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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Apr 27. 2020

오만한 처방을 내리던 나의 입에선 역한 냄새가 풍겼다

나의 아픔과 힘듦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분명 술을 많이 마셨는데, 원하는 만큼의 얼큰한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12시가 넘은 시각. 내일 출근을 생각하면 얼른 잠들어야 했지만, 이유 모를 쓸쓸함과 허기가 온몸을 사로잡은 새벽의 감성은 눈꺼풀 간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며 오늘 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둘 떠올렸다. 몇 년간 시험을 준비하는 연인의 합격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누군가와, 직장생활이 힘들어 하루에도 수십 번 때려치울 생각을 하는 누군가. 누군가는 친한 친구와 크게 다퉈서 힘들어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에게 험한 말을 내뱉는 아버지로 인해 눈물을 보였다. 각자 다른 속도로 이 먹먹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관계에서도, 늘 약자의 입장에 서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이며, 나는 어떤 속도로 이 터널을 지나고 있을까. 고민에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내가 향한 곳은 거실에 있는 냉장고 앞이었고, 고된 하루 끝에서 선택한 건 달콤한 잠이 아닌 손에 쥐어진 맥주 한 캔이었다.


   뭔가 볼 만한 게 없나 싶어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 저번에 보다가 만 어느 드라마를 클릭했다. 2014년에 만들어진 이 드라마에 뒤늦게 관심을 가진 건 몇몇 장면을 편집한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불과 몇 분짜리 영상이었지만, 시간이나 때울 겸 클릭했던 내게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강하게 다가왔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연이어 쏟아지는 요즘, 굳이 6년이나 지난 드라마를 뒤적거리는 건 당시의 강렬함을 다시 느끼고, 내가 느낀 감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자그마한 노트북 화면으로 드라마가 펼쳐졌다.


   *


   낙하산으로 회사에서 들어와, 인턴 신분에서 2년 계약직이 된 주인공. 그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계가 펼쳐졌고, 그 관계 속에 머무르는 각 인물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오로지 주인공을 선(善)이라 하고, 그에게 시련을 주는 이들을 악(惡)이라 치부하기엔 많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또렷한 선악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건 각자가 가진 서사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두가 먹고살기 위해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통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사회초년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었지만, 회사에서 10년, 20년 자리 잡은 이들을 한낱 기득권으로 만들진 않았다. 오히려 처음엔 악으로 보이던 이들도 사회초년생의 시절이 있었고, 숱한 역경과 시련을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왔음을 보여주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먹이사슬과 치열한 경쟁, 사내 정치는 누구나 흔히 할 법한 직장생활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사회초년생을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건 깐깐한 대리도, 호통치는 과장도, 실적 따지기에 바쁜 부장도, 권위를 남용하는 임원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따지고 들어가면 그 원인은 시스템이었고, 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고, 회사를 그런 공간으로 만든 사회였고, 사회를 이렇게 흘러가도록 만든 자본주의였고,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돈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돈 벌려고 회사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그저 재미로 봐도 되는 드라마가 이토록 복잡해질 줄이야.


   *


   맥주 한 캔을 다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뒤늦게 취기가 올라왔다. 비단 맥주 한 캔의 취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독했다. 문득 술자리에서 숱하게 들이켰던 술이 생각났다. 지인들과 나눴던 소주잔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온갖 이야기 조각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고, 그 날카로운 조각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함부로 온갖 말을 내뱉던 나 자신의 못난 모습이 그려졌다. 아무리 시험 준비해도 이렇게까지 연락 다 끊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원래 직장생활이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도 돈 많이 받잖아요? 그 친구도 잘못했는데, 너도 참 답답하네. 부모님이랑 갈등이 싫으면 너가 독립하든가. 아니면 너가 아버지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 봐. 돌이켜보니 술자리에 놓여 있던 소주보다 독한 건 남의 일이라고 이러쿵저러쿵 팔짱을 낀 채 이야기하던 나의 어설픈 언어였다. 스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척하면서, 오만한 처방을 내리던 나의 입에선 역한 냄새가 풍겼다. 술자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독한 냄새를 자각했고, 기억이 만들어낸 취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냉장고에 가서 맥주 한 캔을 더 꺼내는 일이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독기가 술의 독기보다 더 매서운 탓인지, 술맛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위치는 어디이며, 나는 어떤 속도로 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걸까. 고생한 척은 다 했지만, 실은 나락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만 하는 절실한 상황이 없었기에 대학 시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잠깐 진로 고민을 했던 적은 있었지만, 오로지 나만 생각해도 되는 환경이었다. 무언가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거나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금의 직장에 들어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과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사회초년생의 그 절절함도, 아픔도, 고뇌도 나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의 절절한 고민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고 있었다. 각자의 속도에 대해, 각자의 서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새로 꺼낸 맥주 캔도 바닥을 보일 때쯤, 드라마도 끝나가고 있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주인공들이 멋있게 느껴질수록 내 삶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졌다. 이들에 비하면 내가 겪는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술자리에서 자신의 아픔을 꺼낸 지인들에 비해서 나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오늘 술자리를 함께한 지인도 모두 선악(善惡)이 사라진 세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 세계 속에서 유일한 악(惡)이 있다면 나였다. 쥐뿔도 모르면서 늘 저울을 가지고 다니는, 꼴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 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복에 겨운 어느 서른 청년은 캔 맥주의 마지막 한 모금을 게걸스럽게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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