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로 끝나는 경상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를 종종 생각하고 찾아보고 하다가 알아낸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도 즐겨 쓰던 경상도 사투리 중에는 '살'로 끝나는 단어가 제법 있다는 것이었다. 고기 부위를 나타내는 '부챗살' '안창살' '갈매기살' 같은 것이 아닌 단어인데도 그렇다.
경상도 사투리 중에 '살'로 끝나는 매력적인 단어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개살 / 앙살
할머니와 우리 세 자매는 한 밥상을 받고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할머니는 고령이라 손이 떨리고 입 주위도 떨렸다. 그래서 밥과 국과 반찬을 집어 가면 밥상에 꼭 몇 개씩 흘리곤 했다. 할머니 주변에만 흘리고 더럽혔으면 좋았겠지만, 고령의 손과 입은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밥상 중앙에 있는 찌개를 뜨다가 다른 반찬에 흘리기도 했고 나물을 집어 가져오다 손주들 밥 위에 흘리기도 했다.
게다가, 당신 눈에 맛나 보이는(우리는 거의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우리 동의도 없이 밥 위에 올려주며 "미야, 이거 맛있다. 무-봐라"라고 하였다.
나와 K-장녀 큰언니는 할머니의 식습관에 개의치 않고 "할매, 우리가 알아서 하께. 할매나 무라"라고 대수롭지 않게 응대하였다. 하지만 착한 장녀와 천덕꾸러기 막내와의 사이에서 꿋꿋이 생존력을 자랑하던 둘째 작은 언니는 할머니의 약간은 위생적이지 못한 식습관을 못 견뎌하였다.
"할매, 쫌. 와 다 질질 흘리고 있노! 우리 먹던 밥에 다 쏟는다 아이가! 잘 쫌 해라 쫌!"
버릇없다고 엄마한테 야단맞으면서도 깔끔한 둘째 언니는 그냥 못 넘기고 할머니한테 일갈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를 향해 눈을 흘기곤 하였다. 그런 둘째 손녀를 보면서 할머니도 같은 방법으로 응수했다.
"가쓰나, 어데 할매한테 눈을 흘기노? 그런다고 내가 니 눈까리에 들어갈까방!"
두 여자의 눈이 밥상 위에서 불꽃을 튀겼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을 흘기며 신경전을 벌이는 거다. 엄마가 "어무이, 아-들이 하는 소리에 뭐하러 그카는교? 진지나 잡수소."라고 할머니한테 말하고 "가시나, 밥이나 무라, 마!"라고 언니한테 잔소리를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다시 식사에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나지 않고 내뱉는 할머니의 한 마디,
"가시나, 저 눈까리 앙살시럽은 거 봐라. 개살이 뚝뚝 묻어난다. 어미 니 둘째 저거 교육 단디 시키라. 저리 키우다 할매 잡아 묵겠다."
작은 언니는 우리 집에서 '앙살'과 '개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앙살(앙살지기다): 엄살을 부리며 반항한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동사로는 '앙살 지긴다'라고 한다.
-개살(개살스럽다):'샘'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사전에는 나오는데, 실제로는 '샘'보다 '독기'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눈에 개살이 넘친다는 건, 눈에 독기를 품었다, 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살
'앙살'과 '개살'의 대명사 작은 언니는 애살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애살이란 무엇이냐? 사전에는 애살도 '샘'이라고 나와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는 애살은 단순한 샘이 아니다. 애살이란, 무언가를 잘 해내려고 하는 욕심, 승부욕 같은 것에 더 가깝다.
시험기간이 되면 작은 언니는 열심히 공부했다. 친구들한테 지기 싫어서 인 것 같았다. "성적 그 까이꺼 잘 나온 들 뭐하노, 내가 대학 갈 것도 아니고"라며 공부에 뜻을 일찍 감치 접었던 큰 언니는 공부하는 걸 별로 보지 못했고, 공부보다 노는 게 더 좋았던 나도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던 시절. 작은 언니는 독서실도 다니고 밤늦게 공부하고 오기도 했다. 엄마는 말했다.
"우리 둘째는 애살이 많아가꼬 어데 가서도 앞자리에 서 있을끼구마는. 밉보일 짓도 안 할 거고. 뭘 해도 잘할 거라."
집안 형편 때문에 역시 대학을 꿈도 못 꾸던 시절, 애살 많던 언니는 남보다 일찍 취직이 결정되어었다.
경상도에서는 자주 말하곤 한다.
"애들이 애살이 있으면 안 시켜도 지가 알아서 공부하드라. 애살만 있으몬 된다."
-애살: 샘, 욕심, 승부욕이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인줄 알았는데, 다음 사전을 보니 '방언'표시가 없어서 지금 놀라는 중.
#막살
나와 사돈에 팔촌쯤 되는 친척 아재가 있다. 몇 십 년 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그 아재가 지방 선거에 출마를 준비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별 일이야"하고 말았지만, 웬걸 선거의 바람이 우리 집 문턱까지 넘게 되었다.
"으이야, 너거 아재 공설운동장서 연설한다카든데, 구경 좀 나가주라.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이야지. 휑하면 되겠나?" 엄마가 말했다.
"아재는 돈도 없을 건데, 선거는 뭐 하로 나오는 공? 누가 바람을 넣었노? 그기 되겠나?"
"앞동네 칠복이도 뒷동네 개똥이도 나온다 카든데, 거 비하면 너거 아재는 양반이지러~"
"갸들은 돈도 있고, 무슨 체육회장 같은 거도 하고 했다아인교? 아재는 안됨더."
"야는 해보도 안 하고 안된다카노? 니가 우째 아노?"
"에헤이, 내가 이 바닥 민심 다 꿰고 있다 아잉교? 아재 보고 막살 놓으라 카소."
아재는 끝내 선거를 '막살'놓지 않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막살(하다):그만두다, 끝내다의 뜻을 지닌 경상도 사투리. 어떤 일을 진행하다가 잘 안될 때 "고마 막살 놔뿌라!", 즉 "집어치워라"라는 뉘앙스로 주로 부정적일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앙살' '개살' '애살' '막살'까지 5~60년대 변사가 무성영화 설명하듯이 일장 하게 설명을 끝냈더니, 남편과 아들이 "음... 뭐... 그렇네. 맞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살살거리며 내게로 와서 한 손으로 내 뱃살을 백과사전 잡듯이 잡고서는 이렇게 흥얼거린다.
"살 살 살 자로 끝나는 말은, 앙살! 개살! 애살! 막살! 울 엄마 뱃살~"
자식도 다 크고 나면 부모를 놀리기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