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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Oct 12. 2019

나는, 편집자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편집자란 어떤 존재인가.

   지난 여름, 무거운 마음으로 하반기를 맞이했다.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상반기를 마무리한 거 같아 허탈했다. 게다가 책 기획과 조금은 거리가 먼 업무들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편집자 직함을 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여러 상황이 겹치며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나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떤 책을 기획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게,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과 함께 무더운 여름을 맞이했다.


   지난 7월 14일, 야심 차게 준비한 <출판편집자 양성 과정 - 호모 에디투스 1기>가 시작되었다. 지역에서 출판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둥 새로운 출판 문화를 만든다는 둥 지역만의 독특한 출판 모델 혹은 시스템을 만든다는 둥 온갖 멋진 수식어를 붙일 수 있지만,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편집자로서 잘 하고 있는건지, 서울에 있는 출판인들을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뿐이었다. 지난 9주간의 여정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각각의 대답을 듣는 과정이었다.


   책 기획부터 시작해 홍보 마케팅까지, 출간 프로세스 전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베스트셀러 만드는 법, 단행본 기획, 출판 실무, 숫자로 보는 마케팅, 출판 환경의 변화, 마지막으로 제작까지. 이 프로그램의 실무를 담당하는 기획자였지만, 나 역시 한 명의 수강생으로서 농담 한마디 조차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았지만, 모임이 끝나면 해가 중천에 뜬 오후부터 깜깜한 밤까지 연사님과 술자리를 가지며 얼큰하게 술을 마시는 특혜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의 때 미처 못했던 질문 혹은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곤 했다.


   매주 주말에 출근해 하루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했고 평일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며 계속 신경을 써야 했지만, 내게는 일종의 수업료였다. 아홉 번의 일요일을 꼬박 반납했다. 주말에 푹 쉬지 못해 교육 과정 내내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고, 행사 후 과도한 음주로 뱃살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간도 조금 안 좋아진 것만 같다. 다만, 교육 과정을 시작하던 당시 편집자로서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기에, 9주간의 여정은 한편으론 내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는 여정이기도 했다. 우문현답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자연스레 흩어지고 말았을 말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이 깨지고 부서졌다. 알이 깨지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북적이던 공간은, 다시금 예전처럼 조용해졌다. 광안리 해변가에서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아쉬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다만 무더웠던 여름만큼이나 뜨겁게 불태웠던 열정은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항상 응원과 격려로 가득했던 초보의 시기 혹은 배움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내 이름을 건 첫 단행본을 세상 밖에 선보이며, 치기 어린 허접함으로 가득했던 지난 글쓰기 인생의 1막을 마무리하였다. 그와 함께, 열정이 넘쳤지만 미숙함이 조금 더 많았던 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20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많은 것이 마무리되고 또 새롭게 시작되는 시기, <호모 에디투스 1기>라는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다. 이제는 온실에서 나와, 삶의 다음 발자국을 찍으려 한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편집자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편집자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열정이 넘치던 어느 편집자를 고민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의문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에서, 나만의 고민을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편집자란 어떤 존재인가. 이 거창한 질문에 당당히 답하고 싶다. 나는, 편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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