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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13. 2019

머릿속은 온통 온라인 판매지수, 서점 순위로 가득해졌다

방구석에서 벗어나자, 진짜 독자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학창 시절, 서점에 들를 때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곤 했다. 온 공간이 책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책들은 각자 개성을 살린 표지들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책에서만 나는 특유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고, 책을 넘길 때 울려 퍼지는 마찰음이 서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저 눈으로만 보고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만져보며 종이의 질감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했다. 당시엔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기 위해 서점에 발걸음하곤 했지만, 책으로 가득한 세상이 주는 그 특유의 느낌은 늘 기대와 설렘을 안겨주곤 했다.


   출판사에 들어온 후, 서점은 감동의 공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들어 서점에 납품했다. 서점은 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판매하는 가게였다. 숫자가 명확해야 했고, 판매량에 따라 가치가 평가되고 때론 잊히는, 치열한 세계였다. 그럼에도 서점이 주는 아우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온라인 서점이 익숙해지기 전 까지는.


   출판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 서점에 몰리자, 자연스레 오프라인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이 더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책을 직접 만나는 게 아니라, 온라인상의 텍스트와 이미지 몇 개만을 보고 책을 구매하는 게 점점 편해진 것이다. 문제될 건 없었다. 편집자로서 좀 더 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다만, ‘편집자’라는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자 많은 것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


   첫 단행본이 나오고 설렘과 기쁨도 잠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온라인 서점을 들락날락했다. 내 책을 검색해 판매지수를 확인하곤 했다. 그 숫자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괜히 다른 책의 판매지수를 보며 질투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내 책이 그렇게 형편없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어떤 글을 어떻게 썼는지가 아닌,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로 내 책의 가치 혹은 나의 가치가 평가되는 '숫자의 세계'의 중독된 것이다. 머릿속은 자연스레 온라인 판매지수, 서점 순위 등으로 가득해졌다.


   책이 나온 지 몇 달이 지나자, 구름 위에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 책이 얼마나 팔렸을까, 내 책의 순위는 어느 정도일까, 온갖 걱정과 조바심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은 조금씩 평온해졌다. 그러자 다른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접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와 책을 구매해줬던 주위 지인들이 떠올랐다.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며, 나를 잠시나마 평범한 직장인에서 벗어나 팬이 있는 작가로 만들어주곤 했다. 더 나아가 부족한 작품임에도 재미있게 읽어주고, 정성스레 감상을 남겨주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 애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모든 게 온라인 판매지수를 조금도 올려주지 못하는 행위들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힘이 되는 일들이었다.


   내가 편집자 직함을 처음 달았을 때부터 지난한 과정을 지켜본 이들의 관심과 응원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와 함께, 내가 글을 쓰게 된 처음의 마음이 떠올랐다. 떼돈을 벌거나 사회적인 명성을 얻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그저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수많은 책에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그동안 받은 걸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동안 무엇을 쫓고 있었던 걸까. 방구석에서 나오자, 판매지수로는 측정할 수 없었던 진짜 독자들인 나를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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