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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28. 2021

김유정 - <봄봄>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던 중 이런 글을 발견했다.

'김유정의 '동백꽃' 청소년 추천 도서더라. 그거 실제로 보면 되게 야한 소설인데 애들이 '동백꽃'을 읽고

그 간질간질한 느낌을 알까?' 뭐 대충 이런 유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글을 보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동백꽃'이 야한 소설이었나? 그냥 점순이랑 남자 주인공이 썸 타는 내용 아니었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한 '내가 동백꽃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자신이 없어졌고 김유정의 소설 중 제대로 읽은 것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었다. 더 나아가 한국 단편 문학을 몇 개나 읽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과서에서 저자와 제목을 사랑의 작대기 엮듯 짝짓기만 했지 정작 읽은 건 몇 개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 나는 김유정의 단편집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김유정 단편선에는 모두 18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었다. 내가 제목이나마 들어본 작품은 고작 두 개.

<봄봄>과 <동백꽃> 나머지 16작품은 처음 들어보는 제목과 내용들.

18개의 소설들은 각각 1933년 1935년 1936년 1937년에 씌여졌다. 당연하겠지, 1908년에 태어난 김유정은 22살부터(1930년) 습작을 시작했고 겨우 방년 30살(1937년)에 폐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미인박명 천재 요절이라는데 김유정도 천재였을까?



내가 아는 <봄봄>과 <동백꽃>은 나와 점순이가 썸을 타거나 작업을 거는 내용이라 김유정의 소설들이 전반적으로 이 두 작품처럼 밝고 통통 튀는 젊은 취향을 갖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수록된 첫 작품 <총각과 맹꽁이>부터 내 기대와는 어긋났다. 장가 못 간 농촌 총각이 들병이에게 어떻게든 장가 한번 들어보려다 친구에게 뒤통수 맞는다는 내용이었는데 뒤통수 맞은 주인공 총각이 덜떨어져도 한참 덜떨어졌기에 주인공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총각과 맹꽁이>부터 시작된 일제강점기를 살던 이 덜떨어진 남정네들은 연이어 수록된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김유정이 그려놓은 남정네들은 살기가 고된 나머지 야비하게 마누라를 팔아먹거나(가을), 마누라에게 들병이나 매춘을 시키거나(소낙비, 안해), 혼자 살겠다고 집의 솥을 뜯어 딴 계집과 도망을 시도하거나(솥) 혹은 오입 사건의 처리를 마누라에게 떠넘기는(정조) 짓거리들만 일삼는다.



야비하지는 않지만 못난 것은 매한가지인 남정네들도 수두룩하다. 열심히 일해도 내 손에 떨어지는 것 하나 없어 일확천금 노다지를 노리고 금광이나 캐러 다니기 일쑤이고(금 따는 콩밭, 노다지) 아픈 마누라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돈 푼 이나 만지려다 그게 아닌 걸 깨닫고 곧 죽을 마누라를 도로 지게에 싣고 가버리고(땡볕) 일 년 뼈빠지게 일해도 늘어나는 건 빚뿐이니 내가 일군 곡식도 남몰래 도둑질이나 해가는(만무방) 그런 사내들 천지인 세상이 김유정이 만든 세상의 사내들이다.

아니, 김유정이 만든 세상이 아니라 김유정이 묘사한 세상의 사내들이다.



여자들은 또 어떤가?

틈만 나면 들병이로 돈벌이를 나가려고 궁리를 하고(안해), 몸을 팔아서라도 오늘의 떄꺼리를 만들어야 하고(따라지, 소낙비), 경성 간 도련님 맘이 떠난 줄 알면서도 하염없이 맥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산골).

하나같이 수동적이고 매를 맞고 그러면서 남편과 집안을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만 하는 힘없는 여인네들 천지인 세상이 김유정이 묘사한 1930년대 중반의 세상이다.

김유정 단편선 목차


김유정은 일제강점기 밑바닥을 살아내는 우리네 이웃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그려내었다.

그의 짧은 소설을 읽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고 울화가 올라온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답답해 부아가 치밀고 우리 할아버지이자 할머니였을 그들이 그렇게 밖에 살 수 없게 만들었던 세상에 울화가 터져 나왔다.



나는 김유정이 <봄봄>이나 <동백꽃>같은 약간은 달달구리한 로맨스 소설을 그려낸 작가인 줄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다. 김유정은 20대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경성의 모던보이를 그리지도 않았고 공부깨나 하여 무식한 농꾼을 계몽하려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지도 않았다. 그저 오롯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참담하고 가장 낮게 흘렀던 그 시절을 있는 그대로, 그저 태어났기에 삶을 살아내야만 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평론가(김미현)는 1930년대 문학가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효석은 현실을 초월하여 '위'의 천상계를 추구하였고 이상은 인간 내면을 중심으로 자아의식의 저 '아래' 갱도에 집착했으며 김유정은 지상에 있는 우리 '옆'의 이웃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고 평하였다.

<봄봄>과 <동백꽃>만을 생각하면 '진짜?'하고 반문할 얘기이지만 김유정의 단편 소설집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 평론가의 말이 제대로 납득이 되는 것이다.

김유정의 작품 속 세상은 다수 민중이 살고 있던 진짜 내 옆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인 <봄봄>과 <동백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왜 이 두 작품이 그토록 인기가 있을까? 비록 팍팍한 삶이지만 그래도 연애라는 감정은 사람을 살 떨리게 한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미혼의 남녀가 가지는 괜스레 몸의 깊숙한 곳이 간질간질해지고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는 달달구리한 감정이 진솔한 언어로 담백하게 잘 표현되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봄봄>의 주인공 '나'도 <동백꽃>의 주인공 '나'도 순박하니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줄만 알았지 점순이가 주는 묘한 신호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멍충이들. 주인공 '나'들의 감정을 묘사할 때도 간 보는 점순이의 마음을 묘사할 때도 김유정은 화려한 부사어와 유미적인 수식여구를 갖다 붙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흔남 흔녀들이 툭툭 내뱉는 일상 언어로도 어린 예비 연인의 설렘을 잘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김유정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 또 한 가지 이유! 문체의 담백함이다. 흔히 작가라고 한다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문장을 썩 고급 지게 잘 쓴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작가라는 사람들은 온갖 비유와 은유와 대조와 직유의 기법들을 빌어서 감히 나 같은 사람은 비벼대지도 못할 마침맞는 표현과 묘사들은 적재적소에 갖다 놓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김유정의 작품에는 기가 팍 죽어 호흡이 멎을 정도의 화려하고 유려한 문장들이 없다.

그저 담백한 시골 아저씨가 지나가던 나그네에게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 것 같은 문장으로 술술 써놓았다.

화려한 기술이 없어도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구나!

내가 이번 김유정 단편집에서 얻은 수확 중 하나이다.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의 살레 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폐결핵이 걸려 귀향하여 야학을 만든 곳도 그의 고향 춘천 살레 마을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에는 곳곳에 강원도 사투리가 배겨있다.

어떤 사투리는 짐작으로 알아맞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외국어처럼 생소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생소한 강원도 사투리를 만나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가지고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틈틈이 글을 포스팅하고 있는 나.



강원도 춘천의 레일바이크장과 그 곳에 있는 김유정 마트. 레일바이크장에는 김유정을 기념하여 책으로 꾸며놓았다.




세월이 가고 발달된 미디어로 인해 서울말이 전국 방방곡곡 퍼져나가 자라나는 지역의 이아들조차 위 세대의 사투리보다는 방송에서 나온 서울말이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라, 나는 사투리가 점점 잊힐까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다.

잊고 있던 사투리를 발견하면 따로 메모를 해두었다가 글을 쓰기도 하고 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이든 사투리를 많이 알거나 사용하는 이들을 보면 그저 반갑다. 김유정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 중 하나가 이 반가움이었다. 아마 1930년대에는 널리 사용되었을 강원도 춘천 사투리, 지금의 춘천 사람들은 한번 보고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을까?

나는 지역의 사투리가 고이 고이 살아있는 언어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BS 방송 다큐멘터리 중에서 요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문해력이 상당히 딸린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따로 책을 읽지도 못하고 신문을 읽을 시간도 없으며 유튜브 등에서 들은 간단하고 직설적인 언어들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 요즘 청소년들. 국어와 영어 시간에 정작 공부는 하지도 못하고 단어 설명하는데 수업의 반 가까이를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화의 희열이라는 방송에서 유시민은 사람들의(특히 청소년) 단어력과 문장력 그리고 국어 실력을 대폭 증대시키려면 박경리이 <토지>를 필사하면서 읽으면 바로 해결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한동안 한국 근현대문학을 도외시해왔던 것 같다. 외국 고전을 더 많이 읽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숏폼의 글들만을 챙겨보며 글보다는 영상을 더 많이 접하는 시절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때에 국어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숙제처럼 읽는 김유정, 이효석, 현진건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답게 접하면서 문학 속의 시대도 읽고 단어도 익히며 삶도 체험하는, 그런 한국 단편 소설 읽기가 보편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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