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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Jan 11. 2021

예술이라는 이름이 참 고되다



- 찬이 씨, 우리 애가 베이스 기타 전공을 하고 싶다고 해도 지금은 중학생이니까 주요 과목 학원은 계속 다녀야 하죠?

- 아니, 어차피 전공할 거면 지금부터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해야지 뭘 자꾸 일반 학원에 보낸다는 거야?

-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공부에 손을 놓냐고요?

- 본인이 하고 싶어 하고 재능도 보이고. 그러면 된 거 아냐?






 실용음악 교수의 중학생 아들이 베이스 기타를 전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나 보다. 그런데 기타리스트인 아빠는 이왕 하려면 악기에 올인하자고 하는 반면 엄마는 아직 꿈이 여러 번 변할 수 있는 나이니 공부는 계속하면서 틈틈이 악기를 배우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쩌면 아들이 음악인으로 사는 것을 반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음악인으로 살아온 남편을 보면서

가슴 졸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혼해서도 밴드 식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가정은 늘 뒷전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치 못해 아내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아이의 유치원비를 마련해야 했다. 남편의 밴드 공연 무대는 점점 줄어들고 음악보다는 밥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 되었을 때 무너지는 자아정체성 앞에서 삶이 흔들렸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방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음악이었다. 이젠 연주자가 아닌 밥을 선택한 실용음악대학의 강사로 몇몇 대학을 다니고 있다. 

 옆에서 힘겹고 고된 음악인의 길을 지켜봤던 아내는 그녀의 아들까지 그 길로 나가는 것을 응원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수 부부의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큰아들을 초대해 생각을 물어본 모양이다. 두 사람의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진땀을 뺐단다. 교수도 찾지 못한 해답을 큰아들은 찾을 수 있었을까? 자신도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저 애매한 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큰아들은 실용음악에서 베이스 기타를 전공했다. 나름 잘한다고 인정받아 교수들과의 섹션에도 참여하고 밴드를 만들어 공연도 하고. 음원도 여러 개 발표했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설 무대가 없어 여전히 목마르고, 여전히 답답하고,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무명인 것을.

잠깐 SM에서 아이돌 노래 작곡하는 일에 참여했다가 자신의 작업은 아이돌 노래와 맞지 않는다며 나와 버렸다.  처음 SM에 들어갔을 때 이젠 아들의 방황이 끝나는구나, 내심 기뻤다. 그것도 잠시, 아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며 아무 미련 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나왔다.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었던 EDM(Electronic Dance Music) 'Lonely Together' 음원을 만들어서 dj xor 이름으로 미국 음원 사이트와 국내 음원 사이트에 올렸다. 그것 또한 대중이나 음악인들에게 얼마나 각인되어 줄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들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또다시 작업 구상에 몰입하고 있다. 


 서른이 넘어가도 아들의 춥고 외로운 길은 끝나지 않고 있다.

얼마쯤 더 가야 진한 향기의 꽃 한 송이를 만날 수 있을까.

오직 한우물을 파는 동안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얼마나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아들이 지지 못하는 경제의 등짐을 맨 채 애틋한 눈빛으로 그 길을 서성이고 있다.


나 또한 글쟁이로 살아왔지만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예술이라는 게 어찌 따뜻한 방에서 나오겠는가? 깊은 한숨과 고독, 냉철한 자기 성찰과 결핍, 방황, 끈기, 침묵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추운 골짜기를 에돌아 나와야 비로소 가볍지 않은 글이 되고,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는 것인데.

아들은 오늘도 그 고된 길을 침묵하며 가고 있다. 수많은 누군가도 추운 골짜기에서 한 점 빛을 찾아 더듬더듬 가고 있을 게다.

교수의 애송이 아들도 길을 떠나기 위한 숨 고르기가 시작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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