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취업 도전기
경력직 직원을 모집한다는 채용 공고를 본 것은 25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지 꼭 일 년 하고도 20일이 지난 어느 월요일이었다.
나는 나이 49에 자유와 여유를 찾아서 퇴사를 감행했다. 퇴사하고 한동안은 직장인 시절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만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자유를 충분히 다 누리기도 전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취업 포털 사이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자유란 내가 무엇으로부터 억압되고 구속되어있다고 느낄 때 더욱 소중해지고 갈망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회사와 실적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인이 되고 보니 자유는 언제든 원하면 쟁취할 수 있는 것 같았고 오히려 적당한 압박이 삶을 더 활기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소속과 압박을 찾기로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이력서를 작성하였고 주로 월요일에 취업사이트를 방문하여 마땅한 곳을 발견하면 입사를 지원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몸담았던 분야에 지원을 했는데 몇 차례 입사지원에도 나는 ‘추후 연락’을 받지 못하였다. 조금은 조급해진 마음에 나의 종전 경력과는 무관한 곳에도 지원을 하였는데 경력이 없다 보니 여기에서도 나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백 장정도 제출했다느니 자소설을 썼다느니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구직 수기에 절절한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 월요일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취업사이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취업사이트 화면에서 내가 지원한 곳과 유사한 곳이라며 몇 개 회사가 추천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채용 조건이 나의 경력과 딱 맞는 듯했다. 게다가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의 실패에서 나이와 성별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여기는 좀 더 가능성이 있을 것만 같았다. 마감일을 확인하니 이럴 수가! 마감까지 2시간 50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잠시 5분 정도 고민했다. 2시간 50분이면 너무 촉박해. 아니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이력서를 작성해서 지원해보자!
나는 2 시간 50분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블라인드 채용이니만큼 채워야 하는 내용이 상당했다. 타이핑하는 손이 빨라졌고 오타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으며 더 채울 수 있는 내용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채 마감 3분을 남기고 원서를 제출했다. 제출할 때 내가 서류를 통과하리라는 생각은 크지 않았다. 여러 번의 입사 지원에도 ‘추후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그저 미련이 남지 않게 지원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열흘 뒤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되던 날, 오후 4시가 막 지나서 ‘띵동’하는 문자 알람이 들렸다.
“XXX재단 경력직 서류전형 합격을 축하합니다. 필기시험일은 X월 X일입니다”
단지 서류전형 합격일 뿐인데도 나는 마치 해당 기업에 취직을 보장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추후 연락 없음’은 능력보다는 나이와 성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에 누군가가 격하게 동의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보름 뒤에 있을 필기시험은 NCS, 즉 직업기초능력 평가와 직무수행능력 평가였다. 지금껏 취업을 위한 공부나 시험을 치러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직업기초능력 평가와 직무수행평가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직업과 관련된 기초능력과 직무 수행 능력은 2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경험에서 다져진 실력으로 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자신의 경험으로 다른 것에까지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의 같잖은 치기임이 곧 드러났다.
문제집을 사서 죽 훑어보고 나는 또 갈등되었다.
이건 지금부터 보름 동안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냐! 아니야, 보름만이라도 열심히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 왜 안 된다고 먼저 생각해? 일단 부딪혀봐!
퇴사를 할 때 나는 그동안 내가 안 해보고 못해본 것들을 해보리라 결심했다. NCS 시험을 한번 쳐보는 것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20~30대 취업준비생들이 하는 시험에 이렇게 합류하기로 했다.
보름 뒤 한 고등학교에서 필기시험을 쳤다. 면접전형을 위해 5명을 뽑는데 필기시험을 치러 30명이 왔다. 30명 중에 내 나이가 두 번째 정도로 많은 듯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자신감을 이미 한번 잃었는데 시험장에서 나보다 어려 보이는 응시자들을 보니 한 번 더 자신감이 상실되었다.
공부하던 문제집보다 실제 문제가 더 어려웠다. 50분의 시험시간 동안 문제의 반 밖에 풀지 못했는데 감독관이 ‘15분 남았습니다’라고 말할 때 시험 치던 교실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에서는 땀이 났고 입술은 바싹 말라갔다. 마감시간 5분을 남겨두고 일곱 문제 정도를 풀지 못한 채 답안지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오는데 5월의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데도 불구하고 차갑고 공허한 바람이 내 가슴을 휩쓸고 지나갔다. 내 나이 때의 사람이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긴 했지만 나는 공연한 일을 해서 아까운 시간만 버렸다고 생각했다. 실패도 뻔히 예상되었고 내 수준도 확인해버린 것 같았다. 도전이라고 해서 막 하는 게 아닌 거였다.
일주일 뒤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에서 나는 합격하지 못했다. 이 회사는 친절하게도 ‘귀하의 불합격’을 문자로 알려왔다. 예상하긴 했어도 실망과 실패는 항상 아프다.
5월의 경험과 실패를 뒤로 하고 나는 여전히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취업사이트를 돌아다보고, 평소 내가 관심이 있던 교육 프로그램도 검색해보고, 새로운 자격증에 대해 알아보기도 한다. 혹자는 왜 그렇게 치열하냐고, 인생 2막에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가끔은 나도 성마른 도전과 실패를 계속하고 있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퇴사 후에야 나는 알아버렸다. 나라는 사람은 제법 강도가 센 스트레스와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그것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 하고 있는 내 노력의 결과가 확실히 보장되지도 않을지도 모르고 때로는 운이라는 외부요인 때문에 헛수고를 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아플지도 모르는 도전과 실패를 계속할 것 같다.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목사진출처:https://blog.naver.com/fstdevil/221905453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