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다시 직선이 되는 순간

생각이 한 방향으로만 흐를 때

by 두부

—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시간


불안한 상태에서는 생각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된 감정이 전혀 다른 기억과 상상으로 번지고, 머릿속은 끝없이 방향을 바꾼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나를 의지 부족이나 미성숙으로 오해했다.


불안은 대개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된다. 말 한마디, 예상치 못한 침묵, 무심한 표정 하나. 그것이 트리거가 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손이 떨리고 숨이 가빠진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생각이 쏟아진다. 어떤 생각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여기저기로 튀어 오른다.


예전의 나는 이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불안을 느끼는 순간, 어떻게든 처리하려 했다. 원인을 찾고, 의미를 붙이고, 지금 당장 결론을 내려야만 이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애쓸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나를 정리하면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고, 생각은 점점 더 분산됐다.


지금의 나는 다르게 반응한다. 불안이 시작되면,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괜찮아질지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낸다. 이건 회피나 포기가 아니다. 그저 그 상태를 그대로 두는 선택에 가깝다. 그 며칠 동안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럽다. 생각은 멈추지 않고 계속 튄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전혀 다른 결론을 상상했다가 다시 무너진다. 정리되는 느낌은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분명한 결론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생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사고가 천천히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불안이 모든 방향을 점령하지는 못한다. 감정이 판단보다 앞서지 않고, 생각은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나는 이 순간을 회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건 정리라기보다 정렬에 가깝다. 불안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불안이 사고를 끊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를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상태. 불안이 물러난 뒤에야 생각이 돌아오는 게 아니다.


생각이 한 갈래로 모였을 때, 비로소 불안은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난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나를 내가 운전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다만 이제는 안다. 생각이 다시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은,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서가 아니라 기다렸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걸.


다음 글에서는,

사고가 다시 흔들리는 날에도

내가 붙잡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 쓴다.


이 기록은 불안과 침묵, 판단을 미루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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