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작가가 돌아가셨어요.
- 네? 누구라고요?
- J작가……
- 뭐라고요? 다시 좀 말해주세요.
전화기 속 떨리는 목소리.
아니야, 잘 못 들은 거지, 내가.
J작가의 이름이 내 고막을 세게 치고 돌아 나와 귓바퀴에서 웅웅거렸다. 뭐라고요? 누구라고요?
얼마 전까지 통화하면서 어떻게 지내느냐? 요즘은 무슨 글을 쓰고 있냐?
몸은 괜찮냐? 운동은 계속하냐? 누가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있냐?
안부를 묻고는, 잘 지내다가 벚꽃 피는 봄에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었는데……
이런 허망함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다섯 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했다. 목발은 오랫동안 그녀와 세상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러다 그녀의 나이 쉰 살이 넘으면서 왼쪽 다리마저 힘을 잃게 되어 전동휠체어가 목발을 대신했다. 결혼하지 않고 오직 글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그녀는, 장애라는 이유로 어느 누구한테도 물리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려고 했고, 심약한 자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나치다 싶게 도움을 경계하는 그녀를 섭섭하게 여길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일주일에 2번 수영장으로 데려다주는 복지사만이 그녀의 유일한 도움이었다.
그날 아침, M선생이 평상시처럼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심장 쪽이 아프다는 말을 별 대수롭지 않게 하더란다. M선생은 정색하며 병원에 가 봐야 한다고 했고, 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J작가는 올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할 거다 라면서 강경하게 뿌리쳤다.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기도 하고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M선생은 갈등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불안해서 다시 전화해서 119를 불러 주겠다고 했더니 필요하면 자신이 부를 테니 걱정 말라하더란다. 아, 이것이 이생의 마지막 인사말이 될 줄이야. 통증이 심해 그녀는 저녁 무렵 전동휠체어를 직접 몰고 병원으로 갔다. 바로 응급조치가 이루어졌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위험하고도 다급했을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해 보려다 찰나에 생명의 끈을 놓친 것이다. 아침에는 살아 있던 그녀가 저녁에는 주검으로 우리를 불러냈다. 혼자서 알아서 하겠다며 끝내 거절했던 도움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남은 자의 자책과 애통함으로 변질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웠을까? 어찌 혼자서 그 깊은 고독을 끝까지 감내하려고 했을까?
소녀 같은 엷은 미소를 띤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 서서 나는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꺼이꺼이 울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부담스러워할 그녀를 잘 알기에 이 악문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곳엔 장애가 없는 세상이냐고 물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달려도 되는 세상이냐고 물었다. 이제 자유롭냐고 물었다. 그리고 펑펑 울어도 되냐고 물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엔 벚꽃이 만개하고 새로 태어난 새순들이 봄바람에 일렁인다.
그녀가 떠난 지 1년이 돼 간다. 벚꽃 피면 만나자던 약속은 아직 내 귀에 유효한데, 어딜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걸까?
눈엔 봄이 가득인데
마음은 왜 이리 춥고 시린가.
봄날이 왔다.
나비처럼 머물다 눈물처럼 간다.
- 매화가 피고, 벚꽃 피면 우리 만나요.
J작가의 수줍은 목소리가 봄빛에 속절없이 흩어져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