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니도 나이 조금만 더 먹어봐.
잔을 기울인다. B 형이 이내 입을 연다. 내도 처음엔 잘생기고 돈 많은 애들이 부러웠거든. 얼마나 좋노.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관심 보이고, 여기저기서 소개 계속 들어오고. 내 주위에 잘생긴 애들 몇 명 있거든. 만나는 애들 보면 진짜 다 어리고 예쁘더라. 게다가 여자친구도 계속 바뀌더라고. 그런데 그거 아나. 20대까지는 그렇게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걔들이 나 부러워하더라. 걔들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한 사람이랑 오래 못 가더라고. 길어야 1년? 보통 몇 개월 만나고 헤어지더라. 근데 나는 한 사람이랑 3년, 4년 만나고 있으니까, 걔들 눈에는 신기한 거지. 잘생기고 돈 많으면 어리고 예쁜 사람을 여러 번 만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사람이랑 오래 만나면서 사랑을 깊이 키워가는 건 걔들한테도 쉽지 않거든. 한 번씩 공허함을 느끼는 거 같더라고. 진짜 사랑을 하고 싶은데, 한 사람을 진득하게 만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그런데 나이는 계속 먹어가니까.
마트에서 990원에 세일 중인 우동에 각종 재료를 넣었다. 다진 마늘과 땡초, 간장과 굴소스 조금. 거기다 마지막으로 파슬리까지 솔솔 뿌렸다. 행님, 안주 좀 드십시오. 아, 어묵만 있으면 딱 좋은데 아쉽네요. 야, 국물 쥑이네. 니 장가 잘 가겠다. 여기 어묵까지 있으면 진짜 이만 원짜리 안주다. 짠 하자. B 형이 다시금 말을 이어나간다. 잘생긴 사람은 예쁜 사람을 만나고, 예쁜 사람은 또 잘생긴 사람을 만나더라고. 그렇게 만나서 잘 지내면 좋겠지만, 한 사람하고만 쭉 만나기엔 자기가 아까워서 여러 사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나. 외모 괜찮고 돈 많으면 더욱 그렇겠지. 그런 마음으로 연인을 찾으니까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거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거든. 그러다 또 오래 못가고... 뭐, 모르겠다. 안 그런 경우도 많고, 너무 단편적이고 편협하게 보는 걸 수도 있겠는데, 그냥 내 주위 사람 관찰하니까 그렇더라고.
국물이 식으니 유난히도 짭게 느껴졌다. 이걸 계속 먹다 보면 백방 내일 얼굴이 퉁퉁 부을 것만 같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아니, 그 전에 수영장 가야 하는데... 행님, 그래도 사람이 외모 보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돈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은 마음도 남녀, 나이를 떠나서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고... 당연하지. 그래서 행님도 외모 안 보는 말 절대 안 믿는다.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지. 외모가 전부라면 잘생기고 예쁜 애들은 늘 좋은 사람 만나고 결혼도 잘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거 니도 본다이가. 그러니까 니도 너무 그런 거 부러워할 필요 없다. 아직 20대니까 맨날 어리고 예쁜 애들 만나고, 만나는 애들 자주 바뀌는 거, 알게 모르게 부러워하는 건 당연한 건데. 몰라, 니도 나이 조금만 더 먹어봐. 걔들은 30대 40대가 되어도 계속 그러고 다닐 확률이 높다. 그렇게 사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니가 꿈꾸는 삶은 아니다이가. 니가 진짜 좋은 사람이랑 오랫동안 진득하게 만나고 있으면, 결혼해서 가정 이루고 있으면, 그때는 걔들이 니 부러워 할 걸. 열띤 토론이 끝났다. 다시금 잔을 기울였다. 특히 우리는 절대 외모로 여자 못 꼬신다이가.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졸라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라도 합리화해야 하지 않겠나. B 형이 덧붙였다. 뭔가 결론이 이상하고, 또 슬펐다. 앞에 했던 얘기랑 안 맞다. 그럴 듯한 말이라서 엄청 공감하고 있었는데, 공감이 아니라 실은 정신승리가 아니었을까. 외모를 내세울 수 없는 두 남자의 술자리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맴돌았다. 짠 합시다, 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