인지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경회루로 움직이는 내 마음이 급해졌고 덩달아 걸음도 빨라졌다. 급해진 마음은 방심을 불렀다. 

"4학년 X반 B조, 일로 온나~, 어서. 빨리 온나~"


말해놓고, "앗차"했다. 다시 말했다. 

"얘들아, 이리로  와--, 어서 와--"


아까 웃던 친구가 다시 까르르 웃었다. 

"선생님, 또 '온나'라고 했어요. 하하. 근데 괜찮아요. 이제 무슨 뜻인지 알아요."

"00아, 빨리 오온~나/"

"일로 오온~나/. 다음은 이로 오온~나, 인가? 재밌다."


'온나'를 갖고 자기들끼리 말장난을 서로 주고받는다. 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고 당황했는데 이제 보니 재미있는 놀잇감을 발견한 듯 보인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기를.

"이제 그만. 수업에 집중하자.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회루에 왔는데 열심히 보고 가야지"

경회루에서 연산군과 흥청망청 이야기도 하고 점프샷도 하고 관광객들과 함께 하는 미션도 하였다. 코로나로 실내에만 있다가 거의 처음 야외로 나와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수업을 다 마치고 아이들과 헤어질 때 누군가 물어보았다.

"선생님, 다음에도 '일로 온나' 하실 거예요?"

"아니. 오늘은 실수야. 이제 안 할 거야"

대답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연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요?"

"그럼 왜 우리한테는 하셨어요?"

"오늘은 실수였고. 다음에는 조심할 거야. 선생님 말 못 알아들었다면 미안해"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들은 '아니에요. 괜찮아요. 재밌었어요.'라고 했지만, 그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오늘 현장 체험 학습 선생님이 사투리를 써서 못 알아먹었다"는 불만을 혹시라도 제기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나 때문에 회사가 불이익을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투리는 어른들에게는 오히려 강점이 수도 있는데 아이들에게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혹시나 컴플레인 있을까, 보름정도 긴장했는데 다행히 별 일은 생기지 않았다. 


요즘도 아이들과의 현장 체험에서는 언어 사용에 신경을 쓴다. 무심코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봐서.

내일도 모레도 경복궁을 가야 한다. 나는 지금 "어서 와" "이리 와" "빨리 와" "조심히 와"라는 말을 표준 억양으로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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