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의 아홉번째 편지

끝사랑 15

by 알록


준호의 편지9


수진에게,


동네 벚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고 있어. 벌써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어. 나는 그 꽃잎들을 보면서 생각해. 우리가 만나기로 한 봄이 이렇게 왔다가 가고 있구나.


네 마지막 편지를 받은 지 두 달이 되었어. 처음 한 달은 기다렸고, 그다음 보름은 초조했고, 그다음 보름은 궁금했어. 그리고 지금은 그냥 담담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 일이 무엇이든,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어.


네가 딸 일로 바쁠 수도 있고, 몸이 좀 안 좋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편지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봤어. 어떤 경우든,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해.


사실, 네가 마지막으로 보낸 그 편지를 하루에 한번은 읽는 거 같아. 그 편지에서 네가 한 말..


"당신이 외롭다고 쓴 날엔 문장이 길어졌고, 괜찮다고 쓴 날엔 말이 빨리 끝났어요. 나는 그 차이를 읽으며 굳이 묻지 않아도 당신의 하루를 알 수 있었어요."


누군가 나를 이렇게 읽어준 적이 있었을까. 너는 내 문장 너머를 보는 사람이었어. 그걸로 충분해. 그걸로 나는 오래 버틸 수 있어.

그리고 네가 한 말, 기억해.


"당신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든 나는 괜찮아요. 우리가 주고받은 말들은 이미 당신 안에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요."


맞아. 너는 내 안에 충분히 남아 있어. 네가 보낸 편지들, 네가 골라준 그 책, 네가 기억해준 50년 전의 나, 네가 불러준 '준호 오빠'라는 그 한마디.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살아 있어.


그러니까 수진아, 너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네가 어떤 이유로 답장을 멈췄든, 나는 괜찮아. 네 덕분에 나는 이 겨울을 살아냈고, 봄을 맞았고, 이제 혼자서도 하루를 잘 마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네가 내게 준 선물이야.


수진아, 고마웠어.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나는 네가 잘 지내길 바라. 네가 딸과 화해했길 바라고, 네가 피아노를 계속 치길 바라고, 네가 가끔은 나를 떠올리길 바래.


그게 다야.

아마도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내 마음을 정리하는 의미로. 네가 읽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이걸로 충분하니까.


봄이 가고 있어, 수진아.

여름이 오겠지. 그리고 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거야. 나는 그 계절들을 살아갈 거야. 네가 내게 남겨준 그 씩씩함으로.


늘 네 편지를 기다렸던 사람이 있었고,

그 기다림은 결코 후회되지 않았다는 걸,

네가 알면 좋겠어.



2025년 4월, 벚꽃 지는 날

준호가



*내일 마지막화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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