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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ug 28. 2020

무섭고도, 그리운

“이 노무 집구석은 조상 묘를 조개 밭에 세웠는강, 낳는 거마다 가시나고?”

미역 없이 시래기만 들어있는 산후조리를 위한 국을 끓이시면서 할머니는 부엌 한편에 있던 바가지를 부숴버렸다고 했다. 다섯 번째로 낳은 아이가 또 딸이어서 아이를 낳고도 한참을 죄인처럼 지내야 했던 엄마는 내가 할머니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할머니에 대한 첫 기억은 대여섯 살 때쯤 인듯하다. 어떤 맛난 것을 드시고 있었는데 내가 할머니 앞에 앉아 오물오물 입 놀리는 것을 보고 “할매 나도 나도”하고 졸랐다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 강새이, 묵고 싶나?”라고 말하시며 한참을 오물 거리시던 입 안의 것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할머니 씹던 것을 입 안에 넣고 너무 맛있어서 한참을 넘겼다.


내가 밖에서 놀다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할머니는 동네방네 나를 찾아다녔다.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갑자기 저 쪽에서 선생님이 “XX야, 이리 온나”라고 나를 부르셨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을 끝으로 막 발을 고무줄에 걸려할 때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잠깐만, 을 선언하고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옆에는 굽은 허리에 뒷짐을 지신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학교 마치면 집에 바로 가야지. 할머니가 걱정돼서 학교까지 오셨다.” 선생님의 걱정과 “시간이 됐는대도 집에를 안 와서, 내는 니가 우애됐는가 걱정이 돼가꼬?” 할머니의 권유에 나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완주하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방 두 개짜리 일본식 집에서 7 식구가 살았는데 나와 오빠와 할머니가 같이 잤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랑 딱 붙어서 잤다. 밤에 잘 때 무서워서 나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잤다. 잠이 안 오는 날이면 할머니 손을 조물딱 거리기도 하고 내 손을 쓰다듬어달라고 징징대기도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에구, 잠이 와 죽겠그만 울 xx 땜시 할매는 잠도 몬 자네”하면서도 내가 잠들 때까지 내 손을 쓰담쓰담해주셨다.


내가 태어날 때 여자라는 이유로 부엌 바가지까지 깨신 할머니였지만 손자들 중에서 나를 제일 예뻐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박하사탕도 쌈지에 넣어두었다가 언니, 오빠는 안 주고나한테만 몰래 한 개씩 입에 넣어주곤 했다. 할머니가 나를 애지중지하는 모습에 엄마는 배신감까지 들었다고 했다.


내가 14살 되던 해 5월 우리 집은 방 3개짜리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 봄에 87세가 되었던 할머니는 이사한 집에서 얼마 지내보지도 못하고 낙상으로 며칠을 고생하시더니 그만 돌아기시고 말았다. “엄마요!”라는 짧고 강렬한 아버지의 통곡소리에 나는 잠을 깼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상대적으로 편한 죽음이었다고 어른들은 기억했다. 내 14년 생애 처음으로 대면한 죽음이었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던 존재와의 이별. 어리다는 이유로 나는 상례에서 제외되었다. 모두들-3살 위 언니까지도 상을 차리고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건만 막내라 집안일에서 거의 배제되다시피 했던 나는 할머니와 이별하는 곳에서도 배제되었다. 나는 3일장 내내 학교를 가야 했다. 가족들은 그들의 할 일과 슬픔에 쫓겨 어린 막내가 홀로 견뎌냈었을, 할머니와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외로움과 무서움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나는 할머니와 이별을 했다.




일 년이 지났다. 며칠 뒤 할머니 기제사였다. 엄마는 할머니의 첫제사 준비를 시작했다. 10명이 훌쩍 넘는 큰아버지, 큰엄마, 고모, 고모부들이 올 것이라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고 있을 때 엄마는 고사리를 삶고 있었다. “너거 할매가 니를 억수로 좋아했는데 첫제사 때 와서 xx 니 델꼬 간다하믄 우야지?” 잘 삶긴 고사리를 찬물에 씻으면서 엄마가 우스개 소리를 하셨다. “델꼬 가믄 큰언니를 델꼬 가겠지. 내는 할매가 제일 예뻐라 했는데 저승에 델꼬 갈 일이 있나?” 이렇게 말하는 내게 엄마는 덧붙였다. “원래 귀신들은 이승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을 저승으로 델꼬 간다이. 저승에서 안 심심할라꼬.” “칫.” 엄마는 내가 아직 국민학생인 줄 아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저 딴 얘기에 솔깃할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귀신 이야기, 저승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이런 것은 언제나 들어도 재미있었고 몸을 부르르 떨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언니들과 제일 큰 방을 같이 썼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틀어놓고 우리는 잠자리에 누웠다. 라디오에서 ‘청취자 여러분 내일 뵙겠습니다.’는 멘트가 나왔다. 벌써 밤 12시가 넘었다. 언니들은 벌써 깊이 잠이 들었다. 나는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베개만 베면 3초 안에 잠이 들던 나는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잠을 들기를 청하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래도 쉬이 잠은 오지 않았다. 15분쯤 더 지난 것 같았다. 닫힌 방문 밖에서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새로 지은 집이었지만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은 밤에 거실에 요강을 두었다. 발걸음의 주인공은 요강에서 오줌을 누었다. ‘쉬이익~’ 오줌발이 시원하지 않았다. ‘엄마인가?’ 나는 생각했다. 발걸음은 부엌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부엌에서 삼사 분 가량 머물러 있었다.  ’ 물을 마시는가 보다. 나도 물 마시러 나갈까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발걸음이 부엌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그 발걸음은 우리 자매가 자는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엄마나 아버지는 우리가 잘 자는지 라디오를 안 끄고 잠이 들었는지 가끔씩 방문을 열어 확인해보곤 했다. 나는 문 밖에 있는 엄마가 곧 문을 열거라고 생각하고 이불을 더 끌어당기고 자는 척을 했다. 그 시간까지 안 잔 걸 들키면 또 야단을 들을 것은 뻔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xx야, xx야’


할머니 목소리였다.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덮어썼던 이불을 내렸다. ‘잘못 들었나?’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크에엑 퉷! xx야!’


분명히 할머니 소리였다. 늘 가래를 달고 살았던 할머니가 가래를 뱉던 바로 그 소리였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할맨데, 분명히 할매목소린데!’ 나는 이불을 내려 일어나 앉았다. 할머니를 반길 참이었다. 막 일어나려고 한 순간, 퍼뜩 생각이 들었다. ‘할머닌 죽었잖아? 이렇게 목소리가 들리면 안되는 거잖아?’ 동시에 나는 낮에 엄마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원래 귀신들은 이승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저승으로 델꼬 간다이.” 정말 할머니가 나를 저승 동무하려고 데리러 왔을까?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동시에 내가 문을 열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이 호기심에 대한 답은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귀신이 이름을 세 번 불렀는데 문 밖으로 나가면 그 사람 따라 저승 가고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이 진짜라면,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진짜 우리 할매의 혼령이면 나는 죽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번 더 내 이름이 불렸다.


‘xx야, xx야, 야가 와 답이 없노’


나는 할머니를 정말 좋아했다. 할머니도 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셨다. 너무나 듣고 싶었고 그립던 할머니 목소리에 나는 눈물이 왈칵 맺혔다. 맨날 야단치는 엄마, 가끔 하시는 말씀이 늘 고함이었던 아버지보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던 할머니가 더 좋았다. 보고 싶었다. 나는 방문을 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서 둥근 문고리를 잡았다. 이제 이것만 돌리면. 내 가냘픈 손목을 한 번만 비틀면 문이 열린다. 그러면 진짜 할머니 일지, 아니면 엄마가 잠결에 낸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으응” 툭

그때 옆으로 새우잠을 자고 있던 언니가 몸을 바로 돌려 누우면서 소리를 냈다. 팔은 허공을 반 바퀴 돌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툭’ 소리와 함께 나는 문고리에서 손을 놓았다. 대신 닫힌 문 너머 할머니를 바라보듯이 문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혹시 어젯밤 12시 좀 넘어서 요강에 오줌 누러 나왔나?” 엄마는 한 번 잠들면 새벽이나 되어야 깨서 오줌을 눈다고 하시면 아니라고 했다.

“어제 12시 좀 넘어서 누가 요강에서 오줌도 누고 부엌에 가서 물도 마시고 했는데. 근데, 그 사람이 내를 ‘xx야’하고 부르는 거라, 밖에서. 나는 엄마인가 했는데 목소리는 할매하고 똑같은기라. 쪼매 무섭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했다.”

“니가 잘못 들었지? 그럴 리가 있나?”

“아이다. 진짜 할매 목소리하고 똑같드라. 내를 세 번이나 불렀다꼬.”

언니랑 티격태격하던 중에 아버지가 고함을 치셨다. “시끄럽다. 밥이나 묵으라. 무슨 할매가 온단 말고! 아버지가 일찍 자라 안카드나!”

나는 무서운 아버지 기세에 눌려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며칠 뒤 할머니 제삿날, 원래 우리 집에서는 여자는 절을 안 하는데 엄마는 나보고 절을 하라고 했다. 내가 절을 하는 동안 엄마는 말했다.


“어무이요, xx가 아무리 좋아도 xx한테는 오지 마쉐이. 저승에서 아버님 만나서 두 분이서 재밌게 노쉐이. 야?”



* 그림: 동화작가 이진희 <책 읽어주는 할머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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