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다친 사람들
- 어쩌다 손목이 부러졌어요?
- 내가 경로당에서 나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왜 그 할머니가 실버카(보조 보행기)를 밀고 계단으로 내려오냐 말이야. 그이가 구루면서 나를 미는 바람에 넘어졌는데 땅을 짚으면서 손목이 부러진 거지. 웬 날벼락인지...
병실에서 만난 여든셋 되신 할머니의 푸념이다. 평생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고 살아왔는데 억울하시단다.
조심조심 살아왔는데, 그 조심이 비켜나 버린 것이다.
나는 지난 11월 초에 대형마트에서 장 본 것을 차의 트렁크에 싣고 앞으로 나오다가 차 스토퍼에 걸려 그대로 엎어졌다. 그 바람에 왼쪽 팔꿈치가 골절되어 철심을 박는 어려운 수술을 받았다. 나 또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실을 때까지는 콧노래를 부를 만큼 화창했다. 트렁크 문을 닫고 돌아서는 순간 누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 같은 불가항력의 불이 번쩍였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그대로 내리꽂는 순간에도 무릎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려고 비틀며 넘어진 것이 그만 왼팔 뒤꿈치가 강타당했다. 통증은 온몸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악!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그래도 몸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통증과 놀람이 몸 전체를 눌러 압축해버린 듯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주르르 내렸다. 뒤늦게 겨우 빠져나온 숨통에서는 무겁고도 낮은 짐승 같은 흐느낌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나는 꿈이 아님을 알았다. 차와 차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그 짧은 시간에,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외롭고도 지독한, 예고도 없이 닥치는 불행이라는 날벼락 앞에서 몸은 떨고 있었다.
이렇게 날벼락을 맞은 사람은 할머니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약국에서 약을 사서 나오다 움푹 파인 곳에 발을 디뎌 인대가 끊어진 사람. 손녀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다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 거실에서 넘어져 손가락이 골절된 사람, 엉덩방아 찧으면서 고관절을 다친 사람,콘센트에서 코드를 빼다가 갈비뼈에 실금 간 사람, 발목이 돌아간 사람, 무릎이 꺾인 사람, 발가락이 부러진 사람..... 모두 어이없이 순간적으로 사고를 당한,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다.
날벼락은 누군가에게는 비통함을, 누군가에게는 억울함을,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누군가에게는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속수무책의 불행이며 재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 앞에서 백기가 아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 오른팔이 아니라 다행이지 뭐야.
- 팔 보다는 다리 다친 게 낫지.
- 에이, 다리보다는 팔 다친 게 낫죠.
-그래도 가슴뼈라 팔다리가 자유로워 내가 훨씬 낫지요.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투항이 아닌 희망의 말로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위로하지 않으면 이 날벼락을 무엇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피하진 못했지만 굴복할 수는 없다. 다시 일어선다. 절룩거리고, 한 팔이 불편하고, 가슴을 펴지 못하는 불균형의 모습이지만 또다시 삶의 전쟁 속으로 들어간다.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감염의 확산 공포로 일상은 멈추고, 삶의 질이 떨어진 날벼락 맞은 해였지만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억울하면 억울한대로 삐걱거리고, 삐딱해졌어도 우린 절대 백기가 아닌 반기를 들고 무소의 뿔처럼 2021년에도 함께 걸어가자고 권하고 싶다.
오른 손목을 깁스한 할머니 역시 서툰 왼손으로 실버카를 밀며, 가던 인생 길목을 덜커덩 덜커덩 이어 가실 것이다. 그 길에 더 이상 억울한 날벼락이 내리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