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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15. 2024

밀린 숙제 하듯 '어구야꼬' 글을 쓴다

경상도 사투리 - 어구야꼬와 시부지기

2021년 10월에 경상도 사투리에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거의 검색과 조회 실적이 없던 이 글이 최근 조회수가 늘었다. 무슨 일일까, 하고 찾아보았더니 <피식 대학>이라는 유명 유튜버 채널의 한 꼭지인 '경상도 향우회' 정용화 편에서 땐땐모치라는 말이 소개되었다. <피식 대학>은 구독자 300만이 넘는 인기 채널이다. 콘텐츠 하나가 업로드되면 최소 100만이 조회된다. '경상도 향우회' 정용화 편도 오늘 기준 147만이나 조회가 되었다. 이 편을 본 시청자들 중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굳이 '땐땐모치/땐땐모찌'의 단어 뜻을 검색해 보았나 보다.


매주 수요일 경상도 사투리 관련한 브런치 북을 연재하고 있다. 오늘은 수요일. 연재를 약속한 날. 글을 써야 하는 날인데, 오전에 시험을 하나 보고 왔다. 달 전부터 오늘의 시험 때문에 마음만 바빴다. 시험을 끝내고 나니 한편으론 속이 후련했한편으로 긴장이 풀렸다.

원래 계획은 시험 치고 해가 있는 오후에 연재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집에 오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늘어지고 눕고 뒹글거리고 싶었다. 게으른 내가 이렇게 속삭였다.

"오늘은 그냥 쉬어. 그깟 글, 누가 읽어 본다고? 한 주 쉰다고 무슨 큰일이 나니?"


다 저녁에 브런치에 들어와 본다. 오늘 내 브런치 조회 1위를 한 글은 3년 전에 쓴 '땐땐모치' 관련 글이다.

매주 글을 써도 겨우 몇 십 개의 조회수와 몇 개의 좋아요뿐인데, 셀럽의 언급 한 번에 3년 묵은 글이 다시 조회수 등위에 올라오니 문득 허탈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기록 어딘가에 구슬로 쌓아두고 있으니까 기회가 왔을 때 보배가 되는 거 아니겠나? (뭐, 유튜버의 언급이 기회이고 보배인지는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금에라도 이번 주 연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컴퓨터를 컸다.


남편이 물어본다.

"다 저녁에 컴퓨터는 뭐 하러 키는데?"

"브런치에 글 쓸라고. 매주 쓰기로 한 거는 뭐든 쓰기는 써야지."


컴퓨터 앞에 앉아 쓸데없이 자판을 막 두드리는 내 옆으로 남편이 시부지 다가왔다. 컴퓨터가 놓인 테이블에 내가 좋아하는 캐모마일 차를 한잔 시부지기 갖다 놓으며 입을 뗀다.

"일을 사서 한다. 사서. 아무도 안 시키는 일을 와 그리 어구야꼬 해 쌓노?"


남편은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려고 온 것이 틀림이 없지만, 공연히 예민해 있는 나는 전형적인 경상도 여자.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됐다 마. 씰데없는 소리 해쌓을라카믄 저리 가라고마. 니 있으면 방해된다. 가라"


남편이 가져다준 따뜻한 캐모마일의 산뜻한 향에 기분이 좋건만, 돈도 안 되는 브런치 글 쓰는 일을 한다고 생색을 낸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말이 또 엇나갔다. 나이가 들어가도 돼지 왼발톱처럼 마음과 말이 엇나가는 건 왜 안 고쳐질까?


피곤하다고, 허탈하다고, 긴장이 풀렸다고 연재를 멈추기보다 이렇게 마음을 다 잡고 '어구야꼬' 뭔가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자꾸자꾸 '어구야꼬' 하다 보면 글이 하나둘씩 쌓이고 그것이 나중에 나의 역사가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 시험도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어구야꼬 매일매일 공부를 한 덕택에 시험도 칠 수 있었고, 합격도 할 수 있었다. 이제 2차 시험이 석 달 뒤에 있다. 2차 시험도 조금씩 시부지기 어구야꼬 준비해 보련다. 그러다 보면 지금처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어구야꼬: 꾸역꾸역의 뉘앙스를 주는 경상도 사투리. 상황에 따라 억지로, 많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시부지기: 표준말 '시부저기'의 사투리라고 하는데, 나는 '시부저기'가 낯설다. 여하튼, 슬그머니 슬쩍이라는 뜻을 가진 경상도 사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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