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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08. 2024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경상도식 이름 부르기

제일 친한 고향 친구가 템플스테이를 가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고향 친구 한 명이 공주에 살고 있는데 그 친구도 볼 겸, 힐링도 할 겸 마곡사에 템플스테이를 갈 거라면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나는 집 가까운 곳에서 고향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친구의 제안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살면서 템플스테이를 꼭 한 번은 해보고 싶기도 했다. 


약속 장소인 공주에 있는 한 사무실에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열자마자, 사무실 앞에서 내가 주차하는 것을 지켜보던 공주 사는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태야~ 태야 맞제? 야, 니 진짜 오랜만이다."

"미야, 이게 얼마만이고? 그동안 잘 살았나?"

"태야 니는 우째 하나도 안 변했노? 고등학교 때 그대로다야~"


남들이 들으면 "저 아줌마들이 미친 거 아닌가!" 하겠지만 우리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서로 칭찬했다. 10분 정도 친구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고 있으니 뒤이어 경상도 고향에서 열심히 달려온 두 친구가 도착을 하였다. 

"태야 니는 빨리 도착했네. 미야, 잘 있었나?"

"갱아, 겸아, 오랜만이다. 템플스테이 덕분에 여서 얼굴을 보네."

"태야, 안녕. 미야, 안녕"


남의 사무실 앞에서 해후를 한 우리는 절밥을 먹기 전 고기로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향해 다 같이 출발을 했다.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먹으면서 우리는 "태야 니가" "갱이 니는" "겸아 그것 좀" "미야 니도"로 서로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우리 넷의 이름은 경태, 문경, 나겸, 영미였지만,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이름의 중간 글자를 빼고 끝 글자로만 이름을 불렀다.

'태야~, 갱아~, 겸아, 미야~' 이렇게 말이다. 



내 이름은 김경태이다. 하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친한 사람들이 부르는 내 이름은 태야였다. 집에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땐 항상 "미야, 희야, 태야"라고 불렀다. 미야는 큰 언니의 이름 끝 글자이고 희야는 작은 언니의 이름 끝 글자이다. 

엄마가 나이가 들고 자식들도 커가면서 엄마는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헷갈려 하기 시작했다. 첫째가 미야인지 희야인지, 둘째가 희야인지 태야인지 헷갈려했다. 첫째 미야를 '희야!'라고 불렀다가 희야가 왔는데 "아니 니 말고 너거 언니"라고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면 첫째와 둘째한테서 동시에 "엄마 쫌~!"이라는 원성을 듣기 일쑤였다. 


나를 가장 예뻐한 할머니는 "태야, 밥 무러 온나"라고 밥때만 되면 나를 찾으러 다니셨다. 

아버지가 "태야, 니 통지표 가 와봐라"라고 할 때 나는 주저 없이 떳떳하게 성적이 매겨진 통지표를 내밀었었다. 

오빠는 "태야, 방 닦아라"라는 말을 주로 하였고 언니들도 이에 질세라 "태야 걸레 좀 빨아온나"라며 잔심부름을 시켰다. 


학교에 갔더니 내 이름이 한 글자에서 세 글자로 바뀌었다. 

담임 선생님은 출석부에 적힌 대로 김경태라고 세 글자를 또박또박 붙여 나를 불렀다. 

"김갱태, 이리 와봐라"

"김갱태, 교무실로 따라온나"

남학생들은 "야 김경태, 쌤이 니 좀 오라는데"라고 했고 여자 친구도 종종 "주번 김경태, 칠판 닦아라"라고 했다. 세 글자 이름은 고학년이 되면서 '경태야'라고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고장에서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생긴 단짝 친구들도 엄마처럼 언니처럼 내 이름을 끝에 한 글자만 불렀다. '태야~' 이렇게. 이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김경태 아닌 태야가 되었다. 

태야가 되는 순간, 나는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느슨해지고 침묵도 불편하지 않게 된다. 



어느 유튜브에서 경상도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서울 와서 가장 설레고 떨릴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했다. 질문을 받은 20대의 경상도 여자는 "서울 사람들이 '세림아~'하고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때 나 좋아하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경상도 남자도 비슷하게 답했다. 이름을 너무 다정하게 불러서 그 애가 나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고. 

나도 20대에 서울에 와서 살았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태야' 말고 '경태야'라고 다정하게 불렀다면 그들 앞에서도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졌을까?


지금 내 주변에는 태야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내 이름은 김경태이거나 경태 씨이거나 경태쌤이 되었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도 옛날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 아무 말 없는 침묵이 아직은 조금 어색하긴 하다. 그래도 여기서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다. 하나둘씩 서로를 알아가고 배워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비록 한 글자 이름이 아니어도 두 글자여도 세 글자여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에게 나는 꽃이 되고 의미가 되고 그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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