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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Aug 17. 2019

장가갈 수 있을까

제가 왜 소개를 거절했냐면요...

   - 실례합니다. 안주 나왔습니다. 


   A 형과 나 사이에 안주가 놓였다. 커다란 접시 위엔 오징어회가 먹기 좋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먹기에 조금 많은 양이었다. 심지어 2차로 왔는데 이걸 다 먹을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안주가 많을까 봐 걱정하는 것만큼 미련한 걱정은 없다. 소주 한 잔 비우고 회 몇 점 먹고, 그러다 보면 금세 사라질 것이다. 


   - 그래서 왜 소개를 거절했다는 거고? 


   무엇보다 연애 이야기를 꺼낸 이상 얄짤 없다. 이 자리에서 못해도 소주 2~3병은 비워야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 사실 자신이 없었습니다. 

   - 니가 뭐 어때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벌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한다이가. 취미 생활도 많고. 뭐, 너무 많아서 문제이긴 한데.

   - 그런 게 아니고요, 행님... 


   소주잔을 기울였다. 처음엔 쓰기만 하던 소주가 조금씩 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1차 때 각각 소주 한 병을 마셨으니, 이제 막 취기가 올라왔다. 오징어회 두 점을 집었다. 초장에 살짝 찍어 입안에 넣었다. 그렇게까지 싱싱하다거나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가격대에 비해선 나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 둘이서 먹기엔 해산물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적당한 가격으로 살짝 맛만 보기엔 이 정도 안주가 딱 적당했다. 맛을 살짝 음미하곤 살짝 고개를 들어 A 형의 소주잔을 살폈다. 잔이 비어 있었다. 술잔을 채웠다. A 형 역시 비어있는 내 술잔을 가득 채워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행님,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은 소개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요. 연봉이 높거나 아니면 안정된 직장을 가진 20대 후반의 남자. 제가 소개해주는 입장이라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근데요 행님, 저는 뭔가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연봉이 그리 높지도 않고 직장이 안정적이지도 않아요. 제가 먹고살 수 있는 만큼은 벌지만, 누군가와 만나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나 조건에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만족하는데, 소개 시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거 같습니다. 소개 들어온 사람은 예쁘고 직업도 좋더라고요. 그런 사람한테 저같이 뭐 하나 내세울 거 없는 사회초년생이 눈에 들어올까 싶습니다. 말끝마다 절로 한숨이 섞여 나왔다.


   - 그런 게 어딨노. 니는 직장이나 연봉 같은 조건 보고 만나는 거 엄청 싫어했다이가. 그런데 왜 니는 그런 조건부터 생각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A 형의 꾸중이 시작되었다. 괜한 얘기를 꺼냈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꾸중을 듣고 싶어서 얘기한 걸지도 모르겠다. 


   - 그 사람은 저보다 나이도 몇 살 많다 하더라고요. 결혼 생각도 하지 않을까 싶은데, 당연히 조건부터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 그건 만나봐야 아는 거지. 그렇게 조건 보고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이가. 설사 그 사람이 예쁘고 직장도 좋아서 이제까지 조건 좋은 사람을 만나왔다 하더라도, 너랑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너는 만나보지도 않고 벌써 그 사람을 판단해버린 거잖아. 예쁘고 직장도 좋고 결혼 적령기라서 당연히 너 같은 사람은 안 만날 거라고.

   - 아, 그런 건 아니고요, 행님...


   말문이 막혔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걸 무척 싫어했다. 그것도 나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정작 나는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서 나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연봉이나 직장 등 조건을 따져서 남자를 만나는, 그런 사람이라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 역시 그 사람의 외모와 직업이었다. 이런 한심하고 위험한 생각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조건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사람인 척 하면서, 상대방은 항상 조건을 따지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오히려 내가 그 누구보다 조건을 따지고 있으면서.


   - 그러지 말고 좀 만나 봐라. 사귀라는 거 아니잖아? 왜 벌써부터 미래를 생각하는데? 만나보고 아니면 아닌 거지. 

   - 그러게요, 행님. 잡생각만 가득합니다. 머릿속으로는 소개 100번은 받아본 거 같네요.

   - 자신감도 좀 가지고, 인마. 요즘 세상에 니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버는 사람 얼마나 있다고. 유명해질 가능성도 제일 높다이가. 미래가 얼마나 창창하노. 나중에 유명해지고 나서 누구 만나려는 거 아니제? 그게 더 나쁜 생각이다. 잡생각 때려치우고 이제 연애 좀 해라, 제발. 행님 소원이다.

   - 연애하면 행님이랑 이렇게 자주 술 마시는 거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 그거 때문에 연애 안 하는 건 아니다이가?


   금세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벨을 눌렀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어떤 거 드릴까요? 대선이요. 종업원이 곧장 소주 한 병을 우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A 형이 먼저 소주병을 잡았다. 나를 보며 한숨을 쉬더니 이내 웃었다. 의미심장한 웃음이었다. 저러다가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저러다 장가는 갈 수 있을까 하는, 아끼는 동생에 대한 걱정이 담긴 듯한 표정이었다. 정오야, 니가 잘못 생각했제?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나도 웃고 말았다. A 형이 내 잔을 가득 채워줬다. 나 역시 A형의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오징어회는 벌써 반 접시밖에 남지 않았다. 역시나 안주가 많다는 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소개 받을 거제? A 형의 물음에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소개를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참이고 설명해야 할 거 같았다. 나란 놈은 아직 덜 외로운가 보다. 그렇게 꾸중을 듣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그럼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행님, 저는요... 또 새로운 토론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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