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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Apr 05. 2021

흔들리는 나무




- 비 오는데 뭐해요?

-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고 있었어요. 그곳에도 비가 오나요?

- 여기도 비바람이 불고 있어요. 바라보는데 너무 좋아요.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원주 문학관에 입주하여  글을 쓰고 있는 K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에게도 비는, 바람은 그저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리라.


비가 내린다. 며칠 뜨거웠던 세상을 식히느라 하늘 문이 열렸다.

축축한 나무와 풀, 흙이 내 안에서 반죽을 시작한다.

태곳적 냄새가 코를 자극하면 웅크리고 있던 심해의 감성이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원초적 본능처럼 오감이 작동할 뿐이다.

음습한 바람이 분다.  

긴장하던 흙냄새, 풀냄새가 풀어지고 나무들의 수런거림이 빗발치면 중력 잃은 마음은 어지럽게 떠돈다.


 여고생일 때는 행선지도 모르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고 종점에서 종점을 오가며 출렁거리는 마음을 다독였고, 대학생일 때는 수업 빼먹고 무작정 열차를 타고 눈길 닿는 곳에 내려,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무엇이 내 안을 헤집어 놓고 정처 없이 방황하게 했는지, 무엇을 찾고자 그리 목마르게 다녔는지, 청춘의 많은 시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뿌리 얕은 나무였고 가지였다. 


여전히 기차는 달리고 있다. 청춘의 앞 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잊고 있던 내 젊은 날의 초상화를 꺼내 쓰다듬어 본다. 여기까지 잘 왔구나....

지금은 이 기차 칸이 편하다. 안절부절했던 불안한 청춘의 의자보다 아픔과 인내를 거쳐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어 낸 이 의자가 좋다. 


그런데 방랑끼 많던 오감(五感)이 너무 편안함에 익숙해버린 건 아닐까? 

바람이 불고 있는데.  땅의 젖 냄새가 진동하는데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엉덩이는 늙은 말처럼 일어서기를 주저하고

방랑 끼는 높아가는 세월에 저당 잡힌 채 뒹굴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무가 참 좋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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