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었다.
- 행님 진짜 간만에 봤는데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 뭐가?
- 전동 킥보드 타고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차를 확 끌고 오길래 와, 이 행님 성공했네 싶었죠.
- 인마, 뭐 타고 오는지 뭐 중요하노!
- 킥보드 타고 왔으면 싼 거 먹었는데, 차타고 왔으니까 이런 거 먹는 거 아닙니까.
홈에 맞춰 양꼬치를 하나씩 올려놓는다. 기계가 저절로 돌아가면서 고기를 골고루 익혀주었다. 이야, 세상 좋아졌네. 양꼬치집에 몇 번 와봤지만 올 때마다 신기해서 쳐다본다. 굽는 솜씨가 아직 서툴지만 재미있을 거 같아 고기 굽기를 자처한다. 양꼬치 굽기는 딱 두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 첫 번째. 톱니바퀴처럼 생긴 홈에 정확히 끼워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는 움직여도 꼬치가 헛도는 경우가 발생한다. 두 번째, 올려놓은 꼬치는 일정하게 돌아가더라도 자리마다 불의 세기가 조금씩 다르다. 고기 익는 속도가 다르니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적절한 타이밍에 꼬치 위치를 잘 바꿔줘야 한다. 그리고 양꼬치엔 칭따오다. 행님들, 짠 합시다. 조금 비싸긴 해도 역시 국산 맥주보다 맛있다.
- 그동안 뭐하고 사셨습니까?
A 형은 과거 청년활동을 하며 만났다. 부산에 쥑이는 청년 문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 했었는데, 이 모든 게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들이 했던 활동과 그 흔적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잊혀졌다. 한때 뭉쳐있던 우리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이웃들을 구하면서도, 열심히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물론 우리는 스파이더맨처럼 히어로도 아니었고 이웃을 구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먹고 사는 게 그보다 우선일 뿐이었다.
- 그냥 월급 받으면서 적당히 살았다. 근데 엄청 편하더라.
항상 꿈으로 가득했던,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거 같던 A 형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예전 같았으면 무척 실망했을 텐데. 왜 직장에 다니냐고, 왜 월급을 받으면서 현실에 안주 하냐고 말했을 텐데. 하지만 나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 남다른 길을 선택했다 해도 평생 그런 선택만 하며 살긴 어렵다. 그 어떤 타협 없이 멋있는 일만 하고 그럴 듯한 말만 하고 다니는 건 머릿속에만 있는 환상이었다. 현실은 타협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소주가 다 떨어졌다. 메뉴판을 펼쳤다. 그래도 간만에 봤는데 비싼 술 좀 먹을까. 칭타오엔 연태고량이 제격이다. 평소 회사 회식을 할 때 종종 먹곤 했던 고량주다. 가격을 봤다. 와, 비싼 술이었구나. 엄두도 못 내겠다. 벨을 눌렀다. 대선 한 병이요. 그래, 이런 게 타협이지. 술자리에서도 이토록 타협하는데 하물며 먹고 사는 문제는 더욱 그러겠지.
술자리는 흘러가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술집에서 시킨 안주로는 도저히 감당 안 되는 추억들이다. 우리에게 맞는 안주라곤 지난날의 실패와 아쉬움뿐이었다. 몇 번이고 잔을 부딪쳤다. 과거의 서로를 탓하기도 하고 당시 오해를 풀어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했던, 그래서 어떤 성과를 냈던 지금 우리에게 눈곱만큼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다만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이들이 옛 이야기를 하며 밤늦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충분했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으로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과거에 품었던 꿈, 우리의 가치와 신념, 함께 했던 활동 혹은 단체는 점점 희미해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었다. A 형은 짧지 않았던 공백을 깨고 다시금 무언가에 도전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아직 끝나지 않은 A 형의 이야기, 그 다음 내용이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