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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May 17. 2020

편하게 밥 한 끼 먹는 관계 유지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함께 꿈과 이상을 노래했던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 정오 씨, 요즘에도 그분들이랑 연락하고 지내요?


   L 형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마음속 어딘가 깊숙히 묻어뒀던 기억을 꺼내 그 흔적을 들여다보았다. 한때는 내게 꿈이었고, 낭만으로 가득한 이상향이었고, 어쩌면 내게 전부였던 기억이었다. 아니요, 연락 끊긴 지 오래됐어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데도 절로 힘이 빠졌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국물이 무척 진해보이는 추어탕와 아기자기한 돌솥밥이 연기를 펄펄 내며 테이블에 놓였다. 와, 맛있겠네요. 산초가루 넣으십니까? 정오 씨 먼저 넣으세요. 추어탕 위에 뿌려진 산초가루는 독특한 향을 풍겼다. L형과 나는 이내 기다렸다는 듯 숟가락을 들었다.


   L 형은 대학 시절부터 문화예술 활동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졸업 후엔 각종 공모사업에 도전하며 본격적으로 문화기획 일에 뛰어들었다. 특히 재단에서 처음 진행했던 청년 대상 공모사업에 당당히 1등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고, 전국에 있는 문화기획자들을 모아 며칠간 함께 지내는 캠프를 기획하며 많은 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모사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L 형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부산에 있는 어느 문화기획 회사에 당당하게 입사했다. 대학 전공과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성과를 내며 더 나아가 그것을 업으로 삼는 모습은, 대학생이었던 당시의 내게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저렇게도 풀릴 수 있구나, 이 분야에 길이 영 없는 건 아니구나, 마침 대외활동을 왕성하게 하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던 내게 L 형의 영양가 있는 사례는 진로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주었다. 이듬해, 내가 몸담고 있던 단체는 L 형이 선정되었던 공모사업에 지원했다. 결과는 1등으로 선정, 전국에 있는 청년문화예술단체를 부산에 모아 세미 엑스포를 여는 기획이었다. 나는 1년을 텀으로 L 형이 이미 걸었던 발자취를 좇고 있었다. 나도 여기서 성과를 내면 L 형이 다니는 문화기획 회사에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달콤한 환상에 빠진 채 맞이한 스물일곱이었다.


   *


   와, 여기 진짜 맛있네요. 어떻게 찾았어요? 아, 검색해서 찾았죠. 서울 올 일이 있을 땐 항상 근처 맛집을 열심히 찾아봐요. 여전히 김이 펄펄 나는 추어탕 국물을 호호 불었다. 취업한 직후에는 한동안 연락했는데... 팀 내에서 갈등도 많았고, 팀 외부적으로도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결국 연락이 점점 끊어졌어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각자 먹고살기 바쁘니까. L 형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말은 내게 한 대답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그 길을 걸었다면, 내게 펼쳐진 상황이든 내가 느낀 감정이든, L 형은 그마저도 한발 앞서 느끼지 않았을까.


   팀 내 갈등, 동기부여의 결여, 점점 밀리는 월세와 공과금, 그 외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한 나는 고작 1년간의 활동을 끝으로 문화기획자의 삶을 포기하며 취업을 알아보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출판사에 들어왔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며 업무를 하나하나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사라질 때쯤, L 형이 문화기획 회사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의 강도가 무척 높았고 가치관, 방향 등이 회사와 맞지 않았다고 했다. L 형의 예상치 못한 퇴사를 먼발치서 지켜보던 나는 당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이 많네요. 엄청 구석진 곳에 있는데도... L 형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맛집인 거죠! 이모, 여기 갓김치 좀 더 주세요. 추어탕은 어느새 반쯤 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청년활동에 무척 관심 많았고, 취업하고 나서도 계속하려고 했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안 되더라고요. 회사에서 일 배우기도 충분히 바쁘고, 내 생각만 해도 버거운데, 청년활동에 관심 가지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나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에 L 형은 적극 공감했다. 저도 그래요. 내가 먼저 전문가가 되고 자리 잡아야지, 관심 가지거나 의욕이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우리 앞길부터 잘 헤쳐나가는 게 우선인 거 같아요.


   다행히도 L 형이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인연이 끊기지 않았다. 비록 문화기획 회사에서 나왔지만, L 형은 여전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 기획, 축제  감독, 음반 발매 등 오히려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에서, 회사라는 틀에 가둘 수 없는 거친 예술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L 형과 나는 한동안 프리랜서로, 직장인으로 각자 삶을 살아가다, 최근 함께 공모사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회사 실무자로서, L 형은 예술가로서 다시금 만난 셈이다. 다행히 1차 서류를 붙었고, 이어서 2차 면접을 위해 함께 서울에 올라온 것이다.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문화예술 분야에서 떠나갔기에, L 형과 업무로서 이어진다는 사실이 문득 신기하게 다가왔다.


   *


   추어탕을 다 먹어갈 때쯤, 돌솥밥에 남아 있는 밥을 드러낸 후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5분 정도 있으면 될 거예요. 와, 회사 근처에 이런 맛집 있으면 매일 먹을 거 같은데. 그러게요. L 형과 연신 감탄하며 남은 추어탕을 다시금 먹기 시작했다. 요즘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청년문화든 뭐든, 그냥 오늘처럼 크고 작은 프로젝트나 일로 연결되고, 한 번씩 편하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도 충분히 좋은 거 같아요. 이렇게 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L 형의 말에 문득 문화기획 활동을 함께 했던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그들이, L 형 말처럼 이제는 편하게 밥 한 끼 먹기도 쉽지 않은 관계가 되어버렸다. 함께 꿈과 이상을 노래했던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숱한 고민과 갈등으로 가득했던 당시의 기억 중 아름다운 부분만 간직하는 것이었다. 조금은 서글픈, 기억의 미화였다.


   정오 씨, 다 먹었어요? 일찍 도착해서 면접 준비도 해야 하니까, 이제 일어나죠. 한동안 끊어졌던 L 형과의 관계는 이번 공모사업으로 다시금 이어졌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면접을 잘 보는 것이다. 과거야 어떻든 현재의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공모사업에 당당히 붙어 관계를 새롭게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네, 갈까요?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뒤로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서울의 하늘은 조금 우중충했지만, 짙게 덮인 구름 뒤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을 해를 상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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