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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앨리스 Feb 02. 2021

'꿈'이 주는 그 유익함에 대하여.

그 해 여름방학, 세계를 날다.


모두가 주인공 일 순 없지만
최소한, 내 인생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지.


두바이 에미레이트 항공 낙타 동상.


나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어린 시절, 항상 타인이 나보다 먼저였다. 집에서는 '오빠'가 선으로 기대와 무게가 실렸고, 학교에서는 조금 부자이거나 공부를 잘하는 얼굴이 흰? 여자애들이 인기가 많았다. 나는 깡마르고 캐러멜색 얼굴에 40여 명의 한 반에서 15등 내외의 수준이었으니 공부로 승부를 볼 것도 아니었다. 시험 때만 벼락치기 식의 공부를 했다. 꿈 많은 '빨강머리 앤'의 어린 시절과 같은 느낌일까?


    처음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 2학년이었다. 등교하는 길이 항로였던 것인지 학교를 갈 때마다 '대한항공'의 파란 항공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나 좀 데리고 가주세요.' 매일 아침 만나는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도 저 비행기 안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가도 집에 있어도 빛나는 쪽은 항상 내가 아니었으니 나는 집에서도 평범, 학교에서도 평범한 인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나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꿈'이라는 건 사람을 일으킨다.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당시 나는 통역사가 되고 싶었는데 통역사의 공부량은 어마어마했다. 나에게 그만큼의 집요함이 있을까를 고민했고 현실적으론 우리 집에서는 내가 졸업하고 대학원을 갈 때까지의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없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때, 분명히 기억하는 건 '마치 뇌우가 내 머리를 내려치는 것과 같은 강력한 생각'이 내 머리에 꽂혔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승무원이 되자!


세계 최고 수준의 트레이닝 센터.


    승무원이 되었다. 그것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말 그대로 'Dreams come true'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촌스러운 부산의 한 대학생인 내가.. 그것도 최연소로...

비디오테이프를 앞으로 돌려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한 교수님의 칭찬이 결국 합격으로 이끌었던 첫 도화선이 되었다.




    그 교수님은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50대 초반 정도 나이의 싱글이었다. MIT에서도 강의를 했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멋있는 여자였다. 왠지 모르게 말투가 특색 있고 멋있었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그분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정말 대단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하루는 학생들 앞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영어로 간단한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 교수님께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받은 것이다.


    난 그때 처음 '인정'이라는 것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21세에. '나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나도 빛날 수 있겠구나'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에게 엄청한 원동력을 가져다주었다.



승무원 지원에 왜 다들 학벌이 좋을까.


    승무원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영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학생이었지만 다행히 영어를 좋아해서 영문과에 갔으니 그것만은 맹렬히 공부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기수 국내파 최연소로 합격을 했다. 내 동기들은 소위 서울의 인 서울 중에서도 명문대 출신들도 있었고 어린 시절 3~4년의 외국 생활을 했거나 외국학교를 나오거나 정말 봐줘서 최소한의 스펙이 어학연수 1년이었다.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원하느냐? 전혀 아니다. 회사는 외국기업이기 때문에 내가 이력서에 'Seoul University'를 썼다 하더라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모르니까. 또한 영어 스피치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뽐낼 수 있는 영어실력보다는 '사람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어쩌면......... 도전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부산의 한 유명하지 않은 대학교를 휴학하고 입사를 했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나와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자격 요건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었고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의 나라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크루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 승무원들은 매우 똑똑했다. 학벌 면으로 보았을 때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빨리 발견했을 뿐이었다.

SEP 시험공부 중, 트레이닝은 결코 쉽지 않다...



'OO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막상 입사를 해 보면 상상과 현실은 달라야 하는데 아니, 사실 막연히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영어를 좋아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의 혜택이나 모든 인프라는 상상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사회경험이 없는 학생 생애 첫 회사로 인생 변화 간극이 드라마틱했다. 대학교 4학년의 학교의 동급생들이 취업준비를 시작할 무렵, 나는 5성급 호텔 생활을 하며 세계를 비행하는 삶으로 거듭났으니 입사 당시만큼은 부끄럽지만 꽤나 의기양양했던 것 같다. 0.16%의 가능성을 뚫었으니. 물론, 남에게가 아닌 나 자신에게.


두바이몰 분수 쇼.


노란색 화살표로 내가 살던 곳을 표시했다. 세계 최고층의 빌딩 '버즈 칼리파'와 분수쇼가 보이는 곳.





    나는 간혹 대학생들의 동기부여 강연에서 얘기한다. 혹시.. 우리는 우리들 주변에 '안된다'라는 말을 믿고 있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는 자리라서, 나보다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많고 내가 그렇게까지 특출 나지 않아서 등등 너무 많은 이유로 시도 조차 포기하진 않나요? '나'를 어떻게 규정할지는 그 누구도 함부로 결정할 수 없어요.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고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세요. 그럼 인생이 활기차지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생동감을 느끼며 반짝입니다. 혹여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미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저도 많이 실패합니다. 다 잘하지도 못하고요. 그럴 땐 애잔한 마음이 들죠. 그래도 제 자신에게 감사하려 합니다. 네 덕분에 '세계여행'을 다 해봤다고.



두바이 거주 시절.





아, 서두에 엄마에게 난 두 번째라 얘기했지만 뒤돌아보니 엄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다.


뭐든지 '할 수 있다.'

안되면 치아삐지 뭐. 그까짓 거!


마음껏 꿈꾸어 볼 것과 결과에 대해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는

'가슴 뛰는 삶'의 시작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늘 자유로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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