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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Sep 19. 2022

 귀뚜라미의 죽음

권태기에게

가끔씩은 아주 행복하다가도 무색무취의 너의 사랑을 볼 때면 견딜 수 없이 따분해져. 그렇게나 설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연신 하품이 나오는걸

전에는 너의 단순함과 쉽게 살아내고 버티는 태도같은 것들을 사랑했는데 말이지 이제는 그런 것들이 재미없고 뻔해. 너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게 평범해져.


네 사랑은 빛나지 않고 심장이 박동하듯 살아숨쉬지 않아. 죽어버린 것 같아. 무미건조하게 의무감에 못이겨 네가 내뱉는 사랑해 처럼 말이야. 너무 진부해 너무너무 진부해. 그저 가성비가 좋아서, 고르지 않아도 되어서 사온다는 그 꽃들처럼


나는 편지를 써도 써도 너에게 쓸 말이 넘치는데, 너는 무언가를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건 나에 대한 네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이 아닐까? 시집 한권을 쓸 정도로 넘치게 사랑하던 그녀와 달리 나에게서는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걸까? 너는 미울 정도로 무심하다. 이런 너를 끝끝내 사랑하는 나는 미울 정도로 한심하다. 


한여름밤의 귀뚜라미 소리 같았던 너는 어디로 갔을까.

아참, 이제 여름은 끝났구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봄이 되면 또다시 여름이 돌아오겠지만, 그때 여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의 귀뚜라미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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