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게 된 이유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

by 두부

—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시간


나는 여전히 불안을 안고 산다. 이 불안이 정확히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과거의 경험과 유년의 기억, 설명되지 않은 사건들이 겹쳐 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정리하거나,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이 불안은 그렇게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불안을 없애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불안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정상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뜻 같았고, 그래서 늘 나 자신을 재촉했다. 괜찮아져야 하고, 안정돼야 하고, 지금의 상태를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붙일수록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예민해지고, 더 다양한 얼굴로 돌아왔다. 불안을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나를 더 불안한 상태로 밀어 넣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분명해졌다.


지금도 나는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약을 먹고 있다. 이건 극복의 증거라기보다, 내 상태를 인정한 선택에 가깝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는 다른 방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없애는 삶이 아니라, 지나치게 망가지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쪽으로.


이제 나는 불안을 없애기보다 관리하는 쪽으로 산다. 불안이 어떤 순간에 더 쉽게 커지는지, 어떤 환경에서 나를 놓아버리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리한 일정, 감당할 수 없는 설명, 내 상태보다 앞서 나가야 하는 자리들을 나는 조심스럽게 피해 간다. 도망이라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불안이 놓이는 지점을 알게 되자,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불안을 참고 버티는 대신,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순간을 미리 피한다. 그렇게 해서 지켜낸 하루들이 쌓이면서, 불안은 더 이상 삶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했다. 불안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내가 나를 다루는 방식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불안이 없는 삶을 목표로 삼지 않자, 불안이 있어도 유지할 수 있는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한 날에도 하루를 끝낼 수 있었고,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도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불안은 여전히 오지만, 이제는 나를 끌고 가지는 못한다. 나는 불안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불안을 안은 채로 나의 속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불안을 기준으로 삶을 재단할수록, 나는 늘 아직 부족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불안을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삶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도,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


불안을 관리한다는 건,

불안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 있어도 나를 잃지 않는 기술에 가깝다.




다음 글에서는, 불안이 조금 물러난 뒤

다시 생각이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순간에 대해 쓴다.


이 기록은 불안과 침묵, 판단을 미루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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