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온기가 눈꺼풀 위에 한 줌씩 내려앉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쥬디스태화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밥집이든 술집이든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걸어야 했음에도, 쥬디스태화는 서면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이자 기다림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힘들지만 그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기다림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을 상상할 수 있게끔 해줬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추억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이곳은 기다렸던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친구, 동생, 형, 오빠, 누나, 언니를 만나 하나둘 이곳을 떠나곤 했다. 미래형이었던 만남이 현재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추억들이 시작되곤 했다. 왔나, 오랜만이네. 나 역시 이제 막 도착한 지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날씨가 추웠음에도 서면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들 두툼한 옷을 몸에 두른 채 서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5명이 앉을 자리가 남아있는 술집이 얼마 없었다. 몇 군데나 돌아다니다 간신히 한 곳을 찾았다. 안주를 주문했다.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첫 잔은 소맥이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다들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얘기를 나눴다.
대학생 때 만난 우리들은 어느새 사회인이 되었다. 빨리 취업한 동생은 직장인 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갔다.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인 형도 있었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취업한 다른 동생은 퇴사 준비 중이라 했다. 처음 만날 때 20살이었던 막내는 어느새 25살이 되었다.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고 이제 한 학기만 지나면 졸업이라 했다. 올여름이 지나면 이제 우리 중 대학생은 아무도 없는 걸까. 대학생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이에서 사라지게 되는 걸까. 괜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할 당시 혹은 막 취업을 했을 때는 누가 어디에 들어갔는지, 연봉은 얼만지 등이 화두였다. 1년쯤 지나니 각자 직장에서 겪는 고충이 화두가 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을 얼마를 벌든지, 직장을 때려치우지 않고 계속 다니는 게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물론 미덕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헤어진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새로 시작한 연애 이야기를 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시작한 사랑보다 끝난 사랑이 더욱 화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입사보다는 퇴사에 관한 이야기에 솔깃해지곤 했다. 축하 인사는 한두 마디면 끝나지만, 위로의 말은 술잔을 아무리 비워도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주위 사람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불행을 더 반기는 걸까.
아니, 사실 우리 삶이 늘 행복하다면 이런 술자리가 필요 없어질 것만 같다. 삶 자체는 항상 퍽퍽하고 고독했다. 더럽게 힘들었다. 불행은 행복이라는 큰 덩어리 속에 살짝 끼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불행 속에 행복이 이따금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힘든 사람끼리 모여 각자 힘든 얘기를 쏟아붓는 게 아닐까.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저 신세 한탄을 하며 묵혔던 감정을 해소하는 정도였다. 이게 또 내일을 살아가게끔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불행의 공동체와 닮아 있었다. 불행을 추구하진 않지만 늘 불행하고, 그래서 찰나의 행복이라도 느끼기 위해 술 한잔에 몸을 맡기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적당히 마시고 끝날 줄 알았는데 1차, 2차, 3차가 이어졌다. 새벽 1시 30분, 다들 술기운이 잔뜩 올라온 듯 보였다. 술을 더 마실까 하다가 노래방으로 향했다. 처음엔 신나게 놀다가 이내 한 명이 지쳐서 먼저 잠들었다. 나머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는 이별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찬가지로, 나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술에 취한 상태에선 타인의 아픔은 더 이상 화두가 되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가격만 더럽게 비싸고 맛도 없는 안주들이 펼쳐져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시설도 안 좋고 가격도 비싼 노래방에 오지 않았으랴. 하지만 우리는 이미 취해있었다. 개판이었다. 이제 평균 나이가 20대 후반인데 여전히 대학생처럼 노는 우리들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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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신발장에 못 보던 신발 한 켤레가 있었다. 항상 방문을 열고 외출을 하는데 오늘은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구지.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친구 놈이 자고 있었다.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녀석, 우리 집에 온다고 했었나. 생각해 보니 그랬던 거 같긴 한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다. 뭐, 크게 상관없긴 했다. 부산만 오면 늘 우리 집에 와서 자는 놈이니,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밖이 추워서 그런지 방 안 온기가 금세 온몸을 휘감았다. 빌어먹을 놈이 온수 매트 위에서 자면서 전원은 켜지 않았다. 그런데 보일러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미친놈아, 발로 친구 놈을 흔들었다. 불을 켰다. 욕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친구 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양치를 안 했단다. 그렇게 우리는 싱크대 앞에 서서 나란히 양치를 했다. 새벽 3시 30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봤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친구인데, 이렇게 술 먹고 남의 자취방에 들어와 버젓이 자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20살 같았다. 뭐,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오는 나 역시 마찬가지긴 했다. 바뀐 게 이토록 없다니,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겨울날, 밤늦게 돌아오면 집은 항상 냉기로 가득했다. 오늘은 친구 놈이 생각 없이 방을 잔뜩 데워놓은 덕에, 집 곳곳에 온기가 퍼져 있었다. 자리에 눕자 잠이 솔솔 쏟아졌다. 늦은 겨울밤, 뜻밖의 온기가 눈꺼풀 위에 한 줌씩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