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찍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본격적으로 잠들기 전 유튜브를 켜서 구독 중인 채널을 켰다. 이것은 침대에서 늘 하는 나의 잠자리 루틴인데, 유튜브 채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식도 알고 트렌드도 익히고 굳이 오지 않는 잠을 애써 부르기 전 내가 시간을 때우는 방법이다.
이날 내가 처음 켠 채널은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라이브를 켜고 있던 그 방송의 썸네일이 확 눈에 들어왔다.
긴급속보 비상계엄선포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채널을 켰다. 이때 시간은 10시 30분 정각이었다.
유튜브 채널을 켜자마자, 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등의 말이 오디오를 통해 내 귀에 흘려들어왔다.
급히 뉴스를 보았다. 비상계엄. 이 말은 사실이었고 뉴스에서는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담화가 중계되고 있었다.
지난 화요일 밤 그 시간부터 나는 매일매일 매 시간 시간 눈이 떠져 있는 순간이면 계속 뉴스를 쳐다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뉴스에 중독되었다. 그런데 비단 나만 그럴까? 현생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온전한 사유를 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다 나 같지 않을까?
나는 한때 뉴스를 매일 보던 사람이었다. 나는 역사를 매개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이런 나에게 뉴스는 지금의 소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의 뉴스는 이내 곧 역사가 되고 순간의 뉴스가 모이고 모여 우리가 일궈 낸, 혹은 우리의 조상들이 만든 역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쓴 책에서도, 강의를 할 때도, 수업을 할 때도 나는 학부모들에게나 학생들에게 뉴스를 가까이하라고 말하곤 한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것이라 치부하며 멀리 할 게 아니라, 잠깐 골치 아파도 조금만 지나면 역사가 되니, 나중에 한 번에 공부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배가 드니까 지금 나오는 뉴스를 키워드나 골자만이라도 그때그때 익혀 두라며 말을 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뉴스를 멀리 한 적이 두 번이 있다.
한 번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우리나라가 헬조선이라는 별명을 얻을 즈음이었다. 뉴스를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급격히 피로도가 누적되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동안 청취하던 뉴스를 멀리하고 '소확행'에 몰두하였더랬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소확행을 누리는 삶은 나름의 평안을 선사하였다.
내가 뉴스를 멀리한 또 다른 한 번은 윤석렬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의 부인에 관련한 이상한 뉴스가 터져 나오고 그 부인과 가족이 검찰에 기소되고 나서였다. 검찰에 기소가 되었음에도 부인은 무혐의가 되고 대통령의 장모라는 사람은 큰 죄를 지었음에도 가벼운 형량에 가석방까지 허락되었다.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관련된 그 어떤 일이라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검찰은 무죄나 터무니없는 가벼운 형량을 부여하는 것을 보고, 이전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쌓였다. 내 피로도는 과거에 비할바가 아닌, 그 보다 더한 무게로 내 심장을 억눌렀다. 뉴스를 볼 때마다 억화가 치밀어 오르고 한숨이 절로 나와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씽크홀처럼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몇 개월 전부터 좋아하던 유튜브 채널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외면하였다.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뉴스를 계속 보다간 내 몸속에 존재하는 암세포가 활성화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 밤 이후로 나는 뉴스 없이 살 수없는 사람이 되었다. 수시로 포털 뉴스를 새로고침한다. 툭하면 뉴스 라이브 채널을 돌려본다. MBC를 갔다가 jtbc를 갔다가 오마이뉴스를 갔다가 다시 MBC를 간다. 희한한 건, 이렇게 한 바퀴 도는 사이 새로운 뉴스가 생겨 반복된 채널을 보는데도 매번 새롭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켠다. 아침을 먹을 때 설거지를 할 때 양치를 할 때 TV 뉴스를 켜놓고 본다.(이전에는 TV 뉴스는 결코 보지 않았다.) 출근길에는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 듣으며 걸어간다. 일을 할 때도 거의 10분에 한번 꼴로 뉴스를 새로고침한다. 그래도 매번 새 뉴스가 나온다.
계엄 관련하여 나오는 새로운 뉴스에 놀람과 한탄을 더한다. 시위에 관련하여 나오는 뉴스에는 경의와 감탄을 보탠다. 어메이징 코리아에 다이내믹 코리아다. 전에 외국계 회사에 다닐 때, 해외 지사의 동료들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말하곤 했다.
"너희 나라 캐치프레이즈 정말 잘 지었다. 코리아, 정말 다이내믹하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그런데 이런 말이 놀림이 아니라 경탄에 가까웠단 거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조용조용하고 겸손하고 부끄럼 많아 보이는 한국 사람인데 매번 새로운 일이 터지고 그 일을 매번 또 어떻게 잘 수습하는 것에 그들은 놀라기도 하고 때론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있다. 오늘을 잘 이겨내고 팔로우 업하고 나쁜 사람들을 몰아낼 때까지 한때 게을리했던 나의 관심을 계속 뉴스에 두려고 한다. 몸은 멀지만, 일정을 보며 국회로 나갈 날짜를 꼽아본다. 뉴스를 보며 댓글도 열심히 달아본다.
지금에 내 뉴스 중독중은 아직 물러나지 않고 있는 대통령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퇴진을 하고 확정을 짓고 새로운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계속되지 싶다. 역사는 느리게 움직여 퇴보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반드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역사의 진보는 저절로 획득되지 않는다. 많은 이의 관심과 피와 눈물로 쟁취된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고 열심히 뉴스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