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금 Oct 20. 2020

겨우, 가까스로, 마지못해



 - 엄마가 식사 준비할 때 옆에서 도와주면 안 되니?

- 도와달라고 말해주면 되잖아요? 뭐 그리 신경질적으로....

- 그걸 매번 말해야 한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얼마나 불편하겠어?

  눈치껏 옆에서 뒷정리라도 해 주면 얼마나 좋겠니?

- 나는 말해 주지 않으면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단 말이야.

- 이렇게 널려 있는 것들이 안 보여? 

  






큰아들과 언짢은 소리들이 오갔다. 둘이 프리랜서이다 보니 집에 있는 날이 많다.

아침은 가볍게 먹더라도 점심은 꼭 무언가 만들어 먹어야 한다.

나는 글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하다가도 일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다듬고 씻고 끓이고 볶고 담고,

양념통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뒷정리하고..... 혼자 분주하다.

아들은 소파에 반 누워 TV는 켜 놓은 채 핸드폰 게임에 분주하다.

한 사람 발은 동동거리는데, 한 사람 발은 저리 태평이라니.

이미 여러 번 도와줄 것을 요청했었다. 

겨우, 가까스로, 마지못해.

이런 수준이니 내가 매번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걸까?

갱년기를 보내는 내가 참 변덕스러울 때가 많다. 어느 때는 너그럽게 지나가다가도 어느 때는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올라와 후끈거리고, 어느 때는 잔뜩 골이 나 있고, 어느 때는 슬픈 감정에 침몰하기도 하고..

이런 엄마를 조금만 관심 있게 봐주고 이해해 준다면 덜 쓸쓸할 것을.


나는 반평생을 가정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왔다.

그래야 했고, 그래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어 왔다.

이제는 애들이 독립할 나이가 됐으니 집안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도 되지 않을까?

한결 가벼워지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왜 아직도 집안일은 엄마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아직도 코 앞에다 음식을 차려놔야 먹는 걸까?


아들,

지금은 엄마도 겨우, 가까스로, 마지못해 일하고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구나.



 


 

  

이전 11화 손 좀 잡아주세요, 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