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your fault - <Good Will Hunting>
오늘은 비만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께 '이거 만큼은 전하자'는 것을 적고 싶네요.
제 얘기를 해볼까요? 저는 몇 달 전까지 '뒤뚱거리고 뚱뚱한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는 분리의식으로 스스로를 혐오하고 자책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혐오하고 비난해도 달라질 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고통의 시간만 늘어날 뿐이었죠.
매번 건강검진에 가슴을 졸입니다
과식과 폭식을 반복했습니다. 먹는 것이 즐거워서? 아뇨. 과자 포장지 비닐을 뜯는 순간에도 후회를 하고 괴로움이 치밀어 오릅니다. 폭식을 하는 중에는 '난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쉴 새 없이 떠오르죠. 폭식이 끝난 직후에는 화가 나고 뒤이어 지독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옵니다. 이런 괴로움을 알면서도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죠. 왜 멈출 수 없었을까요?
과식과 폭식이 자학이란 것은 진작에 깨닫고 있었습니다. 폭식은 혐오스러운 나를 향한 비난이었고 응징이었습니다. 응징하는 순간만큼은 죄책감이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죄책감 해소로 얻어지는 약간의 평안함과 생체적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폭식하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그나마 편했으니까요. 그것이 과식과 폭식을 멈출 수 없던 이유입니다.
잘못된 행동인걸 아는데도 멈출 수가 없다
먹는 시간만큼은 부정적인 마음과 괴로움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싶었습니다. '먹고 있다'는 행위조차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서 영화,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면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아무 생각 없이 군것질과 폭식이 가능해졌죠.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혈당 스파이크로 식욕이 들끓을 때, 무언가를 즐길 때 먹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곧 하루에도 십여 차례 기분과 상관없이 만족감, 쾌감, 평안이 느껴지는 순간을 끊임없이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나 -> 불안하고 부정적인 마음 -> '뚱뚱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응징하고 싶은 마음 -> 과식과 폭식 -> 후회와 자책, 평안과 만족감 그리고 쾌감 -> 체중 증가 -> 더 부정적인 나
부정적인 루프를 끊고 싶었지만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뚱뚱하고 나약한 내가 싫었습니다. 혐오했습니다. 언제까지 혐오해야 만족할 수 있던 걸까요? 내가 만족할 만큼 날씬해질 때까지? 1kg의 감량조차 자신할 수 없는데 수십 킬로그램을 감량할 수 있는 그런 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숫자에 압도됩니다. 손을 놓고 포기하게 됩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자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출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여러분들은 어땠나요.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나요?
전에도 언급했지만 '비만은 내적 고통이 외부로 드러난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절제가 부족하거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에요. 마음속에 쌓인 여러 가지 상처와 괴로움, 피로, 결핍들을 해소하지 못하고 혼자서 껴안은 채 조용히 해결하려던 것이 식욕으로 돌출된 것뿐입니다. 그것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 비만이 되어버린 것뿐이죠.
우린 다이어트가 아니라 병원이 시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각하질 못합니다.
호르몬으로 인한 식욕 : 의지로 컨트롤할 수 없어 계속 악화.
자기혐오 :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괴로움. 먹는 '순간'의 만족감, 쾌감으로 회피하며 계속 악화.
병원보다는 다이어트약이 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쿠팡에서 디톡스, ABC 주스, 닭가슴살, 단백질 파우더를 주문하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 내 수치를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혼자서 의지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시도하고 발버둥 치다가 좌절하고 포기하고 자기혐오에 더 깊이 빠져들곤 합니다.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혼자서 해결하기엔 너무도 힘든 상황입니다. 부디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 힘들다. 괴롭다. 생각처럼 되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와줘.
도움을 요청하길 기다리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지도 몰라요
'뚱뚱한 나'를 미워하지 마세요.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든 노력한 결과일 뿐입니다. 살이 쪘다고 나조차 나를 혐오하고 포기하면 지금까지 힘들게 발버둥 치고 노력한 내가 너무도 불쌍하고 가엾습니다. 뚱뚱한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고 조금은 포용해 주고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그리 쉽진 않았잖아요.
'정신승리하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건강하고 순탄할 때 자신을 저주하고 화를 내면서 폭식하는 일 따위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비만은 여러분이 수많은 힘든 나날들을 이겨낸 흔적일지도 몰라요.
"It's not your fault" - <Good Will Hunting>
아직 병원을 가지 않았다면 병원을 다녀오세요. 그리고 다이어트 기간 동안 '뚱뚱한 나', '폭식했던 나'를 용서하고 화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평안한 휴일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초인은 이러저러한 충동에 이끌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반대방향으로, 즉 미래에서 과거로 향하게 하여, 동요와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면서 평정을 경험하는 자다. 과거의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보면서 축복하고 긍정한다. 의지의 자유란 미래를 계획에 맞추어 실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긍정할 정도의 힘이다." - <힘에의 의지 사상과 영원회귀 사상은 양립 가능한가: 한나 아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