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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Jul 07. 2024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Death is of vital importance : on life, death and life after death - Kubler-Ross, Elisabeth>


열아홉 살 스위스 소녀 엘리자베스는 폴란드 마이다네크에 도착한다. 나치수용소가 있던 곳에서 아이들의 작은 신발과 머리카락이 빼곡히 들어찬 열차와 소각장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돌이나 백묵으로, 그마저 없으면 손톱으로 벽에 저마다의 상징을 새겼다.(제일 많이 새겨진 그림은 나비였다)


엘리자베스는 그곳에서 한 유대인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모든 형제자매를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잃었다. 온 식구를 가스실에 밀어 넣었는데 더 이상 넣을 수가 없었기에 그녀는 가스실 외부에 남겨졌고 그렇게 혼자 살아남았다. 그녀는 전쟁이 끝나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남았다. 거기서 수용소의 참상을 세상에 널리 알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증오와 폭력의 씨앗을 뿌리는 일은 히틀러가 저지른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슬프고 끔찍한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선택했다.


"신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짊어질 수 있는 짐만 주신다고 믿는다면, 세상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마이다네크의 비극과 참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 인생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을 미쳐 그를 나쁜 생각과 증오와 복수와 괴로움에서 변모시킬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있을 것이고 내가 살아남은 보람이..."


그렇게 그녀는 참혹한 이 장소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엘리자베스는 마이다네크에서의 만남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책이 쓰여지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의사가 되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죽음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다. 마이다네크처럼 말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절망하고 남은 시간을 부정과 슬픔 분노로 보낸다. 치료란 변명에 기대어 의료기관 종사자와 종교에 모든 걸 떠넘기고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회피하기도 한다. 그렇게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에게 응어리가 남은 상태로 모두가 끝을 맞이하곤 한다.


죽음이 다가왔다고 누군가의 삶, 함께 살아온 시간이 의미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삶을 재료로 무엇을 완성할지 우린 남은 시간에 선택할 수 있다. 남은 시간을 마이다네크에 머물며 구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유대인 여성처럼 말이다.


바꿀 수 없는 죽음을, 현실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린 삶의 마지막까지 깨닫고 배우며 마지막 획을 차분히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습하고 차분한 밤에 투썸 플레이스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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