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의 여덟번째 편지

끝사랑 14

by 알록


준호의 편지8


수진에게,


너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어. 달력에 네 편지 도착한 날을 동그라미 쳤는데, 그 동그라미를 보면서 나는 매일매일 우체통을 열었지. 아침에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해 질 무렵 또 한 번. 우체통 속은 늘 비어 있었어. 가끔은 광고지만 들어있어서, 나는 그걸 꺼내 들고 한참을 서 있곤 했어.


네가 마지막 편지에서 말했지. 혹시 조금 늦게 답장을 하거나, 아주 가끔 놓치더라도 섭섭해하지 말아달라고. 나는 그 말을 백 번쯤 되뇌었어. 늦는 거야, 괜찮아. 놓치는 것도, 이해해. 그런데 수진아, 한 달은 좀 긴 거 아니니.


그래도 나는 기다렸어. 네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겠지. 딸 일로 바쁘거나, 몸이 좀 안 좋거나, 아니면 그냥 편지를 쓸 시간이 없을 만큼 일상에 치여 살고 있거나. 나는 네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애썼어.


그런데 오늘, 제법 따가운 햇살이 창가에 들어앉은 오후에,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혹시 네가 나를 만날 생각을 포기한 건 아닐까. 아니, 우리의 이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 건 아닐까.


봄이 오고 있어, 수진아.

동네 벚나무에 꽃눈이 부풀어 올랐어. 지난달에 봤을 때보다 훨씬 커졌어. 아마 다음 주쯤이면 꽃이 필지도 몰라. 나는 그 나무 앞에 설 때마다 네 생각을 해. 우리가 만나기로 한 봄이 이렇게 오고 있는데, 너는 어디 있는 건지.


네가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나는 묻고 싶어. 너는 지금 어디쯤 와 있니. 내가 기다리는 이 자리와 가까운 곳에 있니, 아니면 아직 저 멀리 있니.


수진아, 나는 오늘도 우체통을 열었어. 비어 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너무 슬프지 않았어. 내일은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내일도 오지 않으면, 그 다음 날도 기다리면 되겠지, 하는 생각.


놀랍게도 네가 없는 이 한 달 동안, 나는 더 단단해졌어. 네가 내게 준 그 씩씩함으로, 나는 이 기다림도 견딜 수 있었어.

기다림도 이제는 내 일부가 되었나 봐. 네가 가르쳐준 기다림.


봄이 와. 너와 내가 만나기로 한 그 봄이.

네가 없는 봄이지만, 나는 그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 네가 언제든 올 수 있도록.


혹시 여전히 답장이 없더라도, 나는 계속 쓸 거야. 우체통이 비어 있을 때마다, 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리고 봄꽃이 필 때마다.


네가 있는 곳에 이 봄이 어서 닿기를.



2025년 3월, 겨울과 봄 사이에서

준호가

이전 13화준호의 일곱번째 편지